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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차가 얼마나 신통하더냐! 날마다 100리 길을 아무 말 없이 너를 편안히 실어나르니 말이다. 아비가 보기에는 한 마리 준마(駿馬) 같구나.


  여물(휘발유)을 넉넉히 먹여야 함은 물론이고 출발 전에는 반드시 말발굽(바퀴)부터 살펴야 한다.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갈거나 고쳐야  한다.
  말이 달리는 동안 주의태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른 말과 부딪히면 네 말은 물론 너도 함께 다친다는 것을 잊지 마라.
  퇴근 후에는 바깥보다 마굿간(지하주차장)에 말을 재워야 한다. 그래야 말이 밤새 편히 지낼 수 있으며 다음 날 이른 아침, 먼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다.
  말이 짐승이라 병이 나도 말 못한다. 하지만 몸을 부르르 떤다든지 하는 어떤 이상 신호를  반드시 보낸다. 네가 틈틈이 말의 여기저기를 살펴봐야 함은 그 때문이다.


  수많은 인연 중 지금의 말과 너도 한 인연을  맺었다. 정성을 다해 말을 보살핀다면 그 인연이 오래오래 갈 수 있음을 잊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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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보면 극히 평범한 숲이다. 하지만 나는 저 숲에서 산토끼를 두 마리나 봤다. 두더지도 봤다. 땅 위로  나온 그 놈이 퇴화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게 지금도 선하다. 보호색을 믿고 낙엽들 사이로 산책하던 까투리까지.
  동네 가까이 있는, 극히 평범해 보이는 저 숲. 비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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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장면일 게다.

아름답게 핀 노란 꽃이 그대로 땅 위에 있다가 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땅을 향하는 그 기괴한 모습을. 그 기괴한 장면에 놀랐을 때 아내가 농업센터에서 배운 지식을 말했다.

그 아래 비닐을 찢어줘야 된대요.”

파종하기 전에, 잡초 방지를 위해 비닐부터 씌워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로 두었다가는 땅을 향하던 게 비닐에 막혀 결실을 맺는 데 지장이 생겼을 것이다. 꽃 바로 아래의 비닐을, 이랑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찢어주자 과연 그 노란 꽃들이 떨어지며 뾰족한 줄기처럼 되더니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뿌리도 아닌 줄기가 땅속으로 파고들던 광경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필 우리가 농사짓는 데가 인적 없는 산속이라 한낮이라 해도 그 으스스함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달 후 그 줄기들은 뿌리처럼 땅 속에서 많은 땅콩들을 달아, 포기를 뽑으며 수확할 때 주렁주렁 나오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하 이래서 한자로 땅콩을 낙화생(落花生)이라 하는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낙화생이란 한자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우리 말 땅콩이었다. 대부분의 콩 류()가 지상에서 결실을 맺지만 이것만은 땅속에서 결실을 맺질 않던가? 그러니 땅콩이라 지칭한 우리말만큼 간단명료한 것도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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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나는 짧은 이 시를 보는 순간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일에 지친 화자가 이제는 그만 편히 쉬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들 삶이란 어차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좋으나 싫으나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 그래서 아주 작은 공간이나마 내(화자)가 쉴 수 있는 곳을 그리는 마음이 나타난 거라는 해석이다.

 

우리에게 이란 단어는 어떤 이미지인가? 고립이나 소외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마음 편히 쉬는 곳이란 긍정적인 이미지도 분명히 있다. 모든 게 복잡다단한 현시대에 이르러 이 휴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제주도라든가 그리스의 섬들이라든가 발리 섬 등이 휴양지나 신혼 여행지로써 인기를 끄는 것만 봐도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

 

그렇기에 복잡다단할 일이 없는 예전에는 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유배지로나 쓰였을 뿐이다.

  

한편, 이 시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상략) 시인이 꿈꾸는 섬은 먼 바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감의 세계, 혹은 그것을 향한 꿈이다. 정현종은 무척 외로울 때 이 시를 썼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 섬에 가는 길은 우정이나 연대(連帶)에서 찾을 수 있다. 동시에 홀로 있더라도 시를 읽거나 춤과 음악·그림에 몰입하는 영혼의 항해를 통해 이르는 섬이기도 하다. 그 섬에서 사람은 삶의 진짜 알맹이를 실감할 수 있다.(하략)”-박해현/기자, 조선일보 '문학산책'-

 

내 감상과 다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이 옳다는 주장을 하지 않겠다. 현대시의 맛은 난해한 데에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게 해석되거나 정답 같은 감상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한용운의님의 침묵이란 시에서의 을 절대자나 잃은 조국으로만 보다가, 근래 들어 실제 연인으로서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일로 온 국민이 패닉에 빠졌던 시절, 내게 이 시가 선하게 떠오른 까닭은 아무래도 시 속의 '섬'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느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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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 한파가  엄습하자,  늦가을 햇빛이 뒷산으로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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