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우리는 건더기 하나 없는 멀건 국물처럼 시시한 놈을 ‘멸건 놈’이라고 불렀다. 맞춤법대로라면‘멀건 놈’이라 해야 맞는데 왜 그랬을까? 단모음‘ㅓ’를 이중모음‘ㅕ’로 바꿔 발음해야만 그 놈의‘시시해 보임’이 더 강조되었던 걸까?)

 

그 새끼는 멸건 놈이었다.

시골 중학교 출신인데 분명 그 학교에선 1,2등을 다툰 수재였을 테다. 하지만 이 도시의 우리 명문고에서는 그저 멸건 놈일 뿐이다. 왜냐면, 이 도시에 있는 여러 중학교들에서 배출된 ‘공부깨나 한다는 애들’ 모두가 우리 명문고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새끼 같은 시골 중학교 출신은 수재는커녕, 잘못되면 ‘바보’ 소리 듣기 딱 좋으니 그만 기죽어서 멸겋게 지낼 수밖에.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었다.

2학기 들어서 새끼와 내가 창가 분단에 같이 앉게 된 것이다. 담임선생이 자리 배치를 다시 한 결과였다. 그것도 하필, 내 자리 바로 뒤로 새끼가 앉게 되었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가 분단은 1,2교시 수업 때 칠판 글씨가 푸르딩딩하게 보이는 어려움이 있는데 유리창을 통해 밀려드는 현란한 아침 햇살 탓이다. 쉬는 시간에 뒤돌아 앉아 얘기 나누다보면 그 햇살은 새끼의 빡빡 깎은 머리통부터 시작해서 한쪽 뺨, 한쪽 어깨, 오른손 손등으로 발광페인트처럼 흘렀다.

그런데 하필 새끼의 눈동자 색이 멸건 잿빛이었다.

현란한 햇살 속에서 이상스레 빛나는 잿빛 눈동자는, 골목어귀나 쓰레기장에서 맞닥뜨리곤 하던 허연 눈깔의 잡종 개를 연상케 했다. 얘기를 나누다 말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나의 괴상스레 변형된 얼굴이 새끼의 그 기분 나쁜 잿빛 눈동자 속에 빠져 있어서…… 나는 ‘야, 이 새끼야 네 눈깔 빛깔이 뭐 그러냐?’칵 내뱉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새끼와 친해진 거다.

 

실토하자면 사실, 나도 전에는 멸건 놈이었다. 그러나 새끼와 달리 나는‘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도시의 어느 중학교로 진학한 경우’다. 이미 ‘멸건 놈’과정을 다 겪고 나서 이 명문고로 진학했기에, 그 새끼를 처음 봤을 때 멸건 놈인 줄을 단번에 안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새끼한테 비밀이다.

 

새끼와 나는 방과 후에도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일찍 가 봐야 심심하니, 시내를 돌아치는 거다.

기껏해야 장날 구경이 고작인 시골 고향보다는 아무래도 구경거리도 많고 재미난 이 도시다. 우리는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서들 구경거리를 찾아서 돌아친다.

제일 먼저 극장 앞에 간다. ‘미성년자 관람불가’홍보게시판에 붙은 야한 장면사진들을 구경하고, 다음 순으로 양공주 동네로 향한다. 야릇한 냄새가 나는 그 동네 골목을 지나가면서 도랑가에 버려진 콘돔 등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는 중앙시장에 들러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걸레 빵이나 순대를 사 먹는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고, 우리는 그제야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저녁 때 쯤에 헤어지던 게 좋았다.

그런데 밤에도 또 만나 어울리면서 우리는 이상하게 변해간 거다.

그렇다. 공설운동장이 문제였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더라면……’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하필 새끼와 나 사이에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공설운동장은, 내 하숙방에서 창문을 열면 한 눈에 들어왔다. 하숙집이 공설운동장 옆 산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새끼가 자취하는 집은 공설운동장과 평지로 접하는 동네에 있었다. 내 하숙방에서 창문을 열면 우선 공설운동장이 보이고, 그 너머 동네에 새끼가 산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 때 헤어졌다가, 괜히 밤에 또다시 공설운동장에서 만나기 시작한 거다.

밤의 공설운동장.

정말, 낮과는 딴판인 공간이다.

낮에는 ‘북괴 만행 규탄 시민 궐기대회’나 시민체육대회 같은 큰 행사 이외에는 인적 하나 없다. 개 한 마리 다니지 않는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달라진다.

어둠이 내리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죽은 개구리 냄새를 맡은 개울가 가재들’처럼 슬금슬금 모여든다. 그 거대한 어둠 속에 모습들을 가리고서 유행가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거나, 부시기를 쪼거나…… 혹은 데이트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면서 통금 사이렌 직전까지 부산을 떤다.

낮과는 딴 판으로 변하는 그 이상한 세계.

바로 가까이에, 밤마다 그렇게 마술처럼 변하는 세계가 있으니까 새끼와 나는 그냥 방에 쳐 박혀 공부만 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도 가재처럼 기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때가, 2학기 중간고사 시간표가 발표된 때였다.

 

새끼와 나는 각자 시험공부랍시고 한 시간 남짓 하고는 이내 어두운 공설운동장으로 나와서 한복판쯤에서 만나는 거다.

같이 휘파람 불면서 거들먹거리며 걸어가다가는, 장난을 친다.

각자 ‘그것’들을 꺼내어 잠시 밤의 시원한 바깥공기를 쐬어 주고는 다시 얼른 바지 속으로 넣는다. 내가 고안해낸 장난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스릴이 만점이다.

그런 장난을 치면서 어둠 속을 걸어 다닐 때 늘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여자들이 있다.

우선, 화장품 냄새 요란한 양공주들이다. 그녀들 서너 명 정도는 밤의 공설운동장에 나타나 자전거를 탄다. 중고자전거일 게다. 왜냐면 삐거덕거리는 잡음이 늘 나기 때문이다.

공순이들도 있다. 얘들은 합창으로‘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이나 ‘불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이나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이나‘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 유행가를 열심히 부르고들 다닌다.

걔네들한테 우리의 ‘장난’이 들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꽥 비명을 지르거나 경찰을 찾지 않을까?

그럴 일이 없도록 우리는 반드시 어두운 주위를 살피며 ‘장난’쳤다.

공설운동장에는 여자들만 있지 않았다. 양아치들도 있었다.

걔들은 대개 장발에다가 나팔바지 차림이었다. 낮에는 뭘 하며 보내는지 모르나 밤만 되면 나타나 거들먹거렸다.

걔들 숫자가 대여섯 명이라 우리를 다구리 놓기로 작정한다면 꼼짝 못하고 당할 테다. 그런 일은 아직 없었는데 비록 자기네는 건달이지만 ‘공부 잘한다는 명문고 학삐리들은 그냥 놔두자’는 데 뜻을 모은 듯싶었다. 마치 무림세계에서 협객들이 학식 높은 선비들을 아끼듯.

걸맞은 비유일까?

잘 모르겠다.

그런 패거리들 말고도 정체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이 ‘저녁 식사 후 바람을 쐰다’며 나타나는 밤의 공설운동장. 이 도시에 이만한 넓이의, 밤에 쉬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여하튼 새끼와 나는 그런 밤의 공간을 한 시간 가까이 돌아치는 것으로 ‘휴식시간’을 갖고는 다시 귀가하여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지낼 때가 좋았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하고 우리는 양아치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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