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까운 일은, 최봉석과 나 이외의 다른 학우들은 그분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분이‘자, 그럼 세 번째로 발표할 학생은?’해도 언제나 과묵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들로 버텼다.
그렇긴 하다. 사십 명의 눈길들이 일제히 주목하는 가운데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자기 의견을 흔들림 없이 펼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일 게다. 다른 과의 철학개론 시간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우리 4기 영어과의 경우에는 과대표 최봉석과 ‘나’라는, 특이하게도 발표를 즐기는 존재들을 둔 덕분에 학우들이 별 고생 없이 잘 지낸 셈이다.
결국 최봉석 녀석과 내가 학습할 내용에 대해 의견발표를 하고 나면 그분이 나서서 총평하는 식으로, 세 사람이 등장하여 전개되는 연극처럼 4기 영어과의 철학개론 강의가 매주 이루어졌다.
‘발표 학생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그분의 천명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비록 철학개론 교재 내용을 전제로 하는 의견발표이지만, 매주 한 번씩 내 생각을 마음 놓고 떠들어댈 수 있다는 즐거움에 그깟 부가점은 염두에도 없었다. 귀가해야 우울한 집안이고, 등교해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 캠퍼스였다. 지금이야 재적 학생 수가 이만 명을 넘는, 빌딩들의 집합체 같은 거대한 대학교이지만 당시에는 고작 삼사백 명 학생 수에 불과해서 초라한 건물 두어 채가 전부였다. 학교로 가는 길도 비포장 자갈길에, 다니는 시내버스도 없어 그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녀야 했다. 이래저래 답답한 현실에서 그렇듯 사십 명의 눈길이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한바탕 떠들어대는 그 즐거움.
더구나 먼저 발표한 자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내 주장을 펴는 그 묘한 즐거움이란!
즐거운 기회부여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인데 무슨 가산점은? 그런데 녀석은 ‘가산점 부여’에 어떤 생각이었을까?
‘막걸리 흘린 자국 많은 바지에 중고 군화를 질질 끌고 다니는 나’와 달리 모든 면에서 정갈한 품위를 유지하는, 빈틈이 없어 보이는 녀석이었으니 가산점 부여 문제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내가 오늘까지 다섯 번 발표를 했으니까 최소한 오 점은 벌었다’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