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꿩 가족들을 본 지 두 달이 돼가도록, 산짐승들과 맞닥뜨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초가을로 접어들며 날씨가 쌀쌀해지자, 뱀들이 지난여름처럼‘무더위에 지쳐 아무 데서 오수를 즐기거나 길을 잘못 들어 비탈길로 들어서는 등’의 허점을 보일 리가 없었다. 머지않은 겨울을 대비해 겨울잠에 필요한 영양분을 축적하려고 먹이 사냥에 바쁠 참이었다.
그래서일까, K는 평탄한 산길을 가다가‘뭘 물고 부리나케 가로질러가는’ 뱀을 보게 되었다. 몸 무늬가 아름다운 작은 화사였다. 놈은 작은 아가리 넘치게 송장메뚜기 한 마리를 물고 있었다. 모처럼 잡은 먹이를 남한테 뺏기지나 않을까, 꿈틀거리며 달아나느라 아주 바빠 보였다.
K는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그깟 송장메뚜기를 탐한단 말이냐?’
놈이 이런 말을 하며 수풀 속으로 달아난 듯도 싶었다.
“이거, 내 꺼야!”
급히 스치는 풀잎들 소리에 뱀이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길 가는 행인이 K에게 뭐라고 떠들며 급히 지나간 경우처럼.
다시 며칠이 지났다.
K는 비탈길 산에 올랐다가 이번에는 깃털 화려한 장끼를 만났다.
‘먼 산부터 가까운 산까지, 밀려오는 파도들처럼 보이는 벼랑 위 넓적한 바위’에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이 바위는 봉우리에서 비탈길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다.
K가 먼 풍경을 바라보다가 어떤 느낌에 뒤돌아봤더니 장끼 한 마리가 삼사 미터, 싸리나무와 철쭉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었다.
K와 장끼는 서로를 보았다. 장끼는 눈이 대가리 전면이 아닌 측면에 있으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K를 보았다. 뱀이었다면 기겁했겠지만 꿩이니까 K는 편안한 마음으로 대면했다.
잠시 후 장끼가 고개는 그대로 두고 몸통만 뒤로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가 보겠습니다.”
마침내 고개까지 뒤로 돌린 장끼가 철쭉나무 아래로 사라져갔다.
K도 고개를 돌렸다. 다시, 밀려오는 파도 같은 산들을 바라보다가 바위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레 비탈길을 내려왔다. 지난여름, 동행하던 뱀이 어줍게 숨던 작은 푸른 수풀더미도 이제는 누런 건초뭉치로 변해 있었다.
나무마다 단풍든 잎들을 점묘화의 점들처럼 조용히 떨어트렸다.
K는 낙엽 지는 가을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