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도시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작 친지들보다 더 많은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식장으로 달려왔다. 취재의 화살은 나보다도 경자에게로 퍼부어졌다. ‘어떻게 몸이 불편한 분과 장래를 약속하게 되었습니까?’

경자는 간단한 대답으로써 기자들의 호기심을 일축하였다.

저는 이분을 사랑합니다.”

그 이상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부모님부터 고모 이모네까지 참석한 우리 쪽에 비해, 경자네 쪽에선 같이 일하던 간호장교 두셋이 가족처럼 왔을 뿐이라 양가 어른들의 인사 차례도 생략하고 간단히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나중에 경자가 해명하기로는, 어머님 한 분이 살아계시지만 노환으로 누운 데다가 친척도 별로 없는 자기 집안이라 했다.

기자들은 결혼식장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피고서 요란뻑적지근한 판단을 내렸다. ‘신부네 집에서 극심한 반대가 있었는데도 결국은 한 여성의 진실한 사랑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기자들은 경자의 이름을 필두로 자기네 감정까지 듬뿍 발라가며 기사를 써갈겨댔다. 우리의 결혼은 그렇게 뉴스거리가 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흘간의 불국사 신혼여행.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경자는 신문들에서 우리 관련 사진과 기사들을 찾아 따로 스크랩해놓느라 바빴다.

나는 그런 경자를 지켜보면서 방구석에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경자의 몸은 돌덩이였다. 아무리 껴안아도 변화가 오기는커녕 오히려 소름 돋는 피부로 나를 맞는 불감증…… 경자는 석녀(石女)였다. 나흘간의 신혼여행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수학여행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한 따분하고 쓸쓸한 여행이었다.

어떻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묻진 않았다. 그녀와의 약속, 결혼식을 올리기 전 날의 약속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그 약속이 나는 내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또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상호쌍무적인 약속이었다.

경자는 첫날밤부터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는 자기는 본시부터 그랬다면서 쿡쿡쿡 울었다. 나는 술만 마시다가 새벽녘에야 녹아 떨어져 잠이 들었다. 나흘간의 신혼여행은, 내가 경자한테서 사랑합니다란 유리창 글씨를 받던 순간 곤혹스럽던 무엇을 처음으로 헤아리게 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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