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아치들은 늘 부시기를 쪼았다.
산수유열매같이 작고 빨간 부시기 불꽃들을 입에 물고 있다가 불티 같은 재를 떨기거나, 연기로 도넛 모양을 만들어 밤하늘에 올리거나 했다.
나는 걔들과 안면 정도는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가까운 산동네에서 4년째 하숙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된 거다. 걔들과 마주치게 될 때 ‘어이!’ 하는 반가운 소리를 하며 지나가는 식이었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새끼와 함께 나오면서― 걔들과 번번이 마주치게 되면서 새끼를 걔들에게 소개시켜줘야 될 것 같았다. 솔직히, 그러면서 새끼한테 내 가우도 한 번 세우고 싶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의 어느 날 밤이다.
걔들과 마주쳤을 때 나는 부시기 두 대만 달라고 했다. 나는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걔들한테 부시기를 받아서 같이 쪼곤 했다. 그건 ‘알고 지내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물론 새끼는 그런 걸 몰랐을 테다.
나는 걔들한테서 건네받은 부시기 두 대 중 하나는 내가 입에 물고 남은 하나는 새끼한테 주었다. 먼저 내가 불을 붙인 뒤 걔들과 함께 쪼기 시작하자, 놀라서 멍하니 서 있던 새끼라니. 얼마 후 새끼도 용기를 내어 부시기를 입에 물고는 내 부시기 끝에 대고 불을 붙였다.
같이 부시기를 빨더니 새끼는 이내 요란한 재치기를 몇 번이고 해댔다. 걔들과 나는 낄낄낄 웃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매운 담배연기 탓에 눈물이 그렁그렁할 새끼를, 걔들한테 정식으로 소개해 주었다.
“나와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야. 알고들 지내라고.”
서로 악수들을 나눈 뒤…… 걔들과 내가 뿜어대는 부시기 연기, 새끼의 콜록대며 튀어나오는 부시기 연기는 고향의 강가에서 던지던 허연 어망처럼 밤하늘에 흩뿌려져 어딘가로 날아갔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걔들의 나팔바지가 펄럭거리며 장발도 따라서 휘날리고 있었다.
걔들의 설러벌은 재미있었다.
대개, 깔치를 ‘꼬셔먹었다’는 설러벌들인데 주로 공순이나 식순이가 대상이었다. 당일로 먹었다는 경우도 있고 한 달은 걸려서 먹었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공설운동장에 밤마다 나타나는 공순이들은 아직 먹히지 않은 애들인가?
글쎄, 아무래도 구라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대놓고‘정말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찌 됐건 그런 설러벌을 재미있어 하면서…… 새끼와 나는 걔들을 닮아갔다.
우선은 나팔바지다. 교복바지를, 세탁소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밑동이 넓은 나팔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전부터, 걔들이 걸을 때마다 바람을 휘젓듯 ‘펄럭’ 거리는 나팔바지가 늘 부러웠었다.
머리도 스포츠형으로 길렀다. 학교 규정대로라면 바리캉으로 빡빡 밀어야 하지만 사실, 그건 너무 촌스러웠다. 바람 부는 날 같이 부시기를 쫄 때 바람에 날리던 걔들의 장발은 얼마나 폼 나던가.
교복바지도 그렇고 길어진 머리칼도 그렇고, 새끼와 나는 그런 모습으로 교문을 통과하기는 힘들었다. 교문에는 수시로 학생과 꼰대들이 교대로 나와 지켜서기 때문이다. 새끼와 나는 교문 대신에 뒷담을 넘거나 개구멍을 이용했다.
새끼와 나는 교모 안창을 뜯어내고 그 안에 부시기를 숨기는 방법도 터득했고, 미제 면도날을 구해 ‘왼쪽 발목 안에 대고 양말을 신는’무장도 마쳤다. 그래야 만일의 경우에 오른손으로 그것을 재빨리 빼내어 사용할 수 있단다.
물론 그럴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건 학교에서 퇴학당할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면도날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든든할 뿐이었다.
공설운동장의 양아치들도 제 각각 잭나이프니 송곳이니, 하나씩은 숨겨갖고들 있었다. 걔들도 굳이 사용하려기보다는 그것을 갖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차원 같았다.
그래야만 밤의 공설운동장을 휘어잡을 수 있지 않나?
괜히 멋모르고, 먼 동네의 애들이 공설운동장에 놀러와 거들먹거렸다가는 걔들한테 다구리 맞고 ‘발길에 차인 똥개’처럼 쫓겨나기 일쑤였다.
더러는, ‘애인과 데이트하러 온 사내’를 따로 불러서 좋은 말로 ‘부시기 살 돈을 꾸기’도 하는 걔들.
그러한 일들은 걔들에게 ‘깡’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다.
새끼와 나는 걔들한테서 그런 ‘깡’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