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읍으로 돌아온 뒤의 얘기는 사실, 회상하고 싶지 않다.

  우리 미술반은 단 한 아이도 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뜻밖의 참담한 결과였다. 돌아온 이틀 후, 특상부터 가작까지 입상자들 명단이 학교 이름과 함께 백 명 넘게 일간 신문에 실렸는데 단 한 명도 우리 학교 미술반은 뽑히지 못했다. 믿기지 않았다.

  입상자 명단 발표 후 우리는 그분을 볼 수가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분이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갔다 했다. 또 다른 소문으로는 몸의 병이 악화되어 급히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했다고도 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더는 그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금요일 6교시 특활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미술실에 모였다. 나까지 다섯 명이 출석했다. 한 명은 몸이 아파 조퇴했고 다른 한 명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스케치북을 꺼내놓지도 않고 앉아 잡다한 얘기들이나 나누었다. 그분에 대한 소문부터 재미있게 본 만화 얘기, 어느 반 화장실 벽에 그려져 있다는 이상한 그림 얘기 등을 두서없이 나누고 있었다. 십여 분 지났다. 앞쪽의 미닫이문이 반쯤 열리더니 교무과장 선생님이 나타났다. 교장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데, 운동장 조회 때 사회를 보다가 순서를 바꾸거나 할 말이 안 떠올라 허둥대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선생님은 문도 다 열지 않고 복도에 서서 얼굴만 미술실 안으로 들여놓은 모양으로 우리한테 말했다.

  “여기 미술반 맞지요? 내가 당분간 미술반 담당입니다. 뭐 미술이라는 게…… 뭔가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각자 만화를 그려도 좋고 낙서로 그려도 좋고, 여하튼 떠들지만 말고 조용히 그림 그리고 있으면 됩니다. 알았죠?”

  ‘알았죠?’에서 이상하게 높아진 그분의 어조에 우리는 겁먹고 힘차게 대답했다.

  “네에!”

   교무과장 선생님은 이번에는 어조를 바짝 낮추어 으르렁거리듯 말을 이었다.

  “내가 교무실에 있으면서 가끔씩 여기를 와서 살펴볼 겁니다. 그 때 아무 것도 안 그리고 장난치는 새끼는 각오해! ……알았죠?”

   “네에!”

   교무과장 선생님은 반쯤 열었던 미닫이문을 다시 닫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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