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바람이 불었다.

밤공기가 차가와져 공설운동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었는데, 그 날 밤 바람까지 불자 양아치들과 우리와 미친년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친년이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선, 오래 된 미루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 가마니 한 장을 바람막이 삼아 두르고서, 둘레가 두 발이 넘는 그 미루나무를 벽처럼 등 뒤로 기댄 채로였다.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며칠 전부터 공설운동장을 맴돈다는 년. 년을 훤한 낮에 보았다는 누군가의 귀띔에 의하면 인물도 좋다고 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런 대로 옷가지들도 정갈하게 차려입은 년. 산발에 짝짝이 신발만 아니었더라면 정상인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연에 미치면서…… 가출한 게 아닐까?

년은 자기를 에워싼 우리 패거리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간간이 소리없이 웃었다. 물론 어두운 밤이라, 년의 흰 치아들이 씨익모양 짓는 것을 보며 짐작했다.

양아치들 중 한 녀석이 년이 두르고 있는 가마니를 뺏어 땅바닥에 깐 뒤, 년의 상체를 잡아 눕혔다. 그래도 연실 웃는 년.

마침내 녀석이 허겁지겁 바지를 내리더니…… 년의 치마를 벗기면서 덮쳤다.

짐승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하체를 격하게 움직이는 녀석. 내 옆에서 꿀꺽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새끼였다.

아흐응 아흐으으흥…….”

년이 고양이 소리를 내며 녀석과 한 덩어리 몸이 되어 퍼드럭거렸다. 그런 어둠 속 광경을 에워싸고 있는데…… 다른 양아치 녀석이 자기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두 번째 타자로 뛰려는 채비다.

공설운동장에 바람이 거세지며 미루나무 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날렸다.

그 중 두어 잎이 년을 덮친 녀석의 허연 엉덩이에 떨어졌다가, 격렬한 엉덩이 움직임 탓에 이내 아래로 미끄러져 버렸다. 얼마 후 그 녀석이 끄응!’외마디 소리를 내며 기절한 듯 년의 몸 위에 엎드려 있자, 두 번째 타자로 준비하고 선 녀석이 이런 말을 하며 나섰다.

내 차례야.”

첫 번째 녀석이 바지를 추스르며 물러나고 두 번째 그 녀석이 하체를 허옇게 드러내고 자빠져 있는 년에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이 뒷다리들을 쩍 벌리고 죽어 자빠진 개구리한테 달려드는 가재와 똑 같았다.

여기저기서 바지의 혁대를 풀면서 다음 순서를 차지하려는데 그 때 내 옆의 새끼가 뇌까렸다. 분명한 발음으로.

이번에는 내 차례.”

끼득끼득 웃으면서 양보하는 양아치들.

나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마려운 오줌이라도 누고 오려는 듯 구부정한 자세로 물러나…… 바람 휘몰아치는 어둠 속을 걸었다.

공설운동장을 벗어났다.

그 때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늑대의 울음처럼 도시의 밤하늘에 퍼졌다.

으허엉으허엉…….”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산동네 골목으로 해서 하숙집으로 들어왔다. 방의 불도 안 켠 채 옷을 갈아입고는, 방문 고리를 안으로 잠근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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