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양장) IVP 모던 클래식스 10
로날드 사이더 지음, 한화룡 옮김 / IVP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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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회는그리스도인은 부유할까물론 이런 식의 일반진술로는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교회 안에는 (특히 경제적으로도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최근 수십 년 동안 새롭게 기독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지역인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이들의 비율은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을 것이다보통 생각하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부유하다는 인상을 준다아마도 20세기 초중반까지 기독교가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주요 종교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좀 더 부유해지는 것을 그들의 구원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기도 하니까.

 


     물론 (wealth)’라는 것은 악하지 않다다만 부가 쌓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종종 이 차이는 각자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구조와 제도그리고 왜곡된 문화로 인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기도 한다이 책은 그런 상황을 정의롭지 못한 일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제로 여기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물론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대하시지만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그 이유는 이런 상황이 대개 억압적이고 비틀린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부는 나누어져야 하며다른 사람들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더 편한 삶을 위해 과시적이고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건 회개해야 할 죄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잘못된 구조를 만들어 낸 다양한 경제학적 문제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적지 않은 분량에 걸친 분석에는 환경적정치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모습이다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정의에 대한 고민 대신 더 많은 부유함에 대한 욕망만이 두드러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부유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더 검소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면서그렇게 절약된 물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건 후원이나 원조만이 아니라현재의 경제구조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에 투자하거나 그런 일들을 하는 기업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또한 가정재정의 십일조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의 중요하다는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개발도상국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빚을 탕감해 주는 등 국가와 국제정치적 차원에서의 방안도 함께 고민한다애초에 문제가 구조적인 것이라면 해결책도 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1978년 이 책이 처음 나왔던 그 때 이후로(내가 본 책은 2005년에 나온 증보판이었다세상은 많이 변했다공산주의가 무너지고지구적 기근과 기아문제는 상당부분 개선되었다다양한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고그 중 일부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그 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세상은 좀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트럼프의 미국을 필두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강대국들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구조는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 같고(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런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검사와 치료그리고 백신을 통한 면역의 전 과정에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쓰려져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이가 단지 최근의 몇 년에 국한된 특별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점이다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저자가 지적하듯다시 한 번 교회의 중요성그리스도인들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본다그래도 교회는 아직 뭔가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그건 단지 돈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물론 많은 교회들이 훌륭한 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교회는 큰 건물을 짓거나많은 재산을 쌓거나지속적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혹은 구성원들 각각의 사회적 명성을 높이거나 신분상승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인 조직이 아니지 않은가죽음까지도 감당하며 다른 이들을 도우려 했던 분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였다과부와 고아들을 돕고병자들을 돌보고사회가 인간이 아니라고 가르쳤던 노예들도 기꺼이 집사로 세웠던 혁명적인 조직이었던 교회가 그들을 만들어준 복음의 원초적인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면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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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 - 높아진 자아, 하나님을 거부하다
팀 켈러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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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에도 언급되어 있는 방탕한 선지자란 요나를 가리킨다이 책은 일종의 요나서 강해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전반부(파트 1~3)는 요나서의 각 장을 일정부분씩 나누어 설명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고후반부(파트 4)는 요나서 전체를 두고 세 가지 큰 주제를 뽑아 제시하는 내용이다.


     잘 알려진 설교자이자 목회자인지라책 전반에 걸쳐 잘 구성된 설교 원고를 읽는 느낌이었다서문에도 언급되듯저자는 세 번에 걸쳐 요나서 전체를 강해하며 연속설교를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아마도 그 내용들을 바탕으로 삼아 쓴 게 아닌가 싶다.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요나서의 핵심은요나가 가진 국수주의적 태도배제와 혐오 등에 관한 비판이다나와 우리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그건 죄로도 발전할 수 있는데그 이유는 우리의 하나님이 차별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소아(小我)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하나님의 길로부터 우리를 스스로 떨어뜨리게 만든다.


     저자는 우리가 한 배를 타고 있다고 말한다신자나 비신자나 모두 똑같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교통체증과 대형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이런 면에서 책은 최근 점점 주목받고 있는 공공신학의 한 자락을 담고 있기도 하다.


     최근 강하게 느끼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교회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거의 훈련받지 못했다는 점이다우리는 지나치게 내부지향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해왔던 게 아닐까그래서 달팽이 껍질 같은 얇은 외피가 벗겨지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그런데 흥미로운 건교회는 일찍부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함께 묶어내는 데 능했다는 점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셈이다.


     이 외에도 죄의 특징에 관한 인상적인 묘사들(방사선에 노출된 것과의 유사성)이나요나가 겪었던 폭풍과 같은 사건의 유익스스로를 괜찮은 신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성경을 오용하는 방식나아가 정치적 문제를 대하는 입장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곱씹으며 읽을 만한 내용들이 많다.

 


     문장과 개념을 다루는 재능이 있는 저자의 글을 읽는 건 즐겁다(물론 좋은 번역자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베타랑 운전사가 운전하는 편안한 자동차에 올라 타 있는 느낌이랄까더구나 그 운전자가 지금 이 차가 어디로 가야하는지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이젠 안심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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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톰 홀랜드 저자, 이종인 역자 / 책과함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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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연대를 계산하기 위한 기준으로 BC와 AD라는 기준을 사용한다전자는 Before Christ, 즉 '그리스도 이전이란 뜻이고후자는 Anno Domini라는 문구의 줄임말인데라틴어로 우리 주님의 날들이라는 의미다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준으로 시간을 세고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해서 이런 게 '불편했던' 사람들이 몇 차례 새로운 연대법을 제안하긴 했지만,(예컨대 저기 북쪽의 주체 몇 년이나 이슬람력 같은 경우여전히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병기하는 수준이다일단 전 세계의 달력과 시간계산법을 다 바꾸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한데그 때문인지 요새 어떤 사람들은 BCE(Before Common Era)라는 식으로 비기독교적 용어를 애써 만들려고도 하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이 책에서 주로 탐험하고 있는 서유럽에 국한해도 이는 마찬가지다한 때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수없이 일어서고 사라졌던 땅이었지만이제 이 지역의 기독교 인구는 20%도 안 되는 게 사실이다크리스마스를 홀리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생뚱맞음으로 상징되는전방위적인 무신론적 도전이 무척이나 강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상당부분 남아 있다고 수차례에 걸쳐 단언한다심지어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아니 그들의 주장 자체도 기원을 따져보면 기독교에서 연원한 것들이라는 말다만 여기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라는 말은 신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학적 차원에서 언급되는 표현이다우선 저자 자신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2천 년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힘을 추적하고 있다기독교는 그 기원부터 매우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세상을 정복하고반대파를 철저하게 탄압하고적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들을 신으로 섬기던 사회에서기독교는 예수의 희생과 죽음을 그 신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내다 버리고버려진 여자 아이들이 유기되어 창녀로 전락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던 고대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기독교가 제국의 담을 허문 다음부터 점차 당시 사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간다물론 세상의 진보는 일직선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고수많은 변주와 변조가 일어나곤 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구하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저자는 로마 황제 중 하나인 율리아누스를 예로 든다흔히 배교자 율리아누스로 불리는 인물인데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거의 국교의 자리에 올려놓았을 즈음에 나타나 이교주의를 부활시키려 한 인물이다문제는 그가 부활시키려 한 이교주의와 혼란 시대에 필요한 도덕과 윤리가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예컨대 일리아스’ 속 영웅들은 거만하고약탈에 열을 올렸고허약한 자들을 경멸했다율리아누스가 명예를 부여하려 했던 철학자들 역시 가난한 이들을 경멸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런 상황에서 기독교를 배척하면서 기독교가 도입한 새로운 윤리를 거부하는 일은 그 자체로 역설적인 시도였다저자는 율리아누스가 망상에 빠져 있었다고 평가한다(194).


     근대 이래로 종교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세속주의자들이 꺼내 든 성과 속의 분리라는 개념도 흥미롭게도 기독교 전통에서 등장한 것이었다그 시작은 아우구스티누스였는데이후 몇몇 교황들이 중세 기간 동안 교회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세속 권력자들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위해 이 개념을 강조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졌다는 것물론 오늘날에는 그 반대의 의도를 가지고 이 개념을 끌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지만이 개념을 진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그 개념을 정립한 교회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 또한 자기모순적 태도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은 인권이다인간이 보장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개념은 교회법학자들이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었다가난한 사람들도 생활필수품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주장한 것도노예 해방을 소리 높여 외친 것도 그 시작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었다마치 인권이 근대의 발명품인 양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천부인권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그들 역시 그 정당성을 다른 데서 찾지 못한다현대의 유물론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을 보면인권이라는 개념이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아니라는 게 확실해 보이긴 한다.


     물론 이런 설명들이그러니 인권과 성속의 구분이성과 자선과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려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다만 뿌리도 모른 채 어떤 사상이나 개념을 취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얄팍한 교만함을 피해야 한다는 것과어떤 좋은 개념들이 역사상 반복적으로 특정한 집단에서 나왔다면그 집단을 보는 눈도 좀 최소한 균형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정도는 기억해 둘만 하지 않을까?






     여기에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유익은유대교부터 기독교로 이어지는 역사를 너무 딱딱하지 않게그러면서도 충분히 연대기적 충실함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책의 각 장은 1~200년의 터울을 두고 그 시대의 중요한 장면들을 스케치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상당히 노련한 솜씨다.


     당연히 기독교 역사를 학문적으로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기에는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할 리는 없지만전체적인 그림을 갖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단순히 교리적 설명이나 일어났던 사건들을 순서대로 배열해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그것이 가지고 있는 내적 의미를 인문학적 차원에서 분석하고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한 지점까지 짚어주니 친절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을 듯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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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13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반도 다 못 읽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조금 지루하긴 합니다만
괜찮은 책 같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이달 안에 리뷰를 쓸 수 있을건지 모르겠습니다.ㅠ

노란가방 2020-10-13 20:27   좋아요 1 | URL
15일까지 리뷰 올려달라 하셨던 기억이..ㅋ 전 재미있어서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비슷한 내용의 좀 더 두꺼운 책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는지라 비교해 보며 읽을 수 있을 듯도 하네요. ^^

stella.K 2020-10-13 21:25   좋아요 0 | URL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알지는 그렇게 빡빡한 곳이 아닌지라
완독하고 올리려구요.ㅎ
기다리고 있다는 책 뭔지 궁금하네요.^^

노란가방 2020-10-13 21: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완독하고 잘 소화하시면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ㅎㅎ
폴 존슨이 쓴 ˝기독교의 역사˝란 책을 구입해놨습니다. 일단 알라딘엔 892쪽이라고 나와있네요. ㅋㅋ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 - 코로나 시대 성경이 펼치는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지음, 신지철 옮김 / IVP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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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명한 구약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의 새로운 책이다책의 내용 중 두 개의 장은 한참 전에 쓰였지만이 책을 위해 일부를 다시 써서 실었다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현실을 이해하고나아가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에 관한 저자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전염병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1장에서 저자는 성경적으로 전염병 같은 재앙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세 가지 방식(동등 보응의도적 권능자유로운 능력 행사)를 제안하면서 신비라는 전통적 주제로 되돌아간다각각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려 할 수 있지만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2장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이 현상이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한다물론 코로나19와 하나님의 징계를 곧바로 연결시키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그러나 어떤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하나님의 자비로운 속성을 안다면 더더욱.


     3장에서는 모든 것이 중단되어 버린 이 상황에서교회는 다시 한 번 희망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이것은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라어려운 시기를 맞아 가난하고 자신의 것을 쉽게 빼앗기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4장은 기도에 관해 말한다어떻게 이런 광범위한 재앙을 앞에 두고 우리는 계속 기도할 수 있을까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셨거나들어주실 힘이 없으신 건 아닐까저자는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전염병의 상황에서 기도의 본질은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5장에서 저자는 시편 77편을 분석하면서재난 상황을 통해 관심의 초점을 자아에서 하나님에로 돌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이 재난은 우리의 무력함을 발견하고그분의 풍성함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매우 짧은 6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구조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주목하게 만든다코로나19의 위협 앞에서 가벼운 죄를 저지른 재소자들을 석방하거나(교도소 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지막 7장에서는 새 창조를 위한 과정으로서의 탄식과 고통(특히 해산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빨리 괜찮다고 말하려고 한다그러나 진지한 고통이 없는 방식으로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없다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를 마주하면서 한국교회 일각에서 충분한 고민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기본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해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인데이들의 행태에서는 성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현실에 대한 충분한 분석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참담하다방송과 언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이들이 내뱉은 말은 훨씬 더 멀리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그들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는 단숨에 반사회적 집단으로 비춰지고 말았다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 사이를 구분할 줄 알겠지만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주는 타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성경도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마 22:29). 이 땅에서의 경험으로 부활을 멋대로 상상했던 사두개인들처럼그들은 성경 속에 담겨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풍성한 경험과 고민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자신들의 무지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독선적 확신에 빠져 있었다.



     우리가 월터 브루그만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는 독자를 성경 속으로 깊이 이끌어서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게 도와준다어지간히 성경에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이 책에 실린 고민들을 하나씩 따라 가다보면 분명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성경신학자인 저자는 본문 그 자체에 깊이 매달리면서그것이 비춰주는 현실을 재해석한다일부 결론들은 앞서 말한 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의 주장과 비슷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그리고 그 말 속에 담긴 함의는 전혀 다르다.


     각 장이 너무 짧아서 관련된 주제를 충분히 설명하고 깊이 있게 적용하기엔 지면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특히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접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더 아쉬움이 들 듯도 하다하지만 어디 한 권의 책에서 모든 것으로 얻으려 하는 게 가능할까이 책에서 제안된 주제들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독서과 공부는 추가로 해 나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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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칼빈주의 -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칼빈주의자의 모든 것
제프 A. 메더스 지음, 김태형 옮김 / 좋은씨앗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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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한 칼빈주의라는 독특한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일종의 반어법으로, 소위 칼빈주의를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종종 과도한 엄격한 모습을 가리키는 제목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단어는 진정한 칼빈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목표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책 전체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저자는 우선 소위 칼빈주의자들의 부적절한 처신들비타협적인 모습들, 분열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자세, 특정한 교리에 대한 과도한 헌신 같은(칼빈주의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절치 않음을, 유쾌하지만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빈주의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저자도 칼빈주의자다) 대신 저자는 칼빈주의가 본래 무엇인지를 풀어냄으로써, 앞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것은 도르트 총회에서 결의된 그 유명한 다섯 가지 칼빈주의자들의 선언인 튤립 교리다.

 

 

     솔직히 말하면, 튤립 교리에 담겨 있는 다섯 가지 선언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교리였다. 아르미니우스와 그 후예들에 의한 교리적 혼란으로부터 정통적인 교리를 지켜내기 위해 신중하게 구성된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당연히 이 교리를 굳게 붙잡으면, 애초에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결기 같은 것에 물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전투적으로 정리된 교리를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새롭게 조명해 준다. 저자의 이 흥미로운 작업을 따라가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고,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도르트 총회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거기에 담겨 있는 교리는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 맞다.(비단 튤립 교리만이 아니라 모든 바른 교리는 결국 그런 목적지에 이를 수밖에 없다.)

 

     전적인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으로 이어지는 이 다섯 가지 교리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애초에 도르트의 선진들은 이 다섯 가지 교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려고 했었고, 여기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상정된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소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 교리를 붙잡고, 원한이나 분노, 분열을 일으킨다면, 그건 정말로 은혜의 교리라고 할 수 있을까.(이런 차원에서 저자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를 가진 저자다. 다만 지나치게 현대적인 (그리고 미국적인) 농담에 살짝 거리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칼빈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영문자는 튤립TULIP이 아니라 예수님Jesus이다.”, “튤립TULIP 교리는 본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는 망원경이다.”처럼 눈에 쏙 들어오는 문구를 떠올릴 수 있는 재능까지 있다.

 

     저자는 교리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는 교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복음적 관점에서 교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켜주고자 한다. 특별히 수없이 분열되어 있는 한국 장로교(이 중 상당수가 칼빈주의자들을 자처한다)에 필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물론 애초에 그 사람들이 칼빈주의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이런 일들도 없었겠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특히 이제 갓 신학교를 마치고 목회 사역에 나온 젊은 사역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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