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눈길을 돌려 교무실 창밖을 보았다.
가을햇살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교련수업을 받고 있었다. 목총으로 찌르기 동작을 되풀이하다가 한 학생이 실수했는지 교련선생이 따로 불러내어 지휘봉으로 그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나무라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멈춰 선 채, 따로 선 두 사람의 까만 그림자가 한 덩이로 엉겨 있었다. 묘한 장면이었다. 야단치고 야단맞느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 두 사람인데 정작 그림자들은 땅바닥에서 한 덩이로 다정하게 엉겨 있었다.
정국이 심상치 않다는 내‘직감’과, 저런 평화로운 운동장 풍경과는 전혀 연결되는 구석이 없었다.
‘정국이 심상치 않다는 직감이라니, 그건 다 내가 심심한 탓이다.’
나는 객지에서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퇴근하면 하숙집으로 직행할 게 아니라 다른 취미거리라도 찾아봐야 할 듯싶었다. 당구장에 가 보는 건 어떨까? 나는 당구장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침침한 대폿집은 즐겼지만 형광등 불빛 환한 당구장은 기피하였다. 정말 이해 못할 나의 촌스러움이었다.
퇴근길에 조심스레, 읍에 하나뿐인 당구장에 들어가 보았다. 담배연기 가득한 속에, 나보다 몇 살 위일 것 같은 사내들이 긴 큣대를 창처럼 들고 서성이는 분위기에 질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당구장은 조용한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낚시가 어떨까? 한 동료교사는 낚시가 얼마나 좋은지, 토요일만 되면 수업이 끝나는 대로 바닷가로 달려가려고 낚시꾼 복장으로 출근할 정도였다.
낚시가게에 들렀다.
낚시도구를 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물고기 낚는 일에 갖가지 도구들을― 그 중에는 비싼 것도 있었다.―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가게주인한테 ‘죄송하지만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양해를 구한 뒤 나왔다.
어울릴 만한 또래가 보이지 않는 이 시골 읍에서 나는 역시 하숙방에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하숙집으로 향했다.
아주머니가 차려 준 저녁밥을 먹은 뒤 텔레비전을 켰다. 모든 프로그램을 집중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내 방안에 누군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할 뿐이었다. 비록 누군가가 전자제품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텔레비전의 정규 프로그램이 느닷없이 중단되더니, 장중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대통령 유고’라는 자막이 화면에 떴다!
가까운 태백산맥 아래 철광산에서 자력이 방출되면 이 지역의 전자제품들에 문제가 생기는데 하필 그 시점이었다.‘대통령 유고’란 자막이, 금간 유리창의 글씨처럼 흔들리면서도 화면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비포장도로 가까이 있는 하숙집이라 한밤중에는 지나가는 차량들의 바퀴에 밟히거나 퉁겨지는 자갈들소리가 유난했다. 그런 소리들까지‘대통령 유고’자막의 장중한 배경 음악을 수시로 방해하는 좁은 방안에서, 나는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가슴속의 무엇을 간신히 억누르며 앉아 있었다.
‘내가 제대로 직감했구나!’
개업하자마자 첫손님의 운수를 정통으로 맞춘 점쟁이 심정 같다고나 할까. 통쾌감에 뭐라 외치고 싶었지만 늦은 밤에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고향에 있었더라면 아는 이들을 대폿집에 불러다 모아놓고‘거 봐, 내 직감이 맞았다니까!’하면서 술잔을 부딪치며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계속 텔레비전을 지켜보았으나 관련 보도도 없이 장중한 음악만 들려줄 뿐이었다. 문득 짐 가방 속의 트랜지스터가 생각났다. 발령 받고 이곳으로 올 때 소중하게 챙겨온 내 애장품이었다. 텔레비전을 월부로 사다 놓으며 그 동안 잊힌 물건처럼 되었었다.
트랜지스터도 텔레비전과 다를 바 없었다. 예의 장중한 음악을 지루하게 내보내면서 간간이 ‘대통령 유고에 따른 속보’나 예고할 뿐이었다. 그 속보가 언제 나온다는 기약도 없었다. 나는 다른 주파수를 찾다가 평양방송에 들어섰다. 억센 이북 억양의 사내가 긴급하게 떠들고 있었다.
“알립니다, 알립니다, 남조선의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