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영도자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문공부장관은 눈물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험준한 태백산맥 너머 동해안 지방이라, 신문은 아무래도 늦었다. 교감선생 옆에 켜 놓은 삼십 인치 텔레비전에서는 문공부장관의‘대통령 서거 경위에 대한 브리핑’이 반복돼 방영되는데, 배달된 신문들에는 ‘대통령 유고?’라는 큰 제호나 뽑혀 있었다.
충격 속에 맞이한 아침이었다.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의 말다툼 와중에서 대통령이 총격을 받아 사망하게 되었다는 브리핑 내용은 액션 영화의 스토리 같아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 교무실은 평온하였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동료교사들은 텔레비전 앞을 떠나 출석부와 교재를 챙겨들고 주섬주섬 교실로 향하였다. 다만 학생과장이 일부러 익살맞은 표정으로 교감선생한테 물었다.
“나라가 난리 났다는데, 정상수업 합니까?”
“무슨 쓸 데 없는 소리야! 괜히 수업하기 싫으니까 별 소리 다해! 어서 수업 들어가라고.”
“에이, 좋다 말았네.”
학생과장이 낄낄 웃으며 수업 교재와 출석부를 들고, 다른 교사들을 뒤따라 교무실을 나갔다.
김 선생님, 그분은 말없이 근무하고 있었다.
평소 태도를 보아서는 뭐라 한 마디 언급할 만한 사변인데 침묵을 준비하고 출근이라도 한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분의 그러한 표정에 당황한 나는 머뭇거리다가 어느 새 뒤따라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왠지 그래야 될 듯싶었다.
학생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하여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수업을 시작할 때 실장 녀석이 머뭇대다 손을 들더니 물었다.
“선생님, 오늘 정상수업 합니까?”
방금 전 교감선생한테 학생과장이 하던 질문과 똑같아서 나는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나 역시 교감선생처럼 답변한 때문이었다.
“원 녀석, 공부하기 싫으니까 별 핑계를 다 만들려고 그래. 어서 수업 준비나 해!”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왔다.
마침 그분도 옆 반에서 나와, 우리는 복도를 함께 걸어갔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치고 싶은데 그분은 낯선 사람처럼 말없이 걸어만 갔다.
교무실로 들어섰다.
교장선생이 교감선생 옆에 서 있었다. 월요일에만 있는 직원회의처럼 당신이 서 있는 모습이라‘긴급 직원회의’가 열렸음을 알았다. 운동장에서 들어온 교련선생을 마지막으로 직원 모두가 참석했음이 확인되자 교장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 비상시국을 맞았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교직원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기본분을 다 해야 합니다. 에…….”
말씀은 길었으나 더 이상 유심하게 들을 게 없었다. 뒤이어 교감선생이 발언했다.
“당분간 무단외출을 삼가고……”
하면서 그에 따른 구체적인 복무지침을 언급하였다. 긴급 직원회의가 이십여 분 열렸던 탓에 3교시 수업은 십 분이 잘려나간 사십 분 수업이 되었다. 그뿐이었다. 그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일과였다. 아니다. 7교시 본 수업 뒤 이어지는 보충수업 두 시간 중 한 시간을 교감선생이 잘랐다. 그게 큰 변화였다. 다른 날보다 퇴근시간이 앞당겨져 교무실이 떠들썩해졌다. 교감선생이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여서 외쳤다.
“일찍들 귀가하세요. 통금도 확대됐으니 이럴 때는 일찍 귀가하는 게 신상에 좋습니다!”
교감선생의 별명은‘물문어’였다. 그냥 문어도 아니고‘물문어’라 별명 붙은 것은 흐물흐물한 느낌의 거동에 연유한 게 아니었을까? 일과시간 대부분을 당신의 회전의자에 파묻혀 조는 것으로 흐물흐물 지내던 그가, 종일 안경알을 빛내며 텔레비전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변화라면 그 또한 변화였다.
나는 교무실을 나설 때 그분을 찾았다. 내 직감이 들어맞았음이 입증된 날에 술 한 잔 나누지 않고 귀가할 수는 없었다. 어느 새, 짧은 두 발을 총총히 움직여 교문을 나서는 그분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뒤쫓아 가려다가 포기했다. 발걸음을 평소처럼 하숙집 쪽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