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한 달에 한 번 혈압 약을 사러 들르는 약국의 약사다. 30대 후반 나이로 보이는데 아주 성실하다. 너무 성실해서 마치 로봇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손님의 처방전을 받자마자 컴퓨터에 내용을 입력한 뒤 해당 약을 찾아 봉투에 담아 주는 일련의 동작에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것이다.

 

지난 휴일에 영화 보러 영화관에 갔다가 라운지에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약국에서흰 가운을 입은 로봇처럼 근무할 때와 다른 아주 편한 점퍼 차림이었다. 나는 얼른, 그의 눈길이 닿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갔다. 왜냐면, 모처럼 편하게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또한 약사 앞의 손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데도 아니고 영화관에서만은, 누구나 마음 편하게 영화를 봐야 할 자유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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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우리는 높은 지대에 사는 게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겠다. 우리 춘천에 국사봉이라는 자그마한 동산이 있다. 이 동산의 해발 높이가 203미터다. 그렇다면 춘천 시민들 대부분이 해발 150 내지 180미터 높이의 지대에서 산다는 얘기인데…… 해발이란 인천 앞바다의 수면을 0으로 기준한 거니 ‘150 내지 180미터 높이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구든지 어릴 적에 학교 운동장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해 봤을 텐데 그 거리의 두 배도 되지 못하는 높이다.

만일 서해에서 엄청난 해일이 나 바닷물이 내륙으로 밀려든다면, 우리 춘천에서는 어느 곳으로 피신해야 안전할까? 국사봉 정도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대룡산 꼭대기라면 괜찮을 듯싶다. 해발 899미터나 되는 높은 산이기 때문이다.

바삐 사느라 잊고들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우리 춘천은 대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저 멀리, 어머니 품 같은 대룡산이 봄날을 맞아 나날이 초록빛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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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단지 환경미화의 재료였다. 나는 나대로 바삐 살고 꽃들은 꽃들대로 그냥 피었다지기를 육십여 년, 오늘 비로소 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님을 위해 꽃다발 하나 마련하는 이들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꽃들이 아름다우니까 그 아름다움을 마련하는 마음씨였다. 낭비하는 짓이라 여겼던 내가 기나긴 세월을 낭비했음을 깨달았다. 문득 꽃들은 꽃집에서도 피어나고 우리 집 화단에서도 피어나고 있었다. 지난 날 화단을 꾸미고자 심었던 꽃나무들이 이 봄에 피어 올리는 무심한 아름다움. 계획과 질서와 욕망으로 살아온 날들의 여백에서 펼쳐지는 색깔들. 나는 아무 말을 못한다. 내 나름대로 살아온 생각들 모두 잃어버리고 꽃들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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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시적인 표현이 있다. 눈빛에 그 사람의 마음이 잘 나타난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해부학 상 우리의 눈은 뇌의 일부분이 두개골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란다. 그럼 그렇지,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일부분이 밖으로 나왔으니, 마음이 드러날 수밖에.

 

영국의 심리학박사 조지 필드먼 박사도 말했다.

유전자에 의해 형성되는 성격적 특징을 눈의 홍채를 통해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금언은 유전적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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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의 온도가 1도 올랐을 뿐인데 그 사실을 굳이 알리는 일기예보 시스템이 예전에는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즈음 나는 "우리 한반도를 에워싼 무수한 공기입자들의 전체적인 변화"임을 깨닫고 충분히 납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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