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런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영상 또한 그런 성향에 맞춰 변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예컨대 요새 나오는 영상들에는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량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늘었다. 사람들은 단지 눈빛을, 얼굴의 잔근육의 움직임을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의 변화에 집중하지 않으니까. 그냥 보여주면 될 일도 이제는 일일이 말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빨리 감기로 보면 감정 이입이 덜 되어서 좋다”는 대답을 읽다 보면 살짝 어질어질 하기까지 한다. 이유인즉 감정의 소비를 절약하기 위해 작품에 너무 깊이 빠지기를 꺼린다는 말이다. 기분이 상하는 것이 싫으니 결말까지 빨리 미리 본 후 마음에 들면 비로소 처음부터 다시 본다는 말도, 이미 본 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는 이유도 다 비슷하다. 결말을 알고 있으면 감정의 소비가 적으니까, 새로운 것을 보려면 감정 소비가 많아지니까.(여전히 그럼 안 보면 되지 않나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 차오르지만..)
빠른 속도로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어려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영화고 드라마고 이른바 “설명충”이 등장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알려주어야 하는 이유다. 심지어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어려움이 닥치는 것조차 견뎌하지 못한다. 이른바 “공감성 수치”가 높아서 주인공의 고난이 자기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그 결과 요새 수없이 등장하는 양산형 이세계물들처럼, 주인공은 먼치킨적 능력을 지니고, 주변 인물들은 별 이유 없이 주인공을 좋아하는, 모든 것이 편안하고 안전한 이야기만 늘어난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지적했던 “매끄러움에 대한 (거의 숭배에 가까운) 집착”, 이른바 포르노적 탐닉만 남게 된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 원인을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빨리 감기” 현대인들의 마음속의 불안감이 반영된 현상인 듯하다. 책 말미 이제까지 대체로 약간 비판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던 저자는, 이런 관행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일종의 적응일 지도 모른다며 살짝 발을 빼지만, 글쎄.... 그렇게 보고 넘어가면 그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