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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ㅣ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5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앞서 도로시 세이어즈가 쓴 『여성은 인간인가』라는 책을 꽤나 인상적으로 읽으면서,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을 찾아 보게 됐다. 이 책은 그렇게 손에 들게 된 책. 앞서의 책에도 언급했지만, 그녀는 C. S. 루이스와도 오랫동안 좋은 교류를 해왔던 재능 있는 작가였고, 특히 추리소설(탐정 소설)로 꽤나 인상적인 작품을 써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탐정 소설의 초기 발달사에 관한 소고다.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쓰인 건 아니고, 몇몇 주요 작품들을 모아 앤솔로지를 만들면서, 그 서문으로 작성된 것이었다고 한다. 보통 그런 서문은 재미도 없고, 딱히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 이 책의 경우는 확실히 좀 다르다. 작가는 탐정소설계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비평과 감상까지 담아낸다. 이 짧은 원고 안에서 말이다.
어린 시절 탐정 이야기에 푹 빠져 살았던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읽어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일종의 전범을 형성한 애드거 앨런 포의 ‘뒤팽’에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이후 크게 융성하기 시작한 탐정 소설의 역사를 간략히 훑어간다. 전설적인 고전 작가들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익숙하게 들었던 그들의 이름을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자극되는 기분.
작가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는 탐정 소설의 기법의 발전 부분이다. 추론을 통해 경찰이 밝혀내지 못한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초기의 설정에서, 작가들은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들을 고안해, 독자가 진범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맞히기 어렵게 만들어 왔다. 여기에 어느 시점부터 독자들이 작가를 분석하며 결과를 예측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작가들로서는 머리가 아플 것 같다.
탐정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불만은, 앞서도 언급했던 『여성은 인간인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듯하다. 3, 40대의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남성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책 곳곳에 탐정 소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온다. 결혼이나 죽음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일 없이, 언제나 도입과 전개, 종결이 갖추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완결성이 있다고 말하는 데서는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작가가 직접 쓴 소설들을 손에 들어야 할 차례일 듯도 하고.
이 쪽에 대해 애정이 있는 독자라면 나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 작지만 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