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한 달에 한 번 혈압 약을 사러 들르는 약국의 약사다. 30대 후반 나이로 보이는데 아주 성실하다. 너무 성실해서 마치 로봇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손님의 처방전을 받자마자 컴퓨터에 내용을 입력한 뒤 해당 약을 찾아 봉투에 담아 주는 일련의 동작에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것이다.

 

지난 휴일에 영화 보러 영화관에 갔다가 라운지에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약국에서흰 가운을 입은 로봇처럼 근무할 때와 다른 아주 편한 점퍼 차림이었다. 나는 얼른, 그의 눈길이 닿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갔다. 왜냐면, 모처럼 편하게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또한 약사 앞의 손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데도 아니고 영화관에서만은, 누구나 마음 편하게 영화를 봐야 할 자유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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