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새들백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한인 목회자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일곱 가지 항목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기 좋은 문화가 있으니 한 번 읽고 적용해 보는 게 어떠냐는 의도인데, 굳이 분류하면 (교회)실용서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런 책은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만 간명하게 전하면 좋겠다 싶은데, 이 책이 딱 그렇다.
목차에 나온 일곱 가지 원칙만 읽어봐도 핵심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1 무슨 사역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2 성장하는 교회는 전도의 끈을 느슨히 하지 않는다
3 소그룹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4 영적 건강만큼 정신 건강을 돌봐야 한다
5 건강한 교회는 사모가 행복하다
6 교회가 성장하려면 내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7 사역자에게 쉼은 사역보다 더 중요하다
저자는 문화의 힘을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교회 프로그램, 시스템을 가져다 도입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스템은 문화 위에 구현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새들백 교회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그 교회가 일찍부터 세우고 길러온 문화 때문이리라.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문화가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고, 프로그램이 문화를 지탱하고 유지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사모 수련회 같은.
하나하나가 꽤 인상적인 원칙들이다. 특히 한 가지 사역을 더하면 기존에 진행되던 한 가지 사역은 뺀다는 원칙이라든지, 매년 사모들을 위한 수련회를 진행한다든지, 전도를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이를 위해 교회의 모든 부분을 여기에 맞춰가는 의지 등은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여기에 책에 소개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강하게 남는데, 교회의 최선임 목사가 데려온 신입 사역자를 두고, 이 사람이 훗날에는 나보다 높이 올라 내가 그의 지시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연공서열을 사역적 능력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 비단 교회만이 아니라, 자기보다 아래 기수가 조직의 최고수장이 되면 줄줄이 사직을 하고 퇴임하는 법조계를 비롯해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체면 문화이기도 하다.
저자의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내용을 설명하면서 굳이 빙빙 돌리거나 미사여구를 잔뜩 붙이는 것 없이, 핵심적인 내용을 담백하게 서술해 나가는 게 참 좋다. 무엇인가 배울 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글쓰기 방식이다.
다만 여기 나온 요령들은 새들백 교회 같은 대형교회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작은 교회에서 여기 나온 원칙들을 얼마나 시도해 볼 수 있을까? 물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변용과 적응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또 한 가지 질문은 반대로 이미 이런 문화 없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게 된 교회들의 경우 과연 문화를 바꿔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문화라는 게 초기부터 만들지 않으면,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도 하니까.
교회에 관한 건강한 고민들과 나름의 제언들이 많이 담겨 있다. 사역자들, 중직자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
타인의 종교적 감정을 모욕하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원칙이다.
그 때문에 집에서는 신을 모독하는 사람도
교회에서는 되도록 그런 말을 삼간다.
슈피겔만도 무함마드를 희화화한 캐리커처를 그리지 말았어야 했다.
보복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무례한> 일이기 때문이다.
- 움베르토 에코,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중에서
앞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 관한 패커의 글을 읽었고, 이번에는 세례다. 초기 기독교 시기부터 세례는 가장 중요한 교회의 예식이었다. 최소한 2, 3년 동안의 교육과 다양한 훈련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는데, 세례는 그 증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독교가 사실상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갑자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그들을 대상으로 2~3년 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세례 교육은 형해화되었고,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느낌이다. 다만 갈수록 교인수가 감소하는 오늘날에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발생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세례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은 아닐까 싶은.(또 하나가 있다면 모든 종류의 의례나 예식에 대한 반발심)
사실 신학교에서도 이런 부분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당장 일선 교회에서 사역을 하려면 자주 접하는 일인데도. 알아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데, 최소한 이런 정도의 간략한 소개와 해설이라도 필요한 이유다.
세례와 관련해서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그것이 왜 시행되어야 하는가이다. 책 제목에 세례와 함께 붙어있는 ‘회심’과의 관계성에 특히 주목한다.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세례는 또 왜 받아야 하는가? 세례가 우리의 구원에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저자는 세례와 회심이 마치 성악에서 테너와 베이스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즉 서로 어울려서 더 풍성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세례라는 의식을 계속 해야 하는 가장 단순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외적 표징으로서의 세례가 가지는 상징적-신학적 의미를 넘어 어떤 실제적 효력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사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긴 하다.
책 후반에는 유아세례나 입교식처럼 일선 교회에서 필요한 내용들도 담겨 있고, 말미에는 세례가 개인에게 주는 의미에 관한 몇 개의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서 실전에서 사용하기에 괜찮은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어떻게 해서 구입까지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중고도서를 구입하면서 배송비 무료 기준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담다가 들어갔나 보다. 강렬한 핫핑크의 표지에 “답장이 없으면 슬프긴 하겠다”는 제목까지. 평소라면 손에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책이지만,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만나는 책도 있는 법이다.
책은 이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제에 관한 무슨 특별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건 아니고, 저자 후기를 보니 처음엔 그냥 SNS에 올리던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 책으로까지 엮여 나왔다고 한다. 글의 분량이나 구성도 SNS에 맞게 길지 않다. 책을 열면 왼쪽에는 메신저창 형태의 말풍선 속 메시지가, 오른쪽엔 그에 관한 짧은 설명글이 덧붙여 있는 형태다.
모든 이별들엔 비슷한 면이 있나 보다. 그러니 이런 글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겠지만. 이 나이 먹도록 연애 경험 몇 번이 없을 리 없고, 그때의 감정과 기분을 떠올려 보면 책 속의 몇몇 문장들과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이제는 그저 그 시절만 겪을 수 있는 불안과 설렘과 떨림 같은 것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지만.
그 시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듯한 책. 당시에는 가장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다 살게 되어 있더라. 이별로 아파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