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 무대 세팅 사진 한 장이 내 눈앞에 있다. 나는 그 공연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설레는 걸까. 악기들이 사람 없이도 무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 때문일까. 또는 무수한 시선들이 집중됐으나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절체절명의 느낌 때문일까.

저대로 공연이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객석의 침묵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들을 짐짓 모른 체 하는 조명 빛과 어둠의 합동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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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배우는 내 젊은 시절, 부럽기 짝이 없는 대상이었다. 탄탄한 몸매에 흠 하나 잡을 데 없이 잘생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연기력은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가 출연한 영화는 몇 편 되지 않았던 내 기억이다. 하지만 같은 남자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잘생긴 인물 하나면 충분하지, 연기력까지 갖출 필요가 있나?’

그만큼 나는 그 남배우의 잘생긴 얼굴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얼마 전이다. 나이 많은 모 여가수가 그 남배우를 찾는 프로그램이 TV에 방영됐는데나는 충격이 컸다. 그 남배우가 젊었을 적 잘생긴 얼굴이 하나도 안 남은, 극히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 돼버린 것이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잘생긴 인물의 평범화()’사례로써 입증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뿐 아니다.

내가 대학 다니던 젊은 시절, 캠퍼스 내에서 눈에 띄게 아리따운 여 학우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게 콧날도 오뚝한 아름다운 얼굴에, 게다가 몸매도 날씬했다. 당시 나는 그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하늘도 공평치 못하지, 저 여학생은 인물은 물론 몸매까지 예쁜데 그렇지 못한 여학생들은 뭐야? 무슨 죄들을 지고 태어난 것도 아닐 테고 나 참!’

그런데 그로부터 반세기쯤 흐른 요즈음 나는 우연히 그녀의 최근 모습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덧 동네에서 흔히 보는 할머니 모습이 돼 버린 것이다. 오뚝하던 콧날은 흔적도 없고 몸매조차 그저 두루뭉술해졌다.

 

나는 딱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신()이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요즈음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신의 유무는 모르겠고 다만 사람을 흙으로 빚어냈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한창 젊었을 적에는 잘생긴 인물도 세월이 오래 흐른 뒤에는 두루뭉술해지는 것임을. 마치 흙으로 빚은 조각처럼 말이다. 아아 세월무상 인생무상 

 

사진 : http://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9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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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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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광화문점  영등포점  강남점  잠실점)

영풍문고 (종로점  여의도점)

서울문고 (종로점  신세계점)

 

강원대학교 구내서점

춘천 데미안서점

춘천 천재서점

춘천 「봉의산 가는 길 」카페

 

- 책 속의 삽화 -

(칼라 삽화가 책에는 흑백 삽화로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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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동안 밤잠 설치며 고생한 결과 작품집 『K의 고개』가 발간되었다. 정말 내 새끼나 다름없는 책이다. 뿌듯함과 함께 그간의 고생에 대한 만감이 서렸다. 그런 나를 왠지 안 됐어 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아내. 나는 뒤늦게 눈치 챘다. ‘하필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책을 써낸 우리 남편. 참 딱하구나!’생각하는 게 아니겠나.

아내가 결국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내 눈에 어떻게 보이는 줄 알아? 무법자 영화의 크린트이스트우드 알지? 그가 권총 차고 멋진 모습으로 마을에 나타났는데 글쎄 마을 사람들 누구 하나 관심 없이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쁜 거야.나쁜 악당이 누구인지 일러주면 당장 해치울 텐데 전혀 관심들이 없다는 거지. 그럴 때  딱하게 된 크린트이스트우드를 내가 지금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 원, 소설가 마누라 생활 3년 만에 비유 한 번 절묘하게 하는구먼그래.’

 

 사진출처 : Ko diex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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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클린트이스트우드...괜히 마음이 짠합니다 ㅎㅎ

무심이병욱 2019-01-0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말 없습니다-------

쎄인트saint 2019-01-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나중에 크린트이스트우드가 완전 스타되죠....영화보다가..악당을 해치우러 나타나면..관객들이 모두 박수를 쳤지요..(참 순진했던 사람들)

무심이병욱 2019-01-09 18:05   좋아요 1 | URL
참 그런가요? 이제 기억이 납니다. 맞습니다. 무심은 님의 격려에 힘입어, 여하튼 열심히 글 쓸 겁니다.
감사합니다.
 

 

20167월의 일이다. 첫 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아는 후배에게 주고자 전화를 걸어 그 주소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제가 집에 없을 때가 많으니까봉의산 가는 길에 책을 두시면 됩니다.”

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책을 길에 두고 가라니, 그것도 봉의산 가는 길이라니 그 산을 올라가는 길이 여럿일 텐데 그게 말이 될 법한가? 짧은 순간이지만 이 후배가 책 받기가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스쳤다. 화가 치미는 걸 인내하며 되물었다.

봉의산 올라가는 길이 여럿 아닌가? 어느 쪽에서 올라가는 길을 말하는 거야?”

그러자 후배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말씀 드린봉의산 가는 길은 카페 이름입니다. 소양 1교 부근의 봉의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지요. 조용하고 창밖 경치도 좋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기는 명() 카페이지요.”

농사지을 때 외에는 두문불출하는 내 습성이 탄로 난 듯싶었다. 통화를 마쳤다. 후배가 말하는 봉의산 가는 길카페 위치를 알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소양 1교 부근에 갔더니 과연 그런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카페 주인 노정균씨를 만나게 되면서 나는 소스라쳤다. 강원대 교수 박기동씨와 얼굴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혹시박기동 씨라고, 강대 교수를 아십니까?”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잘 알죠. 그러잖아도 그분과 친 형제간이 아니냐는 말을 듣곤 합니다. 박 교수님이 저희 카페에 자주 들르거든요.”

나는 박 교수와 젊은 시절그리고 문학회활동을 함께 했던 인연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19712월 말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시내 중앙로 로터리에 접한 지하다방도심에서 만났다. 강대에 합격해 춘천에 이제 막 올라온 신입생 박기동은 강릉 지방 억양으로 내게 인사하며 말했다.

3때 편지로만 오가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다니! 저는 그저 강대에서 선배님과 문학 활동을 함께 할 생각에 가슴이 벌써부터 뜁니다.”

 

이번에 내 두 번째 소설집 ‘K의 고개가 나왔다. 전상국 교수님, 시인 이무상 선배님, 소설가 최종남 선배님, 소설가 박계순 선배님, 최현순 시인, 조성림 시인, 이영진 음악평론가, 김금분 시인 등 아는 분들한테 책을 우선 전했다. 2차로 화천 감성마을의 외수 형, 정선의 신승근 시인, 동기 김두중 시인, 이흥모 시인, 이문일 작가, 이지평 시인 등에게 전할 일이 남았다. 책 표지화를 해 준 전태원 화백, 삽화 담당 서현종 화백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박기동 교수한테 책을 전할 생각을 했다.

박 교수가 늘 바쁘니까, 봉의산 가는 길 카페에 내 책을 맡겨놓고 찾아가라는 문자를 보내면 되겠구나.’

그래서 오늘 봉의산 가는 길 카페를 찾아갔다. 박기동 교수, 아니 박기동 교수를 빼닮은 카페 주인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잔잔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박기동 교수가 요즘도 잘 옵니까?”

그럼요. 일주일에 하루는 꼭 들르지요.”

제가 두 번째 작품집을 냈는데 박기동 교수한테 한 권 전하고자 여기 들렀습니다.”

아이고, 책 발간을 축하합니다.”

카페 주인이 커피를 끓이는 동안 나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창이 넓다. 가까이 있는 소양강이 얼지 않은, 푸른 모습으로 창을 가득 채웠다. 박기동 교수, 박기동 교수를 70% 이상 닮은 봉의산 가는 길 카페 주인, 그 주인이 끓이는 커피를 기다리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봉의산 가는 길 카페는 춘천의 명소다. 늘 잔잔한 음악과 창밖의 소양강 풍경과 시인인 강대 교수 박기동 씨를 빼닮은 주인과 어떤 상념(想念)이 기다리고 있다.

 

 

#서현종 그림날씨 맑음, 춘천』

춘천 <봉의산 가는 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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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9-01-0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인터넷 서점에도 올라왔겠죠? 꼭 사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 ^

무심이병욱 2019-01-06 20: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책을 낸 출판사가 아직 인터넷 서점에 올렸을 것 같지 않습니다. 며칠 지나야 될 듯싶네요. 이번 책의 처음 순서로 실린 ‘k의 고개‘ 작품은 작가 이외수씨가 극찬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 제목을 책 제목으로 삼았지요.
그 외의 작품도 제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소설책이 안 팔린다는 시대이지만, 찔레꽃 님 같은 분이 있어서 소설가는 힘을 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