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빌 게이츠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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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윈도우라는 운영체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컴퓨터 접근성을 높여주었던 빌 게이츠는은퇴한 후 공익재단을 만들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스케일도 커서 단순히 지역단위가 아니라 지구단위의 활동을 엄청난 돈을 들여가면서 하고 있으니이쯤 되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걸 아는 인사라고 해야 할 수밖에.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지역의 빈곤해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한 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정리해 나가고 있다관련 내용을 정리해 나가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만한 책.

 


기후위기의 핵심에는 탄소가 있다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원소인 탄소는그 특성 때문에 다른 원소들과 쉽게 결합해서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일부 과학자들은 우주에 이 탄소가 없었다면 아무 것도 없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니까문제는 그렇게 다양한 물질에 들어있는 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이야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인데이제 그 문제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되어버렸다이미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되어 온실효과를 증폭시킴으로써 지구를 덥게 만들고 있는데또 우리는 매년 새롭게 약 510억 톤의 온실가스(책에서는 다양한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환산톤이라는 방식으로 계산한다)를 배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 510억 톤을 제로(0)로 만드는 것만이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말한다단순히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사회가 회의를 열어 내미는 자체 해법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이미 배출된 건 어쩔 수 없으니새로 배출하는 양을 0로 만들어야만 더 급속한 파멸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말.(다만 이 제로라는 말은 아무 것도 만들어내면 안 되는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책은 지금 배출되고 있는 온실가스의 양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다섯 항목이 무엇인지그리고 그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들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각각 전기생산(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제조사육과 재배교통과 운송냉난방이 그것.


저자는 계산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그린 프리미엄이리는 개념을 도입하는데그건 지금 이용하고 있는 방식에 비해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면서 같은 효과를 내는 데 얼마의 비용이 더 들어가는지를 환산한 방식이다그린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므로이 분야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만반대로 그린 프리미엄이 낮거나 마이너스가 되는 영역은 비용 이외에 규제나 정책 등 다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문제 해결을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이다.


다양한 분야를 살피면서 드는 생각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장기적으로 현재보다 세 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한 상황에서우리는 화석연료 이외의 방식으로 그 양을 충당할 수 있을까저자가 대안으로 제안하는 초소형 모듈형 원자력발전은 과연 안전하고 깨끗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영역들은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고.


 

과연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을까빌 게이츠는 과학 기술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보이면서 어떻게든 풀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이어가는 듯하지만그리고 그런 전망이 맞았으면 좋겠지만인간의 이기심이 발전의 속도보다 더 빨리 앞서나간다면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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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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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붙은 유토피아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그런데 여기에 리얼리스트라는 단어가 붙으니 의미상 모순되는 한 쌍이 탄생해 버렸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뭔가를 풍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그렇다면 그 풍자의 대상은 누구일까리얼리스트일까아니면 유토피아일까?


만약 전자라면 이 책은 유토피아(존재하지 않는 곳)를 만들려고 실제로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의 헛됨을 지적하는 것일 테고후자라면 그들의 노력을 비웃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그건 불가능 할 거야’)을 깨뜨리려는 의미일 것이다. “너희들은 이게 안 될라고 생각하지만아니야 할 수 있어” 같은.

다행이 책은 두 번째 의미였다전자였다면 그저 시니컬한 비판서 수준으로 전락했겠지만이 책은 오히려 상상력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읽는 맛은 이 쪽이 훨씬 더 크다.

 


책은 빈곤층에 대한 현금 지급이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다오늘날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금의 직접 지급이라는 정책이 꽤나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반대파가 입만 열면 되뇌는 우려그렇게 했다간 아무도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실제 나타난 결과만 보면 근거 없는 비난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받은 현금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를 한다물론 일부는 직장을 찾는 일을 그만둘지도 모르지만(하지만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반적인 추세는 달랐다그들의 수익은 몇 배로 뛰어 올랐고오랫동안 천문학적인 원조금액을 쏟아 부어 시도했던 프로그램으로도 해결하지 못한(여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빈곤의 늪을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빈곤선 근처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도 현금 지급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삶의 질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취미나 관심사에 돈과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생기고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낸다.(대체로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자연스럽게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로 나아간다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런 정책적 논의가 조금씩 오고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구체적인 실험이나 사례 분석 없이자기가 속한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비난만 퍼붓는 한심한 수구정당 정치인들 때문이다흥미로운 건 자칭 진보정당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본소득을 부정하려 한다는 점인데이쪽은 편 가르기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 정치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역시 재원마련이 아닐까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국가 재정으로 효과적인 기본소득을 국민들에게 배분하는 건 무리로 보인다(대충 계산해도 5천 만 국민들에게 한 달에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려면 한 해 국가예산 전체를 털어 넣어도 모자라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깊고 다양한 고민을 통해 풀어나갈 방법을 찾는 식이어야지, “모르겠으니까 하던 대로라고 해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또 다른 송파 세 모녀는 굶어죽을 것이고길을 찾지 못한 자살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가기만 할 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책에는 주당 노동시간의 감축부의 재분배국경 통제의 완화 등 다양한 진보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그것들이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그런 아이디어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다양한 자료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다진보적 대안 언론사를 만들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런 제도들이 도입된다고 해서 어떤 사회가 당장 유토피아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실패나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이에 대한 반대파의 정치적 비난과 공격도 엄청날 것이다그렇게 시끄러워지면또 누군가는 나서서 케케묵은 옛 방식을 새로운 해결책인 양 내세울 수도 있고.


당장 자신의 눈앞에 직접적인 이익이 없으면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대중이라는 벽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개혁이 어려운 건 그게 당장 눈앞에 이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인데그 개혁의 수혜자들 또한 그런 이유로 미온적인 지지만 보내는 게 보통이다하지만 바꾸고자 하는 게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면그들은 단지 수혜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해야 할 동반자이기도 하니까어떻게 그들을 설득할지도 유토피아 계획의 일부여야 할 것이다.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철지난 계몽주의의 자취를 뒤따르자는 건 아니다계속 진보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인간들이 모든 문제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 진보주의도 내 취향은 아니다(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동료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대안은 단순히 당위만이 아니라 현실에 근거한 대안이어야 한다이리저리 방법을 모색해보는 이 책의 시도가 사뭇 와 닿는 이유 중 하나이다젊은 저자다운 과감한 제안이 인상적이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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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소 - 채식의 불편한 진실과 육식의 재발견
다이애나 로저스.롭 울프 지음, 황선영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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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초식아니 채식을 하는 것이 쿨한 삶의 방식인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자랑스럽게 자신의 식성을 표현하고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이들도 있다내가 뭘 먹었는지를 왜 그렇게 남기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무슨 영역표시 같은 걸까), 뭐 각자가 뭘 먹을지야 본인의 판단 영역이니 뭐라고 할 건 아니다.


문제는 특정한 식단만을 우월한 것으로 여기고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할 경우다자신이 하고 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서 자주 이런 모습이 나타나곤 하는데스스로 옳다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 그렇듯 종종 매우 강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육식그 중에서도 소고기가 여러 차원에서 해롭다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이 작업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첫 번째는 영양학적 접근이고두 번째는 환경적 접근그리고 세 번째는 윤리적 접근이다.

 


채식 옹호자들은 채식만으로도 모든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것처럼그리고 육식은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것처럼 말하기를 즐겨한다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단순히 칼로리만이 아니라 영향의 균형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소고기와 같은 육식이 단백질을 비롯한 각종 미량 영양소를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오직 채식만으로는 이런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도 없고(애초에 양도 적거나 없을뿐더러들어있는 일부 영양소는 고기에 비해 그 흡수율이 현저히 낮다), 때문에 따로 보충제들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식습관이라는 것만약 고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양소를 오직 식물성으로만 얻으려 한다면 우리는 매끼니 한 박스의 채소들을 먹어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일부는 가축을 사육하면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지적하며 채식을 옹호한다그러나 저자들은 실험실에서 배양되는 일부 대체육류가 단위당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으며가축이 발생시키는 탄소의 양은 전체의 2%에 불과하고그나마 화석연료와 달리 이미 자연 순환계 안에 존재하는 메탄이 배출되고 분해될 뿐이다또 소들이 먹는 사료의 90%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이 아니라 그저 풀이며소들이 차지하는 땅들은 보통의 경우 경작지로 사용하지 않는 땅들이라고도 지적한다.


육식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저자들은 이런 관점이 죽음에 관한 노이로제적 반응이라고 대답하는 것 같다가축과 함께 살면서 일상적으로 죽음을 마주하던 이들과 달리죽음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리된 도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이 반영된 두려움이라는 것이런 지적은 죽음을 다룬 다른 인문학 서적에서도 종종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나아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자연적인 죽음이 동물들의 도축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볼만한 구석도 딱히 없다는 지적도 덧붙여지고.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육식이 적절하게 섞인 식단이 가장 유익하다고 제안한다다만 이를 위해 지나치게 과밀한 사육환경에서 곡물 사료로만 비육되는 공장식 목축이 아니라, (곡물이 아닌풀을 먹고 자라는 가축들을 적당한 밀도로 사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요새 여기저기 샐러드 식당이 늘고 있다물론 그 위에 얹힌 온갖 토핑들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몸에 좋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사람들은 그렇게 채소류를 먹으면서 조금은 건강해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이런 식단은 종종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불리는데그 말은 다른 식단에 비해 칼로리가 낮기에 체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이런 식단으로는 충분한 칼로리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인데때문에 성장기나 회복기에 있는 사람들또는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이런 식단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평소 지나치게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사람의 경우일 것이다채식 그 자체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육식정확히는 소고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꽤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채식을 할 경우 오히려 제대로 섭취되지 않는 여러 영양소들이 있고이것들을 따로 보충제 형태로 섭취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부분도 그렇고반면 육식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우리 몸에 이를 채울 수 있다.


가축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공격에 대한 저자들의 대답도 인상적이다특히 물과 관련해서가축이 사용하는 물로 계산되는 것의 대부분이 빗물이나 풀에 맺히는 이슬 등의 형태로 가축이 없더라도 어차피 그 땅에 떨어지는 것이라는 지적이 날카롭다(반대자들은 소 한 마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땅에 십수 개월 간 내리는 모든 빗물을 소가 사용하는 것으로 계산한다). 사실 오히려 채식주의 대안으로 꼽히는 아몬드나 콩이나 카놀라를 단일재배 하는 데 더 많은 물이 들어가는 데도 말이다(이쪽은 단지 빗물로 해결되지 않고지하수 등을 일부러 끌어서 공급해야 한다).


물론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일은 나쁠 게 없다다만 정확한 내용에 근거해야 하고자신의 입장을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최소한 채식주의를 선언했다가 건강을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거나정육점 앞에서 가짜 피를 뒤집어쓰고 뒹굴려 협박하는 식의 덜 떨어진 모습들은 자제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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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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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생을 마감한 진보 정치인 노회찬이 생전에 한 강연회에서 했던 강연을 책으로 엮었다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면서 가장 중요한 해결과제로 공정을 꼽은 그는최소한 일한 만큼 먹고살 수 있는 나라를 제안한다비정규직과 파견직으로 왜곡된 노동구조로 인해노동자들이 일한 만큼의 대가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부터 해결하지 않고는 공정을 어디서 얘기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과 관련해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호주의 경우 두 가지의 최저임금이 정부에 의해 정해지는데정규직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그것흥미로운 부분은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정규직보다 25%가 더 높게 책정된다는 점이다고용상태가 불안하고 각종 복지나 수당이 제한되는 비정규직이 더 받는 것이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비슷한 예로 영국의 예도 나오는데여기는 아예 비정규직이 세 배쯤 높은 연봉을 제시받는다고 한다물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한 고용상태에 대한 보상 격이다.


굉장히 타당한 제도인 것 같다만약 이런 생각이 우리나라에도 정착이 된다면기업들이 함부로 쓰고 버리는 카드로 비정규직을 남발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최소한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말은 들어가지 않을까같을 일을 하면서도월급도수당도복지도 적은 이등노동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진보정당에서 평생을 보내온 인물답게노동에 관한 현안에서 중요한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그의 명쾌한 분석과 대안 제시는 듣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기본적으로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인 국가에서노동이라는 영역만 공정하게 만들어도 얼마나 큰 갈등요소가 해결되겠는가.

 

다만 소위 귀족 노조라고 불리는 일부 작업장 노조원들이 방만한 노조운영 형태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할지예컨대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유튜브를 상시로 켜 놓고 일을 하고외국 라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생산선을 보여주면서도 매년 기계적으로 임금과 각종 수당 인상과보너스를 요구하고심지어는 노조원 자녀들에 대한 특채까지 요구하는 그들의 노동운동은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건지또 최근 SPC 운송노조들이 벌인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비노조원들에 대한 테러행위는 용납해야 하는지 같은조금은 껄끄러운 문제들에 대해 노회찬은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조금은 궁금해진다.


그와 함께 진보정당 운동을 해온 이들이 남은 정당에는 솔직히 더 이상 별 기대가 가지 않아서 말이다채 열 손가락 숫자도 채우지 못하는 소수정당이면서도 온갖 진보적 과제들에 모두 한 숟가락씩 얹어놓는 데 바빠서 정작 노동문제 해결에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는 듯해 보이니...

 


그의 죽음은 참 안타까웠다그가 살아있다고 해서 집권세력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진 않지만적어도 야당에는 이런 인물이 한 명 쯤 있는 게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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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분석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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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에 나와 있는 자유주의말 그대로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이념이다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뭐든 해도 상관하지 말라는 말이다이런 철학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오랫동안 인류는 신분제 사회 안에서 살아왔고여기에서는 타고난 신분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게 바로 자유주의다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이 자유주의를 기본적인 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아니 실패했다고(과거형이다진단한다이 부분은 굳이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한 때 트럼프가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재선에 실패한 후에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건 그 표면적인 상징물이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국가의 운영은 사실상 비선출직인 관료들에 의해 장악된 지 오래다세계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는데그 중 상당수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목적인 듯하다가족공동체종교 같은 규범과 제도가 붕괴하고 있지만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보니 일종의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다.


저자는 이런 자유주의 체제의 문제는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자유주의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러니까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 이상적인 자유주의를 복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우린 해답이 아닌 것을 해답인 줄 알고 지지해왔다.

 


자유주의의 어떤 면이 그것을 실패로 이끌까자유주의는 그 정의상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규정한다인간이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전통이나 문화종교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문제는 그런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은 인위적으로 이런 상태로 인간을 몰아넣기 위해기존의 것들을 때려 부수는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오늘날 자유주의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을 많이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다문화적으로는 균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기존의 문화를 해체하고(역사적사회적종교적 맥락을 지우고전통으로부터 단절되어 한없이 가벼워진 문화생산물을 나열하는 것을 성공적인 다문화 정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다이런 상황은 비단 보수주의 정부나 진보주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나타나는 흐름이다.

 

자유가 그렇게 중요하다면타인을 위한 희생을 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의지까지 들먹이며(물론 비유적 표현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과 희생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유전자 단위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설계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자신의 원래 주장(유전자는 이기적이다)과 모순되는 주장일 뿐이다마치 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처럼저자는 문화교육시민사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어떻게 자유주의가 사람들을 망쳐왔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나아가 저자는 자유주의가애초에 그것이 물리치고자 했던 신분제 사회 속 귀족들을 다시금 만들어냈다고까지 말한다여전히 우리는 특권을 물려받고손쉽게 부모의 회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가문사이의 연대를 위한 결혼을 하며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사는 이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K드라마의 절반은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이다이게 자유주의의 결과임을 이제 인정하자.


 

저자의 대안은 자연스럽게도 탈자유주의일종의 대항문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자유주의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위로부터의 건설이 아니라아래로부터의 문화건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여기서 중요한 건 지역이다거대한 경제구조 안에서 소멸된 가정경제를 되살리자고 말한다건물을 짓거나 고치고요리를 하고텃밭을 가꾸고 하는 일들을 가정 단위에서 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현대 경제의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성격에 최소한으로 참여하는 일도 중요하다누가어떻게 만들거나 키웠는지도 알지 못하는 물건을 그저 소비하고필요가 아니라 유행이나 광고에 현혹되어 무절제하게 탐닉적으로 하는 소비활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나서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자치의 연습 또한 중요하다일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내가 사는 지역의 현안에 관심을 갖고가장 유익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훈련이 충분히 될 때우리는 좀 더 큰 단위의 문제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하지만 자유주의가 보장했던 선물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 분명해진 이 즈음뭔가 대안적인 방식을 모색해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자유주의 그 자체가 문제였다는 저자의 지적이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뭐 인류 역사를 두고 보면 이 사상이 주류가 된 것도 매우 최근의 일일 뿐이니까충분히 도전해 봄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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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09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축하드려요

노란가방 2021-12-10 08:19   좋아요 1 | URL
호오... 축하 감사합니다 ^^

쎄인트saint 2021-12-09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노란가방 2021-12-10 08: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변변찮은 리뷰가 당선이 되었네요.

서니데이 2021-12-0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노란가방 2021-12-10 08: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주는 용돈이 기분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