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현수막들이 깔린 삼십 고랑을 보수할 일이 생겨났다. 깔린 현수막들 중에 적지 않은 곳이 잡초들에 의해 붕긋하게 쳐들려져 있는 것이다. 혈기가 왕성한 총각의 그것처럼 현수막 밑의 잡초들이 위를 향해 솟구친 결과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현수막이 벗겨지면서 고랑은 잡초 밭이 될 게 뻔했다.
무서운 잡초였다.
쳐들린 현수막을 찾아 벗겨내고는 그 밑의 잡초들을 김맸다. 그런 뒤 현수막을 원래대로 씌우고 망치로 고정 핀을 박아서 복원했다. 암 부위를 도려내고 신체를 복원하는 외과수술 같았다.
삼십 고랑이라 힘이 들어서, 분업 형태를 선택했다. 밭 둘레의 화초들 주변을 김매려던 아내도 내가 분업 형태의 작업을 제의하니까 꼼짝 못하고 응했다. 아내가 먼저‘잡초들에 의해 쳐들린’현수막을 들어내고 김매면, 내가 그 현수막을 다시 고랑 바닥에 깐 뒤 고정 핀을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원 세상에, 툭하면 현수막들에 망치질이나 해대면서 명퇴 후의 세월을 보내게 될 줄이야.
현수막을 깔던 처음부터 고랑 바닥에 ‘언뜻 봐서는 이끼처럼 보이는’잡초 싹들이 있었는데 지난번의 나흘간 비에 무섭게 자라나, 벌어진 사태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방초 부직포를 깐 데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방초 부직포는 무거운데다가 검은색 일색이니 그 밑의 잡초가 제어되지만, 현수막은 얇고 가벼운 천이니까 햇빛이 투과되어서 잡초들이 기죽지 않고 솟구쳐 자랄 수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극성맞은 잡초들이었다. 아내가 일주일이나 걸려서, 팔백 평 밭 둘레에 심었던 갖가지 화초들도 잡초들 속에서 ‘녹아버리는’ 중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옛날 외갓집의 텃밭이 비닐멀칭도 하지 않은 맨땅이었지만 지금 우리 밭처럼 잡초가 극성을 떨지 않았었다. 요즈음, 다른 집의 밭들만 봐도 이 정도로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는 풍경이 아니었다.
아내한테 이‘이해 못할 우리 밭의, 극성맞은 잡초 사태’에 관해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아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지난 삼월 초에… 밭을 갈 때… 너무 많이 퇴비를 줬나 봐요.”
“무슨 소리야? 너무 많이 퇴비를 줬다니. 자세히 얘기해 봐.”
오늘 따라 민낯이라서 얼굴의 주근깨들이 유난한 아내가 말을 이었다.
“밭의 규모에 따라 적정량의 퇴비를 주는 거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우리 밭이 영 농사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산비탈인데다가, ‘처음 농사이지만 나보란 듯이 한 번 잘 지어야겠다’는 욕심도 났었나 봐. 이십 킬로그램짜리 퇴비 백오십 포대 정도면 무난할 것을…… 이백오십 포대나 구입해서, 지난번에 밭을 갈 때 흙과 다 섞이도록 했거든. 그랬더니 작물들이 먹을 퇴비 성분을 잡초들까지 덩달아 먹으면서 이 난리인 모양이야.”
그랬구나. 퇴비를 과다하게 살포한 밭이 되면서 작물은 물론 잡초들까지 과하게 자라난 꼴이 된 거구나. 다른 집 밭보다 우리 밭의 작물들이 더 잘 자라고 있어서, 우리가 초보 농사꾼 치고는 잘하는 편이라고 우쭐했었는데 그런 엉뚱한 내력이 있었을 줄이야. 기가 막혔다.
이 산비탈 밭에서 세 달째 벌어지고 있는 잡초의 난리는 애당초 진압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내가 어제 힘들여 금낭화 주변들을 김맸지만 오늘 찬찬히 살펴보면 여기저기 물이끼처럼 무수한 잡초의 싹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제초제 살포나 예초기 동원 같은 극단의 잡초 제거 방법도 고려해 봤으나, 우리 밭의 잡초들이란 게 화초나 작물들과 뒤섞인 듯이 어우러져 있어서 소용없었다.
“그럼, 저 잡초들을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비명 지르듯 아내한테 물었더니, 놀랍게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여보. 이제부터는 대충대충 농사를 짓자고. 우리가 농사지어야 생계가 해결되는 그런 처지도 아니니까. 다만…… 이렇게 앞으로 사 년 만 더 농사를 지으면 돼. 그래야 이 땅을 산 지 팔 년이 차고 그러면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거든. 그 때가 되면 당신이나 나나 더 늙어서 농사짓기도 어려울 텐데, 땅을 팔아버리는 게 당연할 테지.”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그래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나의 열패감이라니. 끈질기기가 잡초 같은 아내의 부동산 투기 근성. 그 얼굴의 주근깨들마저 잡초 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