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산은 춘천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풍수지리 상 봉의산이  진산(鎭山), 향로산은 안산(案山)이라 한다.
2017년 12월 11일, 춘천의 사통팔달을 위해 향로산 자락이 한 옆을 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쨌든 나는 점잖은 위상을 갖추었는데, 녀석은 예전의 나처럼 입은 옷 여기저기에 무엇이 묻고 냄새도 나는 신세였다. 이런 경우를 인생역전의 한 예로 들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녀석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깨끗한 남방으로 갈아입었고 세수도 한 듯했다. 야윈 얼굴이지만 향긋한 비누냄새마저 났다. 동태찌개를 안주 삼아 우리는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영동선과 태백선의 승객들이 내리는 묵호 역 앞에는 늦은 시간까지 합승택시들이 대기해 귀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취해 가며 그간 몰랐던 서로의 사정을 알았다. 녀석은, 내가 가까운 시골 중학교에 영어교사로 있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일부러 지으며 ‘아이고 우리 영어선상님!’하면서 다시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건어물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된 사연도 털어놓았다.

“부모님이 거의 동시에 돌아가시면서 졸지에 고아가 되고 만 게 아니겠니? 공부도 공부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사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지.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거든. 그런데 마침 여기 묵호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고모님이 내게 전화해서 ‘너, 여기 와서 가게 일 좀 도울래?’하기에, 원주 집에다 동생들을 놔두고 나 혼자 여기로 온 거지. 온 지 벌써 삼 년이 되어가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

'마이펫의 이중생활​'- 발칙한 애완동물들 (2016.08 작성)

​

 이 영화의 첫 번째 매력은 동물들의 동작을 아주 섬세하게 잘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런 장면들에 놀란 나는 함께 영화를 보는 아내한테 물었다. "정말 강아지가 저런 동작을 해?" 아내가 답했다. "정말 저래요. 똑같아요!" 나와 달리 강아지와 친하게 지내는 아내이니까 빈 말이 아닐 것이다.

​

 

 이 영화는 우리 주변​의 동물들이 오직 본능에 따라 단순하게 움직일 거라는 편견을 일시에 부숴뜨린다.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장면 하나하나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 정성과 노력이라니!

  

 

 이 영화의 두 번째 매력은 기발한 발상이다. 주인이 출근하고 나면 애완동물들이 무력하게 집이나 지키고 있을 거라는 우리의 상식조차 일시에 깨부순다. 또한 양순한 동물로 아는 토끼가 부랑배 동물들의 리더가 되어 행동한다는 놀라운 반전.......  

​


 

 사실, 상식이 오래되면 고루한 그 무엇이 되어 우리를 타성에 젖어 사는 존재로 만들지 않나?  타성, 그것은 결국 우리 인간을 기계의 부품처럼 타자화하고 말리라.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상식에 잊혀진 순수 혹은 본질을 한 번쯤 생각토록 한다.

​

 

  실토하자면, 지칠 줄 모르는 폭염을 피해 냉방이 잘될 아무 영화관에나 들어가 있자며 아내와 함께 본 게 이 영화다. 어린이들이나 볼 애니메이션 영화이지만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자리에 앉은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감명도 받고 애완동물들의 매력에도 푹 빠졌다.

 


  "마이펫의 이중생활"

  이 영화는 어린이들만 보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 어른들도 봐야 한다. 잊거나 혹은 잃은 그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서.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74년 시월 어느 날이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상점들이 하나둘 불 밝히던 저녁 시간, 동해안의 묵호읍 거리에서 나는 녀석과 맞닥뜨렸다. 녀석은 자전거 짐받이에 짐을 높이 싣고 조심스레 페달을 밟으며 오고 있었다. 큰 키라서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여 핸들을 잡은 모습.

“야아, 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녀석에 나도 모르게 반말로 불러 세웠다. ‘최군!’같은 예전의 어줍은 호칭을 잊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하면서 녀석은 자전거를 세운 뒤 왼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나와 악수를 했다. 내가 말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이 얼른, 짐받이의 높은 짐으로 휘청거리려는 자전거를 두 손으로 잡으며 답했다.

“어떻게 되긴, 건어물 가게 직원이지.”

멋쩍은 표정으로 낄낄 웃더니‘건어물 배달 일이 곧 끝날 테니 가까운 술집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내가 단골로 들르는 ‘인천 식당’이 묵호역 앞에 있었다. 10평 내외의, 할머니 혼자 꾸려가는 식당 겸 술집인데 동태찌개를 맛있게 끓여내서 손님들이 많았다.

“인천 식당 어때?”

“그 집 좋지. 내가 배달을 마치고 갈 테니까 미리 가 있으라고.”

인천 식당에서, 나는 동태찌개부터 시켜놓고 녀석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게 뒤바뀐 녀석과 나의 처지였다. 녀석이 마치, 학창시절의 나처럼 검게 물들인 군복을 작업복으로 걸친 데 비해 나는 정갈한 신사복 차림이었다. 녀석은 가게 점원이지만 나는 어엿한 중학교 영어선생이었다.

묵호읍에서 삼십 리쯤 되는 면소재지 시골 중학교에, 그 해 74년 삼월 일일 자로 부임해 어느덧 시월이었다. 시골에서 지내는 답답함에 나는 주말마다 묵호읍에 바람 쐬러 나왔었다. 목욕탕에 들러 목욕 겸 이발하고, 인천 식당에 들러 동태찌개를 안주로 소주 몇 잔을 걸친 뒤 하숙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교사 임용이 하늘의 별 따기 같다는 요즈음과 달리, 사십 년 전에는 사범대학교를 졸업만 하면 교사로 임용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사학년 이학기 때 나는 밀린 학점들을 보충하느라 여간 고생했던 게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녀석이 이학년 일학기를 등록하지 않고 자퇴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71년 삼월 초의 어느 날이다.

201 강의실에 불쑥 나타난 영어과 조교가 ‘여러분. 새로 과대표를 뽑아야 하지 않습니까?’하고 말하기 전까지, 나는 최봉석 녀석이 자퇴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자퇴는커녕 녀석이 201 강의실 어디에 앉아 있는 줄 알았다. 그만큼 녀석한테 별 관심이 없었다. 철학개론 강의가 있었을 때에는 논쟁의 맞수로서 녀석을 확실히 의식하며 지냈지만, 이듬해인 71년 삼월 초경에는 녀석이 강의실에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녀석이‘겨울방학 중에 잇달아 부모님을 잃으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자퇴했다’는 사연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여학생들이 쑤군대는 얘기를 엿들은 거라서 그 이상의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학생이 녀석의 자세한 사연을 몰랐을 듯싶다. 이십 명의 남학생 중 열다섯 명이 우리 춘천 모 고등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이 지났음에도 우리의 녀석에 대한 거리감 내지 경원감은 여전했다. 대학 이학년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녀석은 ‘원주에서 온 촌놈’이었다. 그 즈음 원주는 춘천에서 시외버스로 세 시간은 가야 닿는 데라서, 먼 시골 같았다. 우리에게 춘천은‘강원도 도청 소재지’라는 자부심의 도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