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분이 답했다.
“(딸꾹) 여기 시골 사람들이나 그렇지, 도시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골이라 해도 (딸꾹) 우리 같은 지성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시인이여. (딸꾹)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딸꾹)”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세 세상에 대한 갖가지 정견들이 거론되는 시국이었다.
어쨌든 자유가 만발한 새 세상이 시작될 거란 사실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다만,‘언제’시작되느냐에 대해 그분과 나의 견해가 좀 달랐다. 나는 내년 봄쯤으로 보았고, 그분은 내년 가을쯤으로 보았다. ‘아직은 유신 잔당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게 그분이 대는 근거였다. 사실, 그런 시점에 대한 견해 차이는 별 게 아니었다. 기껏 서너 달 차이였다.
우리는 흥건한 공감 속에 취해 있었다.
다음 날의 수업을 위해 술자리를 끝내기로 하였는데 시간은 이미 통금시간을 지났다. 내 하숙방에서 주무시고 가라 했으나 그분은 ‘충분히 갈 수 있다.’면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나는 웃옷을 걸치고 따라나섰다. 공무원이 통금에 걸렸다가는 경을 크게 칠 비상시국이었다. 그래도 ‘외진 시골인데 별 일 있겠나.’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대화도 삼가고 어두운 골목길을 택하여 조용히 걸었다.
전세로 있다는 그분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분은 내 어깨를 두 팔 벌려 잡았다. 키가 작은 분이니 나를 경배하는 자세처럼 보여서 하마터면 나는 웃을 뻔했다. 그분은 꼬부라진 발음으로 선언했다.
“시인이여, 우리 새 세상을 맞이합시다.”
나는 다시 골목의 어둠 속으로 돌아섰다.
하숙방에 돌아와 내 차림새를 보니 엉망이었다. 언제 도랑에 빠졌던지 발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바지 한 쪽은 한 뺨 가까이 찢겨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외롭고 따분한 객지생활에서,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그분과 한 직장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나이 차가 열 살 가까이 나고 자주 갖는 술자리가 아니었지만.
그 즈음 내게는 자정 넘어, 텔레비전으로 일본의 스모 경기 장면을 보는 취미가 생겼다. 동해 바다 건너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출한 장면이 어쩌다 포착되는 건지, 아니면 근해에 와 있는 일본 어선이 매개체가 되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취했는데도 잠이 쉬 오지 않아, 일본의 뚱뚱한 스모 선수들이 싸우는 경기를 지켜보다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