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포스 믿음의 글들 395
윤영휘 지음 / 홍성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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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는 엄청난 혼란이 시작되었다. 평생 책임이라는 걸 제대로 져본 적 없는 덜 떨어진 정치 지도자가 시도한 친위 쿠데타는 곧 헌법(의 규정에 따라 계엄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킨 야당 주도의 국회)의 요구에 따라 진압되었지만, 거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탄핵된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위한 궤변을 남발하고 있고, 심지어 국회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마저 쿠데타를 옹호하며 온갖 뻘소리의 저급한 수준을 날마다 갱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맘 때면 늘 등장하는 양비론자들은 대통령과 여당은 물론 야당도 공동 책임이 있다는 식의 물타기를 시전하는데, 자칭 중립을 가장하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그냥 내란수괴와 그 옹호세력의 책임을 은근슬쩍 희석시키려는 교묘한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런 식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모두까기 평론들이 남발되면서 자연히 정치라는 영역 자체에 대한 회의감, 불신, 적대감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정치란 그렇게 그냥 버리면 그만인 영역에 불과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영역도 늘 우리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기도 하고, 때로 흑과 백의 경계가 모호한 그런 문제들도 있다. 합의라는 기초 위에 진행되는 민주적 정치구조 안에서는 혼자만의 돌출행동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양보는 상시적으로 요구된다.


이 모든 특징들이 우리가 정치라는 영역을 이해하는(수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은 극단적인 입장에 줄을 서곤 한다. 선명해 보이고, 무엇보다 과격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목적한 바를 이뤄주겠다는 달콤한 폭력의 맛에 취하는 거다. 과연 정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새해 홍성사에서 처음으로 낸 이 책은 제목에 실려 있는 유명한 영국의 한 정치인의 생애를 정리한 전기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노예무역폐지 운동의 기수였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이야기다.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인생의 항로를 결정적으로 수정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기관인 의회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그는 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어 의원직을 시작한다. 그의 의원직 수행 방식은 매우 독특했는데, 휘그당과 토리당이 맞서는 의회 구도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파로서 직무를 수행했고, 심지어 대학 동기이자 절친인 피트가 수상이 되었을 시절에도 내각에 들어가지 않은 채 때로는 정부를 견제하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협력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했다.


윌버포스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업적인 노예무역금지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주도로 제출한 열한 번의 법안이 상원 또는 하원에서 부결되었고, 개인적인 음해와 물리적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 기간이 거의 20년이었으니, 하나의 선을 이루기 위한 한 사람의 열정에 자연히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수없는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윌버포스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앙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간다고 여겼기에, 그 과정에서 겪는 방해와 공격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기독교인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국가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 왔던 인물이고, 이 과정에서 사용한 수단도 그 이상에 부합하는 방식을 취하려고 애써왔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정치인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싶지만 현실은...


물론 윌버포스가 살았던 시대와 오늘은 분명 다르고, 당시의 정치적 제도나 관행, 의회의 운영 방식 또한 오늘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는 건 무리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참된 정치인의 모습은, 정치에 대한 환멸이 선을 넘을 것 같은 이 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한 권씩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물론 태반은 읽어보지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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