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대다수가 몰랐던 불안한 현실입니다.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MIT의 셰리 터클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새라 콘래스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퍼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말입니다. 

터클 교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해석합니다. 

기술이 사람들 간에 거리를 만든다는 거지요. 

그 결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고 있습니다.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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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비 감독, 임달화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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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평범한(이라고 소개되는 영화 속 인물 치고 진짜 ‘평범한’ 사람은 없지만) 보험설계사인 주인공 마크(오언조)는 우연히 발견한 서류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서류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보험사에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관려된 사실을 모른다고 대답할 것을 상사로부터 요구받은 것. 결국 상사의 말대로 한 대가로 회사에서는 승진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린다.


     목소리는 자신이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법정에서의 위증을 했다는 증거를 공개하겠다고 위협했고 주인공은 하는 수 없이 그 지시를 따라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이런 설정은 어느 영화에선가 몇 번 봤던 기억이 있다). 그 마지막 언저리에서 웬 조직폭력배들에게 끌려가게 된 마크는, 조직의 두목을 만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털어놓는다. 물론 여기에는 온전한 진실이 다 담겨 있는 건 아니었고, 이건 영화의 말미 커다란 반전을 선사하는데 여기가 살짝 찝찝한 데가 있다는 게 함정...






     영화는 나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따라,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회상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은 조직폭력배들에게 잡혀서 두들겨 맞고 있으니 보는 사람마저 급해지게 만든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렇게 치밀하게 감시하고 계획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일개 조폭 부두목 따위가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게 쉽게 동의가 되지 않으니까. 이런 설정 상의 구멍은 현실감을 조금 덜 하게 만들어서 영화 속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하는 ‘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런 점은 영화의 완성도와도 연결된다.






     영화를 한참 보는 동안에는, 역시 나쁜 짓을 하면 편히 발 뻗고 잠을 못 자는구나 하는 교훈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영화 말미의 반전으로 애초에 주인공이 ‘나쁜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지면서 초기화... 이번엔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이 공개되고 누군가에 의해 조작, 조정까지 될 수 있는 감시사회에 대한 비판이 살짝 떠올랐으나, 사실 영화 자체가 그 부분에 대해 그리 비판적인 관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살짝 애매.


     결국 어린 시절의 주인공이 객기를 부리다가 결국 부모님 두 분이 다 큰 불행을 겪었다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버리니... (조폭들은 위협만 하고 돈을 뺏어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숨어 있던 주인공이 갑자기 ‘도끼’를 던지는 바람에 화가 난 조폭들이 주인공 어머니의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에게 먹인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자살하고, 어머니는 정신이상이 되었다는 설정.) 뭐 쓰레기급 인성을 지닌 조폭들이 자기들끼리도 믿지 못해 서로 죽이는 결과야 그리 안타깝지 않지만, 주인공 쪽도 그렇게 모든 책임을 조폭들에게만 뒤집어씌울 수 있나...


     명작이 되기엔 딱 20% 정도 부족했던 영화. 그냥 가벼운 오락 영화로만 보면 충분할 듯. 과하게 자극적인 장면은 적당히 감추는 것이 딱 그 정도를 의도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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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ㅣ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5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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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도로시 세이어즈가 쓴 『여성은 인간인가』라는 책을 꽤나 인상적으로 읽으면서,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을 찾아 보게 됐다. 이 책은 그렇게 손에 들게 된 책. 앞서의 책에도 언급했지만, 그녀는 C. S. 루이스와도 오랫동안 좋은 교류를 해왔던 재능 있는 작가였고, 특히 추리소설(탐정 소설)로 꽤나 인상적인 작품을 써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탐정 소설의 초기 발달사에 관한 소고다.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쓰인 건 아니고, 몇몇 주요 작품들을 모아 앤솔로지를 만들면서, 그 서문으로 작성된 것이었다고 한다. 보통 그런 서문은 재미도 없고, 딱히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 이 책의 경우는 확실히 좀 다르다. 작가는 탐정소설계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비평과 감상까지 담아낸다. 이 짧은 원고 안에서 말이다.



     어린 시절 탐정 이야기에 푹 빠져 살았던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읽어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일종의 전범을 형성한 애드거 앨런 포의 ‘뒤팽’에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이후 크게 융성하기 시작한 탐정 소설의 역사를 간략히 훑어간다. 전설적인 고전 작가들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익숙하게 들었던 그들의 이름을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자극되는 기분.


     작가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는 탐정 소설의 기법의 발전 부분이다. 추론을 통해 경찰이 밝혀내지 못한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초기의 설정에서, 작가들은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들을 고안해, 독자가 진범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맞히기 어렵게 만들어 왔다. 여기에 어느 시점부터 독자들이 작가를 분석하며 결과를 예측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작가들로서는 머리가 아플 것 같다.


     탐정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불만은, 앞서도 언급했던 『여성은 인간인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듯하다. 3, 40대의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남성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책 곳곳에 탐정 소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온다. 결혼이나 죽음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일 없이, 언제나 도입과 전개, 종결이 갖추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완결성이 있다고 말하는 데서는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작가가 직접 쓴 소설들을 손에 들어야 할 차례일 듯도 하고.


     이 쪽에 대해 애정이 있는 독자라면 나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 작지만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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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포용의 은혜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기적이 일어나 갑자기 변화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부서진 에이콘이 서서히 치유되는 이야기인 경우가 더 많다. 

한참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자신이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른 이들을 도우며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 스캇 맥나이트,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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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눈의 고양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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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미야베 월드’라는 게 있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처음 알았다. (사실 제목에 큼직하게 써있는 ‘고양이’라는 글자와, 일본 민화식으로 그려진 표지 디자인이 눈에 들어와서 구입한 책인지라, 애초에 무슨 책인지는 전혀 모르고 손에 들었다.) 일본의 근대시대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요괴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기담집들로 구성된 세계가 바로 미야베 월드다. 이 책은 다섯 번째 책이고, 2019년을 기준으로 여섯 번째 책이 집필중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주머니를 만들어 파는 가게 미시야마에 기이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예쁜 아가씨 오치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야기를 하기 원하는 사람은 안내인에게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고, 그러면 가게 한 쪽에 마련된 ‘흑백의 방’에서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이야기가 시작되는 식이다.


     이번 권에는 ‘열어서는 안 되는 방’, ‘벙어리 아씨’, ‘가면의 집’, ‘기이한 이야기책’, ‘금빛 눈의 고양이’라는 다섯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나하나가 독특한 느낌의 이야기들이고, 또 마치 옛 이야기들처럼 나름의 교훈도 담고 있다. 또 직접 묘사가 아니라 전해 듣는다는 설정 상,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회상하는 식이어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열어서는 안 되는 방’이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제물이 될 대가를 요구하는 요괴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요괴를 불러들인 것은 고부갈등으로 이혼을 하고 아이까지 뺏긴 채 친정에 돌아와 있는 화자의 누이였는데, 그 기구한 사연은 동정이 가지만 그 이후 일어난 연쇄적 사건들은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간다. 사실 그 원인은 그녀 이후 요괴에게 소원을 빌었던 인물들의 탐욕 때문이었는데, 결국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더럽고 냄새나는 것인가를 요괴를 통해 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벙어리 아씨’는 요괴를 부르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화자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시녀살이를 시작한 그녀는 한 영주의 첩이 낳은 딸을 모시게 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순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괴’는 오히려 화자를 도와주기도 하고, 또 ‘아씨’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존재도 꽤나 안타까운 사연을 지니고 있어서 가슴 찡하게 만들었던 이야기다.


     ‘가면의 집’과 ‘기이한 이야기책’은 감동보다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신기한 이야기들이었고, 마지막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금빛 눈의 고양이’인데 정작 실린 이야기는 그 힘이 좀 약해 보였다. 뭐... 나쁘진 않았지만.



     전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다보니 그 시절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또 눈에 들어온다. 한 집안의 가업을 이을 수 있는 아들이 아니면, 나머지는 일찌감치 다른 집으로 입양되거나,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부터 남의 집에서 일을 하거나 일을 배우는 모습 같은. 예전에 봤던 일본 영화 ‘오싱’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


     흥미로운 건 여기 담긴 이야기들이 모두 작가의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모티브는 여기저기서 따 왔을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풍토, 그리고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건, 한 나라의 문화적 깊이를 두텁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살짝 부러웠던 부분.


     다 읽고 나니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재미있게 봤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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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9-09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경우 소설이란 양반과 같은 선비들이 읽어서는 안될 책이란 의미가 강했지만 일본의 경우는 칼찬 사무라이들이 지배층을 이루다 보니 우리네 선비같은 유교에 대한 컴플렉스가 약했던것 같습니다.오히려 일반 민중들에게 즐길거리를 줄수 있는 통속적인 소설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요괴나 음담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되지요.미이여사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역시 그런것들에서 이야기를 많이 차용한것 같습니다.

노란가방 2020-09-10 09:48   좋아요 0 | URL
학자와 무인.. 지배층의 성격이 달랐기 때문일까요? 흥미로운 지적이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