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대 국가 -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허버트 스펜서 지음, 이상률 옮김 / 이책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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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사진만 봐도 왠지 영국 사람일 것 같은 정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쓴 네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국가의 통제(각종 행정조치)가 강화되는 것에 불안과 불만을 느낀 저자가 이에 반대하기 위해 쓴 것들이다.

 

     제1새로운 토리주의는 과거 왕정복고 시도 당시 왕정을 옹호하던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민의 자유에 무관심했던) 토리당에 반대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던 휘그당의 후예인 자유당이 정권을 잡자, 이제는 시민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들을 만듦으로서 사실상 과거의 토리당과 마찬가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2다가오는 노예제에서는 각종 정부의 규제법률로 인해 시민들의 자유가 크게 제한됨으로써 사실상 노예제와 다름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제3입법자들의 죄에서는 당시 의회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들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입법활동을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마지막 제4거대한 정치적 미신에서는 의회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2. 감상평 。。。。。。。   

     동네 도서관에 들어온 신간 코너를 돌아보다가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책을 집어 든 책이었다. 책의 본문도 본문이지만, 책머리에 수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는 번역자의 해설 부분이 흥미로웠다. 역자는 그를 저주받은 사상가라고 부르며, 그가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왔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스펜서에 대한 오해는, 그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원조를 비판하고, 적자생존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강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철학을 주장했다는 데 기인한다. 역자는 이 부분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사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가 상당부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비친다.

 

 

     물론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을 잘 읽어보면 역자의 이런 의견에 일정 부분 공감을 하게 된다. 사실 그가 시민의 자유를 이토록 주장했던 것은, 의회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이 난발되고 이로 인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이 꺾이고 나아가 오히려 손해까지 보게 되는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모든 종류의 규제를 철폐하고 완전한 자유경쟁에 맡기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고, 정부 권력이 시민을 직간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종류의 구속의 필요성까지는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조치가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불필요한 자유의 제약일 뿐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가 그토록 공격하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의 복지지원 문제를 두고 보자. 당장에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않은 시민이 실제적인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역자는 스펜서의 주장이 약육강식을 옹호한 것처럼 오해된 것은 그의 이론을 원래 의도에서 멀어지도록 오용한 사람들 탓이라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다시말하면 스펜서가 자신의 이론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할 수 없었으니 그의 잘못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스펜서가 3장에서 지적했던 문제, 즉 입법자들이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에 비춰 생각해 본다면, 스펜서 자신도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갈수록 정부의 권한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스펜서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자유를 옹호하던 정당, 정치세력이 이제는 과도한 규제를 통해 과거 반대하던 정치세력의 태도를 닮아가고 있다는 주장과(1), 의회의 권력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제4장의 내용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가족에서의 원리(약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주고 돕는)와 사회에서의 원리(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다는)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오랫동안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권력의 제한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가져와야 한다는 상황과, 반대로 시민의 자유를 위해 권력의 행사가 필요한 상황 사이의 조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면서도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어가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인데, 진영논리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정치계, 학계에서 이 작업이 과연 언제쯤 제대로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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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 이동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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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오랜 군생활을 해왔던 저자는 흥미로운 통계로 시작한다. 전쟁에 나가 있는 군인들이 실제로 상대방을 향해 총을 발사하지 않는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이다. 통상 20% 미만의 병사들만 상대를 향해 실제로 총을 쏘았다. 저자는 제법 많은 분량을 왜 병사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서술하는데 할애한다.

 

    결국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전장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저항 없이 공격을 가하도록 할 수 있는지 그 사회/심리학적 조건을 연구하는 책인가보다 할 즈음, 거의 결말부에 이른 저자는 갑자기 시선을 바꿔 미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강력범죄라는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주요한 이유들로 미디어와 게임 각종 영상물 등을 통해 살인에 대해 지나치게 익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사실 이것들은 앞서 나왔던 사격비율을 올리기 위한 새로운 훈련프로그램과도 비슷하다)이며, 장기적으로 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2. 감상평 。。。。。。。 

 

 

    저자는 전장에서 살해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요인들은 무엇이고,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또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는, 군사학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살해라는 극단적인 행동이 단지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 강도가 좀 약해졌다 뿐이지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공격적 행동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적용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군인들이 실제로 상대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전쟁을 일으킨 윗대가리들이 어떤 식으로 미쳐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전선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병사들의 차원에서는 아직 인간성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일 테니까. (하지만 이 부분도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시킨 결과 베트남전에선 90% 이상의 병사들이 실제로 발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다양한 거리는 이런 살해행위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인간이란 점을 인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쉽게 살해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상대에게 모욕적인 별칭을 붙이는 건 그가 나와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도록 만들어 더 쉽게 공격하게 만드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 자칭 보수진영에서 종종 사용하는 좌빨이니 좌좀이니 하는 딱지붙이기도 그런 예다. 상대의 인간성을 말살시킴으로써 그를 공격하는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려는 행동이다.(가련한 인간들..)

 

 

    저자는 진지하게 사람들이 영화나 텔레비전, 각종 미디어들을 통해 폭력적인 장면들에 반복적으로 쉽게 노출되는 것을 우려한다. 영화 속 장면들처럼 상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난사를 하고, 찌르고 베어 죽이는 일은 실제 전장에선 잘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사실 그런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 실제 군대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살해행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만드는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심지어 효과까지 증명되었다!!) 폭력적인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분명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영화들에도 액션이나 스릴러를 표방하면서 거의 슬래셔 무비에 가까운 장면들을 잔뜩 등장시키는 것이 거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의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특히 젊은(그리고 어린) 세대들에게 좀 더 사람들을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는 셈. 어차피 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미디어의 속성 상 스스로 자제하고 정화할 리는 만무한데, 폭력성에 관해 지적을 할라치면 검열이니 뭐니 하며 펄쩍 뛴다. (뭐 다 같이 죽자는 거지)

 

 

    꽤나 충실하게 연구를 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종류의 사회학적 성격의 연구는 그 특성상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가 필요한 법인데, 꽤 묵직한 내용의 책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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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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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2000년 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정치실험의 중심에 있었던 유시민의 에세이집이다. 1부에서는 헌법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2부는 좀 더 주제에 있어서 자유도를 높여서 장관과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이 느꼈던 것들, 또 특별히 참여정부와 자신의 정치적 이력에 대한 일종의 변명 등이 실려 있다.

 

 

 

2. 감상평 。。。。。。。  

    책이 나온 2009년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1년 쯤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책을 한창 쓰고 있었을 무렵은 2008년이었을 테고, 책이 정식으로 출판된 지 몇 달 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적어도 이 당시에는 고향에 내려가 농사지으면 방문객들과 함께 잠시 여유를 즐기기도 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정치계에 남아 있었던 유시민은 현실적인 이유에 있어서도 좀 더 치열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을 테고, 그 고민 중 하나는 그 당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헌법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뭐 어디다 내놔도 크게 꿇리지 않을 수준의 헌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헌법 따위를 딱히 자신의 직무 수행에 있어서 준거의 틀로 여기지 않는 (아니, 헌법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통치자와 그에 봉사하는 하수인들이 있는 한 좋은 헌법은 유명무실해질 뿐이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한 가지 더 덧붙인다. 한국 사회가 헌법의 내용을 실현할 만큼의 충분한 비용을 아직 지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헌법은 갑작스럽게 주어진 것인지, 대가를 치루고 얻어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비용은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성격의 것이기에,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재앙(물론 여기에서 재앙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파탄을 의미한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

 

 

    메인아이디어는 꽤 흥미롭지만, 나머지 모든 부분의 퀄리티는 좀 아쉽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야 어느 정도 벗어났겠지만, 그가 속해 있던 당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고 결국 탈당까지 해야 했으니 어지간히 고민이 많았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사정들 때문인지 칼럼들에는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수식문장들이 많아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다.

 

    예컨대 이즈음 도킨스에 빠졌었는지 뜬금없는 문화유전자 타령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새겨진 지도자에 대한 절대 충성이라는 가치관을 타파해야한다는 식의 논리 전개(p. 44)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여전히 정치적인 부분에 관한 관점들은 날카롭지만, 그 외의 부분들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 같은 기본적인 실수(p, 40)까지 퇴고되지 않은 채 나올 정도로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하나의 책으로서는 내가 읽은 유시민의 책 중에는 가장 완성도가 낮지 않았나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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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 - 알려지지 않은 해적의 경제학
피터 T. 리슨 지음, 한복연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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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약 。。      

 

     저자는 17, 18세기의 대서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유럽 해적들에 관한 기록이 언뜻 모순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극악한 무법자인 그들이 자신들 안에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고 체계적인 원칙들을 가지고 있었고, 잔인한 고문을 하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 실은 싸우지 않기 위한 여러 도구들(해적깃발, 고문, 그리고 그에 관한 소문들)을 이용해왔다. 여기에 직접 자신들의 선장을 11표로 선출하고, 나포한 배에서 선원들을 괴롭히던 선장이 발견되면 그들의 방식대로 처벌을 했으며, 전 세계에서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이 합법적이었던 당시 놀라운 비율의 흑인들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해적의 일원이었다는 것.

 

    이런 모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경제학, 그중에서도 자본주의적 경제원리를 끌어온다. 망망대해를 오랫동안 떠다녀야 했던 그들은 일종의 고립된 특수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고, 최소비용과 최대이윤이라는 기본적인 경제원칙에 충실한 결과 위와 같은 모순되어 보이는 요소들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그들의 행동이 어째서 경제학적으로 옳은 행동이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2. 감상평 。   

 

     해적들의 행동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본다는 시도가 흥미롭다. 동네에 작은 가게 하나를 열어서 운영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 이상이 참여하는 거대한 조직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며 움직이려면 한두 번의 운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법질서 따위는 무시하고 오로지 탐욕에만 눈이 먼 잔인한 폭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그들의 범죄기업을 유지했는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미처 생각도 못해본 부분이었고, 그래서 이 책에 실린 논리적인 해설은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진 해골과 뼈다귀가 그려진 해적깃발은 왜 달고 있는 걸까? 해적들은 나포할 상대방 함선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해적깃발을 달고 다니는 건, 상대로 하여금 얼른 도망가라는 뜻일 것이다. 때문에 해적들은 대개 적들에게 가까이 접근한 다음에야 이 깃발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 또한 이상하다. 그냥 나포하면 그만이지 굳이 귀찮게 깃발을 올리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을까? 그냥 멋으로? 저자는 이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설명을 한다. 그 깃발은 상대에게 저항하면 이와 같이 될 것이라는 위협을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최소한의 피해로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경제적인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책은 이런 식으로 경제학 원론에 배울 만한 기초적인 경제 원리들을 해적들의 행동을 통해 흥미롭게 제시한다. 관련 학과에서 교양서적으로 채택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 물론 기본적으로 해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문헌들을 참고하며 역사책으로서의 성격도 놓치지 않고 있다.

 

 

     다만 각자가 자신의 이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다보면 결국 최선의 경제적 결과가 도출된다는, 여전히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명제를 전제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여기에 합리적인 것경제적인 것을 은연 중 동일시함으로써, 경제성의 신화 - 경제적인 것이 옳은 것이다! -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고, 그들의 본성대로 행하면 자연스럽게 일이 잘 풀린다는 명제가 과연 옳은가?

 

     여기에 전통적인 경제학자 인 듯, ‘기업은 어떤 규칙이 효과적이고 합리적인지에 관한 국지적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정부 규제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134)’는 식의 친기업적 정서가 책 전체에 걸쳐 녹아있다. 정부의 규제나 개입은 어찌되었든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는 기업들의 두려움을 기정사실화 하는 논지들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는 꽤 마음에 든다. 역사와 경제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적절하게 버무리면 이런 작품이 나오는구나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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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전 대해부 - 누가 원전을 재가동하려 하는가
<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지음, 홍상현 옮김 / 당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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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일본은 현재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의 공격을 받아 본 국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동시에 일본 전역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50여 기의 원자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이 세워지기 시작한 시점도 핵공격을 받은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라고 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기억상실증을 초래했을까?

 

     책은 원전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여러 집단들 - 우선은 민간기업인 발전회사들에서 시작해 그들의 로비를 받는 정치인들, 언론들까지 -이 정책결정 과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일본의 원잔은 잘 관리되고 있으며 안전하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각인되도록 홍보할 뿐만 아니라, 돈을 무기로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을 주무르고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일본 내 원자력시설들을 엄청나게 도입하려고 했던 것은 놀랍게도 미국이라고 지목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종전 후, 비록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소련 등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자력기술력이 약했던 미국은 전 세계 에너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원자력발전의 원료가 되는 핵물질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원자력 시설을 짓도록 유도했고, 일본은 그 중 하나의 실험실이었다는 것.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 신문이 탐사보도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2. 감상평 。。。。。。。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수명이 다 된 원자로들이 하나둘 문제를 일으키면서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니 만큼 어느 한 쪽의 의견을 당장에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봐도 지금부터 뭔가 제대로 된 목표를 세우고 준비해 나가야 할 것 같지만, 역시나 그런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원전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일본공산당 기관지에서 나온 만큼, 원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선다. 탐사보도의 시작도 일본의 전력회사들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원전 재가동을 위한 지방공청회에서 우호적인 여론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자사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도록 독려하고, 주민이 아닌데도 공청회에 참여하도록 해 원전 재가동 찬성의견을 조작해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책은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정부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고, 그렇게 조종된 권력은 민간 기업의 이익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들어간 돈 보다 훨씬 많이 남는 장사니 할 만하다) 직원이니 언론이니 하는 쪽도 결국 돈 앞에선 고분고분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한통속이니 국민들은 알 턱이 없다. 병든 부위가 있는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니 정말로 큰 일이 난 후에야 알게 된다. 돈이라는 진통제, 아니 마약의 힘이다.

 

     사실 뭐 우리나라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라는 게 슬프다. 굵직한 사업마다 동원되는 어용학자들, 자기에게도 떡고물이나 떨어질까 싶어서 나팔수 역할을 하고 다니는 동네 한량들, 철저하게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토호들과 자칭 지방언론들까지 어쩜 우리 모습과 그리 똑같은지...(아마 일본의 그것을 베낀 게 아닌가 싶기도..)

 

 

     전반적으로 신문기사답게 문제가 되는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일본 원전의 기원을 재구성하는 2부는 인상적이다. 다만 비판의 근거가 좀 더 구체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원전반대를 전제하고 있어선지, 그것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세부적인 설명이 적다. 그저 원전은 문제가 많으니 폐쇄해야 하는 건데 그걸 재가동하려고 애쓰는 놈들은 나쁘다는 논리만 보인다고나 할까. 또, 일본의 ‘원전 신화’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도 좀 더 설명되었더라면 책으로서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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