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년 시월 어느 날이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상점들이 하나둘 불 밝히던 저녁 시간, 동해안의 묵호읍 거리에서 나는 녀석과 맞닥뜨렸다. 녀석은 자전거 짐받이에 짐을 높이 싣고 조심스레 페달을 밟으며 오고 있었다. 큰 키라서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여 핸들을 잡은 모습.
“야아, 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녀석에 나도 모르게 반말로 불러 세웠다. ‘최군!’같은 예전의 어줍은 호칭을 잊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하면서 녀석은 자전거를 세운 뒤 왼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나와 악수를 했다. 내가 말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이 얼른, 짐받이의 높은 짐으로 휘청거리려는 자전거를 두 손으로 잡으며 답했다.
“어떻게 되긴, 건어물 가게 직원이지.”
멋쩍은 표정으로 낄낄 웃더니‘건어물 배달 일이 곧 끝날 테니 가까운 술집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내가 단골로 들르는 ‘인천 식당’이 묵호역 앞에 있었다. 10평 내외의, 할머니 혼자 꾸려가는 식당 겸 술집인데 동태찌개를 맛있게 끓여내서 손님들이 많았다.
“인천 식당 어때?”
“그 집 좋지. 내가 배달을 마치고 갈 테니까 미리 가 있으라고.”
인천 식당에서, 나는 동태찌개부터 시켜놓고 녀석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게 뒤바뀐 녀석과 나의 처지였다. 녀석이 마치, 학창시절의 나처럼 검게 물들인 군복을 작업복으로 걸친 데 비해 나는 정갈한 신사복 차림이었다. 녀석은 가게 점원이지만 나는 어엿한 중학교 영어선생이었다.
묵호읍에서 삼십 리쯤 되는 면소재지 시골 중학교에, 그 해 74년 삼월 일일 자로 부임해 어느덧 시월이었다. 시골에서 지내는 답답함에 나는 주말마다 묵호읍에 바람 쐬러 나왔었다. 목욕탕에 들러 목욕 겸 이발하고, 인천 식당에 들러 동태찌개를 안주로 소주 몇 잔을 걸친 뒤 하숙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교사 임용이 하늘의 별 따기 같다는 요즈음과 달리, 사십 년 전에는 사범대학교를 졸업만 하면 교사로 임용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사학년 이학기 때 나는 밀린 학점들을 보충하느라 여간 고생했던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