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단칸셋방에서 우리의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상이용사와 사랑에 빠진 간호장교 출신 여인을 격려하는 전국 각지의 성금과 물품들이 답지하기를 보름여, 더 이상 답지할 게 없는 즈음이 되자 경자는 물품들을 모두 반값에 내다팔았다. 성금에다가, 병원을 퇴직할 때 받은 자기 퇴직금은 물론 내게 지급되는 상이군인 연금까지 자기 통장으로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경자는 큰 가방 두 개로 짐을 꾸렸다. 무슨 짐이냐고 묻자 경자가 답했다.

당신은 그저 따라오기만 해요. 시골로 가는 거니까.”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는 그곳에 직장과 살 집도 얻어 놨으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나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다 낯선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포장이 안 된 도로 탓에 심히 덜컹대는 버스로 가길 두어 시간. 마침내 버스에서 내렸다. 허허벌판에 우리 둘만 서 있었다.

큰 가방 두 개를 양손으로 나누어 든 경자와 목발을 짚은 내 그림자가 흙먼지 이는 벌판에 드리워졌다.

경자는 앞장을 서서 벌판 끝 산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쩔룩쩔룩 뒤따라가다가 힘겨워 멈춰 섰고 그러면 경자는 그걸 모르고 얼마만큼 가다가 멈추어 서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늦봄의 햇살은 비스듬한 각도로 들이쳐서 나는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고 풀풀 날리는 경자의 발걸음 흙먼지를 주시하며 뒤따라야 했다.

조금도 지치는 기색 없이 손에 쥔 두 가방을 앞뒤로 엇갈려 흔들며 앞장서가는 경자.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 길로 들어섰다. 옆으로 다가서는 산들로 점점 좁아지는 하늘, 십 리쯤에 한 채씩 보이는 민가, 요란해지는 계곡의 물소리.

저녁나절에 어느 낡은 너와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내 목발이 부러져나가, 긴 나뭇가지를 대신 짚어야 했다.

너와집은 화전민이 사는 집이었다. 머리 한 번 감은 적이 없어 보이는 봉두난발 화전민 내외가 우리를 맞았다. 비어 있는 옆방이 우리가 며칠 묵을 방이라 했다. 빛바랜 신문지들로 도배된 벽, 가마니 두 장이 장판 대신 깔려 있는 방바닥. 보리밥 저녁을 얻어먹자마자 나는 물먹은 솜처럼 쓰러져 잤다.

사흘 후.

경자가 어디서 구해온 목발 하나. 나는 다시 경자 뒤를 따라 나서야 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또 다시 산길. 긴 뱀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로지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기한 새 울음소리. 웬 사마귀가 경자의 머리카락에 붙었다가 날아가기도 했다.

쩔룩쩔룩, 경자를 따라 굽이굽이 산길을 갔다.

산 위의 태양은 엄청난 소리로 맴돌며 땀에 젖은 내 몸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나는 앞으로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목발을 짚었다.

한나절 걸려 도착한 곳은 조그만 학교였다. 교문도 없는 운동장 저 편에 자리한 교실 한 칸짜리 분교.

돌투성이 운동장은 잡초들까지 무성했다. 나는 목발을 내던지고 운동장 어귀의 포플러나무 등걸을 부여잡고 섰다. 겨드랑이 살갗이 벗겨지고 문드러져서 피가 웃옷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어지럽기까지.

빈혈 증세.

분교의 빛바랜 유리창들마다 한 개씩의 태양이 담겨져 운동장을 내다보는 한낮. 나는 가쁜 숨을 가누면서 어질어질한 채로 서 있었다.

경자는 건물 한쪽 끝으로 달려가더니 종을 치기 시작했다.

땡 땡 땡 땡……

종소리들이 유리창의 널린 태양들과 함께 내 지친 신경을 후려치고 있었다. 나는 옷 속의 훈장을 만지며, 그 차가운 촉감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빈혈증세와 싸우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