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잡힌다. 눈도 덜 녹은 이 때 겁 없이 산에 올라 술까지 마신 사람이 하산하다가 비탈길에서 구르면서 어디를 다친 모양이다. 전에 민박 일을 할 때에는 저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불러서 집의 옥도정기라도 발라주고 보냈었다. 안 됐으니까. 이제 그녀는 그런 마음도 다 사라졌다. 먹고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되니까 마음씨도 팍팍해졌다.
아줌마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서 세수부터 하고 있을 때 김 과장은 경차 안에 앉아 있었다. 비탈길을 거의 다 내려와서 마음을 놓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며 굴러 떨어졌는데…… 얼굴 오른 쪽도 까여서 피가 나다가 멈춰 있고, 발목도 시큰거리는 게 여간 아픈 게 아니다.
그래도 살아 내려오지 않았나. 역시 운전석 바닥에서 찾은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어서 수신하라며 깜빡이고 있고 부재중수신이라는 표식도 하나 있다. 먼저 부재중수신부터 확인해 보니까 중학교 일학년인 딸의 번호가 뜬다. 문자메시지도 딸이 보낸 것이다. 메시지는‘아빠 지금 어딨어?’이것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런 문자메시지도, 부재중수신번호도 찍혀있는 게 없다. 아내한테서도 오지 않았다. 아내는 지금쯤 화장을 떡칠처럼 하고 노래방에 나갈 채비가 아닐까? 아내와의 대화는 김 과장이 직장에 사표내고 나온 지 딱 일 년이 되던 날의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대화다운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사표 내고 나온 지 딱 일 년이 되던 날 저녁에 아내는 김 과장한테 말했다. “그래, 과장들은 맡은 과에서 한 명씩 줄일 직원을 알아서 적어내라 했다는데…… 그래, 고민 고민하다가 자기 이름을 적어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당신은 여하튼 너무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