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지났다.

소나무 등걸에 부딪쳐 멍들었던 어깨도 좋아지자, 답답한 아파트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삼십 분 뒤인, 열시 반에아들애 방에서 나온 K는 혼자 아침밥을 차려먹고 등산 갈 채비를 하였다.

아들애가 자원입대하며 비워진 방에서 K는 혼자 지내는 것이다.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도 그 방에 갖다 놓고 지낸다. 텔레비전을 볼 여유도 없어 보이는 다른 가족들이었다. 안방은 본의 아니게 아내의 독차지가 되었고 딸애는 제 방이 있었다. 남은 가족 세 사람이 방 하나씩 쓰는 셈이었다.

K의 배낭 속에는 냉수를 담은 수통과 건빵 한 봉지가 들어 있다.

오늘은 발코니를 뒤져, 예전에 장만했던 등산용 알루미늄 지팡이도 찾아 들었다.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자, 호신용으로 챙긴 것이다.

시내버스를 탔다.

더욱 푸르러진 비탈길 산, 아래 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팡이를 쥐고 등산을 시작했다.

해발 오백이십 미터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설모 다람쥐 까치들이 눈에 띄고, 고라니 같은 게 숲속에서 후다닥 달아나기도 했지만 별 일은 없었다.

그럴 만했다. 산짐승들과 사람이 맞닥뜨리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보름 간격으로 뱀들과 맞닥뜨린 사실은 어떻게 된 것일까? K는 세 가지 원인으로 분석해 보았다.

첫째, 뱀이란 존재는 다른 산짐승들에 비해 움직임이 느린 짐승이었다. 다른 산짐승들은 사지가 있어 사람과 맞닥뜨릴 것 같은 순간 잽싸게 달아날 수 있지만 뱀은 그렇지 못했다. 몸통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이동할 뿐이니, K와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기도 했다는 형태적 시각의 분석이다.

둘째, 뱀과 맞닥뜨릴 때마다 몹시 무더운 날씨였다. 그런 날씨에는 산새들도 지저귀지 않고 나무그늘에서 조용히 쉬었다. K가 이 년째 산을 다니며 깨달은 사실들 중 하나다. 장끼 정도가 까투리들한테 존재감을 과시하듯 꿔엉!’ 하고 울 뿐, 대다수의 산새들은 나무그늘을 찾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새라고 해서, 쉬지 말고 종일 지저귀라는 법이 있는가?

무더운 날씨일 때 변온동물인 뱀은 오죽 힘들까.

먹이구하기도 멈추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오수를 즐기거나, 너무 무더운 탓에 제 정신을 잃고 가파른 비탈길로 잘못 들어서거나, 했다가 K와 맞닥뜨린 것이다. 기후변화에 원인을 둔 분석이다.

셋째, K가 산에 오르는 날들이 하필 평일이었다.

주말마다, 전국의 산에는 검은 등산복들을 단체로 맞춰 입은 것 같은 직장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명산들은 물론이고 도심 근교의 산들까지 주말에는 일주일 간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로 넘쳐났다. 산짐승들이 그런 주말이면 본능적으로 조심해 지내리라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K는 평일에 혼자 조용히 산을 다니니, ‘사람들이 붐비는 날이 아니니까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생각하며 해이해져 있던 뱀들과 맞닥뜨리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이 마지막 분석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K는 스스로 폄하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며칠 후, ‘먹구렁이가 오수를 즐기던 산에 오르다가 꿩 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물론 평일이었다. 주말이었다면 많은 등산객들이 졸지에 고생했을 것이다. 오후 들어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침 K는 시내버스에서 내린 직후여서 정류장 건물에서 소나기를 그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자 K는 등산을 시작했다. 산길이 질퍽거리고 젖은 풀잎들이 발목에 차여, 다른 등산객이었더라면 등산을 단념하고 귀가했을지도 모른다. 귀가해도 딱히 할 일이 없는 K였기에 등산을 강행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스레 산을 오르던 K는 봉우리가 보이는 오솔길에 이르렀을 때 꿩 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좁은 오솔길을 어미인 까투리가 막 건넜는데 새끼인 꺼병이들이 미처 뒤따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K가 갑자기 나타난 탓이었다. 하긴, 소나기까지 내린 평일 오후에 등산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안전한 수풀 속에서 새끼들과 잘 지내던 꿩 가족이 마음 놓고 바깥여행에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사람의 등장에 놀라 좁은 오솔길을 넓은 횡단보도인 양 건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꺼병이들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까투리. 애타는 장면을 얼떨떨하게 지켜보고 선 K에게 까투리가 불쑥 말했다.

좀 봐 주세요. 우리 애들 길 좀 건너게요.”

흉측한 생김의 뱀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K는 난데없는 까투리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소름끼치지는 않았다. 아무 동작도 않고 장승처럼 서 있음으로써, 까투리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꺼병이들이 부리나케 오솔길을 건너 어미 곁으로 가더니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예전의 K였더라면 까투리와 꺼병이들을 잡으려고 난리쳤을지 모른다. 잡아 봐야 제대로 요리해 먹을 수도 없으면서, 피 끓는 수렵본능에 피투성이 참극을 저질렀을 게다. 그러나 이 년째 산을 다니면서 K는 자신도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K는 꿩 가족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봉우리에 올랐다. 소나기에 한층 푸르러진 주위 풍경을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빗물에 젖은 하산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지팡이를 짚어가며 한 발 한 발 내려오다 결국 젖은 돌에 미끄러져 진창길에 주저앉았다.

과연, 우천 시에 등산하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뱀들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뱀들은 소나기에 체온이 저하되자, 바위 아래 같은 데 들어가 어서 볕이 쨍쨍 나기만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K는 진흙 묻은 바지와 등산화를 냇물에 닦으며 뱀들의 처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참 이상한 K의 변화였다.

 

사진 자료 : 구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