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짐 가방 두 개로 정리된 우리의 분교생활.

스크랩북의 결혼식 사진까지 증거자료로 첨부된 수기는 읍내의 우체국에서 잡지사로 발송되었다.

밖에서 경자를 기다리며 서 있던 나는 길옆 가게의 유리창에 비쳐진 내 몰골을 보았다. 산그늘 속에서 살아온 1년 반 동안 창백하게 말라비틀어진 몰골. 목발로 기울어진 체형.

머리가 사정없이 핑 도는 빈혈증세가 되살아났다. 후송병원에서부터 링겔로 부축되던 빈혈. 그 빈혈은 내게 컴컴한 그 무엇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은밀한 목소리였다. 나는 호주머니 속의 훈장을 만졌다. 훈장은 매끄럽고 찼다.

우체국 밖으로 나온 경자는 다시 가방들을 들고 앞장을 섰다. 시골 읍에서도 가장 싼 여인숙을 찾아 가방 둘을 앞뒤로 흔들며 가는 경자. 그리 오래 걷는 게 아님에도 나는 수시로 지쳐 멈춰 서곤 했다.

짐을 푼 허름한 여인숙 방.

며칠간 하품만 하며 누워 지내던 경자는 문득 제안을 했다.

우리 여행을 가요. 여기서 오십 리 남짓한 산 너머에 갈대가 무성한 초원이 있는데, 풍경이 꽤 좋다거든요. 거기에서 하루나 이틀 야영을 해 보는 거지요. 어때요, 내 생각이?”

생활수기 당선작 발표를 사흘 앞둔 날의 늦은 오후였다. 느끼한 햇살이 쥐틀만한 유리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자의 제안에 나는 처음으로 내 의견을 말했다.

그럼, 거기서 사냥도 하자고.”

 

버스를 타고 그 산의 아랫마을에 도착한 뒤 갈대밭 초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

분교를 찾아갈 때처럼 짐들을 양손에 들었는데도 지치지 않고 앞장서서 굽이굽이 산길을 가는 경자. 쩔룩쩔룩 뒤따르다가 멈춰 섰다가를 반복하며 뒤를 쫓는 나.

마침내 갈대밭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붉은 황혼 빛에 흠뻑 물든 초원 앞에서 경자는 환호성을 질렀다.

야아호 야아호……

환호성은 끝없이 메아리쳤다.

우리는 그 자리에 텐트를 쳤다. 저녁밥을 지어 먹고서 배낭 속 포도주 병을 꺼내 나누어 마셨다. 행복에 겨운 경자의 표정. 경자는 자신하고 있었다. 이틀 후 야영을 끝내고 여인숙으로 돌아가면 수기 당선자임을 알리는 통지가 와 있을 거라고. 그 날을 미리 자축하는 밤이었다.

밤중에 승냥이의 울음이 들렸다.

경자는 내 몸을 잔뜩 끌어안고 떨었고, 나는 엽총에 탄알을 넣고 승냥이를 기다렸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다. 초겨울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가 서서히 풀리며 훤하게 동트던 새벽.

동녘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갈대밭은 일시에 금빛으로 젖었다. 금빛 바다, 그 바다로 우리는 아침 밥 짓는 연기를 푸르게 날려 보냈다.

아직도 싸늘하게 남은 새벽추위에 벌벌 떨며 밥을 먹을 때 경자는 일부러 냠냠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한 입, 남편에게 한 입 하는 식으로 장난스런 숟가락질도 하였다.

태양이 하늘 가운데로 옮겨가자 갈대밭은 아침 금빛들을 낟알처럼 털어내고 퍼렇고 누런 제 모습을 찾아갔다. 경자는 점심 반찬을 마련해야겠다며 야아호 야아호 소리 지르며 갈대밭으로 내려갔다.

나는 텐트 속에 누워 갈대밭을 내려다보았다. 키 작은 경자는 갈대밭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그 움직임은 갈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태양은 흰 이빨들로 웃기 시작했다. ‘낄낄낄웃음소리들이 갈대밭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뒤져 소주를 꺼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마셨다.

적막이 내게 눈짓을 했다. 빈혈도 은밀하게 말을 건넸다.

끝내버려.’

우체국 부근에서 본 내 퀭한 몰골이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엽총을 들었다. 갈대밭을 겨누었다. 빈혈이 가늠쇠 구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여러 장면들이, 땀에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끊임없이 부침했다. 캠퍼스 시절 다방탁자에 가득 쌓이던 성냥개비들…… 내 동정을 삼킨 창녀의 하품…… 치열한 전투를 각오한 참전 지원…… 사단 연병장, 찢어진 적막의 햇살…… 사랑합니다’, 벚나무의 눈꽃들…… 산길, 목발…… 돼지새끼, 아이들, 생활수기 공모……

 

경자가 마침내 나타났을 때 나는 내 목발을 던졌다. 흰 선을 그으며 목발은 갈대밭 속 경자 부근에 파묻혔다. 얼떨떨한 표정의 경자에게 큰 소리로 일러 주었다.

경자야! 빨리 도망가. 도망가야 산다니까.”

그리고 타앙한 발을 허공에 쏘았다. 총소리는 타앙 타앙 타앙 초원을 흔들며 퍼져나갔다. 경자의 앙탈 섞인 목소리가 이내 기어 올라왔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 입술로 흘러드는 땀의 짠맛을 느끼며 나는 답했다.

무슨 소리냐고? ……더 이상 경자의 남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소리야. 경자. 경자는 이제 빨리 도망가서 다른 남주인공을 찾으라구. 양 다리가 달아나고, 양 눈이 다 달아나간 멋진 주인공 말이야.”

나는 다시 타앙 타앙 타앙 세 발을 그 주위로 쏘아 갈겼다. 악에 받친 앙탈의 소리가 다시 나오르려다가 경자는 허겁지겁 갈대밭 속으로 몸을 낮추어 숨었다. 경자의 모습 대신 갈대의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엄습하는 졸음과 현기증을 고개 흔들어 깨우면서 갈대밭의 움직임을 조준해 한 발 한 발 쏘아갔다. 갈대의 움직임은 한참씩 안 나타나기도 했다.

경자가 갈대밭 속에 웅크리고 앉아, 불감증의 손으로 주근깨의 얼굴에 뒤범벅인 땀과 눈물을 닦으며 핵핵 떨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갈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겨냥해 쏘았다.

마침내 연거푸 두 발을 쏘았을 때 짧은 신음소리가 튀면서 갈대밭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풀과 나무와 바람과 하늘은 숨을 죽였다.

태양은 숨을 죽였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태양의 파편들도 그대로 공중에 얼어붙었다. 갈대밭 초원에는 그 파편들 대신 적막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엽총을 목발 대신 짚고 그 적막을 내려다보았다.

넓기만 한 초원.

! 하는 소리와 함께 훈장이 발 주위에 떨어졌다.

무공에 관한 찬사의 글씨들이 다 닳아버린 훈장, 거기에는 바짝 얼어붙은 태양이 숨죽이며 들어 있었다.

자아 어디로 가야하나.

초원은 넓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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