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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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영화를 극장에 직접 가서 보는 사람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 것 같지는 않은데, 요컨대 영화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를 구독하면 수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무제한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고도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을 통해 충분히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장소적, 도구적 변화와 함께 나타난 관행이 이 책의 제목에도 나오는 “빨리 감기”(그리고 중간 중간 뛰어넘기)다. 이 책은 그런 빨리 감기 관행을 초래한 외적, 내적 원인을 밝히고, 나아가 이런 관행이 사람들에게 일으킨 결과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들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이유는 뭘까? 우선 너무 바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리고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봐야 하는 영상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마저 가성비를 따져가며 사용하기를 원하고, “별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빨리 넘겨버리는 시청 행태를 갖게 되었다.


OTT의 발달로 초래된,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영상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기술적인 외적 요인이지만, 문제는 두 번째다. 그렇게 바쁘면 빨리 넘기기까지 하면서 보지 않으면 그만일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보는 이유에 관해, 저자는 SNS의 확산으로 공감을 강요당하고 ‘나도 요새 인기를 끄는 그것을 봤다’고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런 유행에 끼지 못하면 자칫 사회적 관계에서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읽어낸다.


이런 식의 시청이 감상이 아닌 소비이고, 영화의 관객보다는 콘텐츠 소비자로서의 위치에 서게 만든다. 대사 중심의 시청은 행간을 읽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들 게 뻔하다. 10초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청할 수 있을까? 물론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깊이 있는 관람을 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건 전문가가 대신 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게 정말 전부일까?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새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대두하고 있는 문해력 결핍도 다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멀리 간 것일 지도 모르지만, 글자는 읽을 줄 아나 문장은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건 최근 우리나라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음모론 신봉자들의 집단적 탄생과도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런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영상 또한 그런 성향에 맞춰 변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예컨대 요새 나오는 영상들에는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량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늘었다. 사람들은 단지 눈빛을, 얼굴의 잔근육의 움직임을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의 변화에 집중하지 않으니까. 그냥 보여주면 될 일도 이제는 일일이 말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빨리 감기로 보면 감정 이입이 덜 되어서 좋다”는 대답을 읽다 보면 살짝 어질어질 하기까지 한다. 이유인즉 감정의 소비를 절약하기 위해 작품에 너무 깊이 빠지기를 꺼린다는 말이다. 기분이 상하는 것이 싫으니 결말까지 빨리 미리 본 후 마음에 들면 비로소 처음부터 다시 본다는 말도, 이미 본 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는 이유도 다 비슷하다. 결말을 알고 있으면 감정의 소비가 적으니까, 새로운 것을 보려면 감정 소비가 많아지니까.(여전히 그럼 안 보면 되지 않나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 차오르지만..)


빠른 속도로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어려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영화고 드라마고 이른바 “설명충”이 등장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알려주어야 하는 이유다. 심지어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어려움이 닥치는 것조차 견뎌하지 못한다. 이른바 “공감성 수치”가 높아서 주인공의 고난이 자기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그 결과 요새 수없이 등장하는 양산형 이세계물들처럼, 주인공은 먼치킨적 능력을 지니고, 주변 인물들은 별 이유 없이 주인공을 좋아하는, 모든 것이 편안하고 안전한 이야기만 늘어난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지적했던 “매끄러움에 대한 (거의 숭배에 가까운) 집착”, 이른바 포르노적 탐닉만 남게 된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 원인을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빨리 감기” 현대인들의 마음속의 불안감이 반영된 현상인 듯하다. 책 말미 이제까지 대체로 약간 비판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던 저자는, 이런 관행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일종의 적응일 지도 모른다며 살짝 발을 빼지만, 글쎄.... 그렇게 보고 넘어가면 그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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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3-31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옥스포드가 뽑은 단어가 뇌가 썩었다는 말이라는데 관련있는 현상이겠죠? 그래서 아날로그적 감성도 필요한데 걱정입니다. 책 읽어보고 싶네요.

노란가방 2025-03-31 10:33   좋아요 1 | URL
ㅋㅋ 옥스퍼드에선 별 걸 다 연구하네요. 칼럼에 실은 글이라 어렵지도 않으면서 생각할 꺼리를 주는 괜찮은 책이에요.

stella.K 2025-03-31 10:58   좋아요 0 | URL
왜 각 나라나 단체에서 올해의 단어 뽑잖아요. 실제로 뇌가 썩었다는 말이 있대요. 저도 몰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