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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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두꺼운 책 중 하나가 『총, 균, 쇠』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을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새로 쓴 국가 위기 대처 방법에 관한 책이다.


책은 일곱 개의 나라들―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미국―이 역사 속에서 겪었던 위기들과 그것들을 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했던 선택과 변화에 관한 내용을 짧게 정리하는 내용이다. 각각의 나라들이 경험했던 위기의 성격은 모두 달랐지만, 저자는 이를 정리하기 위해 국가적 위기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관련된 열두 가지 요인들을 짚고, 이에 따라 각각의 위기들을 분석한다.


저자가 만든 척도는 다음과 같다.


1.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2.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3. 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국가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 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5. 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6. 국가 정체성

7. 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8. 역사적으로 과거에 경험한 국가 위기

9. 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10.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

11. 국가의 핵심 가치

12.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물론 이 척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수는 늘 수도 있고, 더 적게 꼽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만들던 기준이란 항상 부족한 법이니까. 저자도 이런 부분은 인식하고 있고, 너무 많거나 적은 기준을 만들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해 이렇게 정리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이런 척도들을 가지고 제대로 실제 문제를 분석하고, 또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예측해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일게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사례로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도 꽤나 역동적인 근대사를 경험한 나라인데 말이다. 일본의 강제 병합을 극복해 내고, 6.25라는 내전을 경험하고, 군부 쿠테타와 민주화,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며 한 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세계 수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겨우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위기들을 맞이해 나름 극복하고 변화를 해 오지 않았던가.(물론 국민들이 꽤 자주 멍청한 투표를 해서 무능한 대통령들이 주기적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있지만)





책에 언급된 여러 나라들의 사례들이 다 재미있었지만, 그 중에서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예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일본의 위기는 1853년 페리호의 입항으로 시작된 강제 개항이었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 각국에서 이루어진 서구에 의한 개항이 대체로 식민지화를 불러왔음을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일본은 이 불평등조약을 발판으로 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리는 근대화에 성공하고, 20세기 초 주변국들을 침략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제국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확실히 성공적인 위기 대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앞선 기준들 중 여러 항목에서 성공적인 선택을 했다고 평가한다. 우선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고(항목 5), 미국 군함에 의한 처절한 패배를 단순히 운이 없음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국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냉철한 판단도 했다(항목 7). 또, 개혁에 관한 전반적인 국민적 합의(항목 1)나,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대신 울타리를 세워 선택적인 변화만을 받아들임으로써(항목 3),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면서(항목 6) 변화를 이루어 냈다.


책의 3부에서는 2부에서 언급한 몇 개의 나라들 중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미래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일본이 가진 장점들을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어둡게 볼 수 있는 요인들도 몇 개 꼽는다. 그 중 하나가 일본 특유의 자연 자원에 대한 남용으로, 이는 지속 가능한 자연 자원 이용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반하는 태도다.(대표적으로 일본 어민들이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포경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꼽는 것이 인근의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 중국 등에 끼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또 하나의 문제고. 저자는 간략하게 훑고 넘어가고 있지만, 이런 요인들은 일본이 미래에 크게 발전하기 어려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사회학 이론도 100%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나의 이론에는 수많은 가설들과 임의적인 기준 설정 등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세운 이론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느냐이고, 이 점에서 다이아몬드의 이론은 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책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건 국가 규모의 위기 대처 방식이지만, 비슷한 내용을 기업이라든지, 지자체가 다양한 모임들, 혹은 개인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와 대응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 온갖 물의를 일으켜 주목을 받고 있는 축구협회의 경우 위기에 빠졌다는 자각 자체도 없을뿐더러(항목1) 무엇인가를 할 생각도 없고(항목2),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나라의 협회나 우리나라의 다른 기관들로부터 배울 자세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항목5). 여기에 대한민국 축구행정 전체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이나 정체성보다는(항목6) 그저 협회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득만 취하려는 기생충들만 잔뜩 달라붙어 있으니 향후에도 제대로 운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열두 가지 항목을 다시 종합해 보자면,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고집 때문에, 혹은 자존심이나 관성으로 인해 그냥 해 왔던 대로만 밀어 붙이다가 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에도, 문화에도 다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물론 닥치고 새로운 것만 하자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위기라는 높은 변동성을 마주하는 상황에서조차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외치고 있다면 그 끝은 뻔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는 당면한 위기를 적절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을까? 자꾸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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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11-2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한국이 모델에서 빠진것이 좀 이상하네요.한국처럼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의 포화를 겪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단기간에 올라선 나라가 없을텐데 말이죠.

노란가방 2024-11-27 21: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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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일제강점기의 친일과 독립운동 등이

모두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들어오게 되고

당연히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냉정한 역사의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죠.

반면 정부가 수립된 해인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걸로 본다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일제 강점기가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1948년 이전에 일어났던,

일제 강점기 동안의 친일 행위나 독립운동 등이

대한민국 역사가 아닌 것이 되고 마니까

친일파 등에 대한 논의가 어려워집니다.

건국이 1919년이냐 1948년이냐 하는 건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박주민, 『주민의 헌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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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캐스팅인데.


액션 쪽으로 잘 나가는 드웨인 존슨과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알려진 크리스 에반스, 그리고 할리우드의 중요한 여성 액션배우였던 루시 리우까지, 제법 잘 알려진 배우들이 잔뜩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각본이었을까, 연출이었을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표방한다. 산타클로스를 비롯한 각종 신비한 신화적 존재들이 실재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를 비밀리에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는 설정 아래,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벌어진 산타클로스(닉)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크리스마스 소동 이야기. 크게 보면 “나 홀로 집에” 류의 영화라고 봐도 좋다.(물론 그 규모는 훨씬 커졌지만)


닉을 경호하는 요인 드리프트 역의 드웨인 존슨과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채 해커로 살면서 닉이 납치되는 결정적인 자료를 빼내는 걸 도와주게 된, 그리고 이제 다시 닉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잭 역의 크리스 에반스. 이 둘의 케미가 얼마나 살아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 재미와 감동을 제대로 버무려 내느냐가 영화의 관건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


애초에 어린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고(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이라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 결국 어느 쪽도 제대로 된 타겟 설정이 안 된 느낌이니 흥행에 성공할 수가...





착한 아이, 나쁜 아이.


스포일러겠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봤을 테니까(개봉 하자마자 본 나는..), 영화 속에서 닉을 납치한 그릴라라는 캐릭터는 분명 악역일 텐데, 그녀가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납치를 벌인 이유가 좀 그렇다.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데, 선물을 받지 못하는 나쁜 아이들의 목록도 작성되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나쁜 아이 목록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세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있다는 자각을 한 그릴라는, 산타를 납치해 그가 가진 신비한 힘을 이용해서 나쁜 아이들을 혼내 주기로 결심한다.(응?)


영화 속 닉의 경호를 맡았던 드리프트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을 그만 두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사뭇 그릴라와 비슷하다. 자신이(그리고 닉이)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졌던 것이다. 아무리 선물을 줘도 세상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도 의무감으로 납치된 닉을 구출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점차 나쁜 아이에 속할 것 같은 잭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잭의 아들이 보여주는 순수함에 감화된다는 이야기이지만, 그건 개인적 경험이고 여전히 세상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지 않던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오히려 그릴라나, 닉의 형으로 한때 동생과 함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일을 하다가 이제는 어둠의 세계에서 괴상한 부하들과 함께 즐기고 있는 그람푸스 같은 존재들이 말하는 진단에, 어른들은 좀 더 쉽게 동의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저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는 닉의 기대는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닐까.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간다”는 부분이다. 물론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세상에 “나쁜 아이들”이 잔뜩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의 의지가 있는 사람의 내일은 그저 어제의 연속이기만 한 건 아니다.


사람들은 무슨 엄청난 결단과 헌신을 통해서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 차곡차곡 자신이 하는 일들이 쌓여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쁜 아이”가 “착한 아이”로 변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못 마땅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잔뜩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불만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제 한 걸음 착한 아이 쪽으로 옮겨갔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이 과정은 영화 속 닉의 단순한 낙관론처럼 자동적으로, 혹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신중한 교육도 필요하고, 환경적 요소도 고려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신앙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대 교육 이론에서는 이런 것들이 별로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잘못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능사인 양, 오늘의 잘못과 실패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퉁치는 얼치기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이 헤겔주의 역사관의 기묘한 비틀림은 결국 시간을 우상으로 섬기는 일과 다름없다. 그저 정반합의 신묘한 섭리로 언젠가는 다 좋아질 거라는 맹목적 믿음이다. 잡초에 물을 계속 주면서 밭에서 좋은 열매들이 맺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인 일일 뿐이다. 어떤 위대한 일도 그저 우연히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비전과 거기에 이르기 위한 계획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실천이 없다면 그는 그저 공상가로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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