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영성의 만남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승의 스승, 멘토의 멘토에게 길을 묻다 믿음의 글들 300
이어령.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자식을 낳으면 신자로 만들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한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성당에 끌려가 미사를 봤는데,
그때 빌었던 소원은 “제발 성당에 안가게 해주세요”였다.
그 소원은, 엄마보다 달리기를 잘하게 된 초등학교 4학년 때 비로소 이루어졌다.
대학에 막 들어가서 개신교 동아리였던 선배에게 끌려가 마음에 없던 기도를 한 적이 있었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 동아리에서 빠져나왔다)
대학 때 만났던 친구들이 성당파여서 몇 번 끌려간 적도 있지만,
결국 난 그런 유혹을 다 뿌리치고 무교로 살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시시때때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긴 하지만,
종교기관을 통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다.
특히 우리나라 대형교회들의 행태를 보면서,
무교로 남은 내 선택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스텔라 K님으로부터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선물받았을 때 좀 당황했다.
아니 나처럼 종교라면 학을 떼는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다니!
하지만 난 스텔라K님을 좋아하고 또 신뢰하는지라 짬이 날 때마다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내 예상과 달리 종교가 아닌, 삶에 대한 책이었다.
이재철 목사님과 뒤늦게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님의 대담집인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
가족이 생산단위에서 소비단위로 변하면서 가정이 붕괴됐다는 얘기 (31쪽),
부모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같이 늙어가야 한다는 대목 (44쪽)엔 깊이 공감했고,
영화와 결혼의 발달사가 반대라는 대목은 읽다가 웃음이 나와 어머니한테 얘기해드렸다.
안읽을 분들을 위해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 무성영화--->흑백-->컬러---> 3D
결혼: 입체적---> 컬러---> 흑백---> 무성영화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 때 결핍은 보충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에
모자라는 부분은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을 버리는 장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과잉이 되었을 때 속수무책이 된다는 대목에 역시 격한 공감. (139쪽)
이렇게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삶을 관조한 분들이 삶에 대해 나누는 얘기들이라 그런 것이리라.
나도 나이들면 이렇게 삶을 관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혼자 웃었다 (말이 되냐)

 

딱 하나, 공감 안되는 구절을 옮겨본다.
“그렇게 된통 (박정희를 칼럼으로) 때렸는데 내가 잡혀가지즌 않았거든요. 때문에 그들을 독재자라고만 몰아세우는 사람들은 반은 거짓말이다 이거지요.” (200쪽, 이어령의 말씀)
뒤에 설명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이해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물론 이 구절이 책의 위대함을 훼손시키진 않는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종교를 믿을 것 같진 않다.
이 책의 의도도 독자를 종교인으로 만들려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은 덕에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그리고 스텔라K님은 나의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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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12-27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재의 나이까지만 볼 때,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습니다. 신체 능력, 지적 능력, 열정이 줄었지만, 관용, 집착하지 않음 등의 새로운 것을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보다 더 나이 많으신 (70~80대) 분들을 보니, 자기 중심적이 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등, 나이 들어서 좋은 점까지 퇴행을 하더군요. 마치 자기 중심적인 유치원생 같습니다.

90대까지 되면 3세 아이처럼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혼자 먹지도 못하고, 심지어 사람도 못 알아봅니다.

책한엄마 2017-12-27 08:24   좋아요 0 | URL
96세 저희 시할머니는 걷고 대소변 가리시고 혼자 드시고 사람도 알아보세요.^^
물론 70-80대 분처럼 자기 중심적이고 남의 말 듣지는 않으십니다.

내년이면 97세시네요.저도 과연 그렇게 정정할 수 있을까-싶어요.

마립간 2017-12-27 10:57   좋아요 0 | URL
저는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95~100세의 정정한 어르신을 보게 되는데, 자녀가 70대에 먼저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양가 감정이 있습니다.

제 커다란 바람은 우리 가족은 이 세상에 오는 순서대로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것입니다.

책한엄마 2017-12-27 12:40   좋아요 0 | URL
ㅠㅠ그렇네요.

맞아요.시할머니도 그런 일 당하셨어요.
그래서 자녀 중에 오랫동안 연락 안 되면 온 군데 다 전화를 돌리세요.
딸(제 시고모)이 집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거든요.그 전 날 할머니댁에서 시고모 생신이라고 케이크에 노래부르는 사진이..흠-

그 정도면 작은 바람 아닐까 했는데 마립간님 말씀대로 커다란 바람 맞습니다.

마립간님도 마태우스님도 건강하세요.^^

마태우스 2017-12-28 22:46   좋아요 0 | URL
네 두분 말씀 나누시는데 끼어들면 안될 것 같아, 이 말씀만 드립니다. 두분도 연말 잘보내시고 내년에도 왕성한 활동 부탁드립니다.

마립간 2018-01-01 09:55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17-12-27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8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9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nnydavis 2018-01-1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마태우스님 책블로그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죽 읽어내려오는데, 이 글이 특히 마음에 많이 와 닿네요. 저도 비종교인이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이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마태우스 2018-01-13 07:38   좋아요 1 | URL
네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삶에 대해 관조하게 되더군요.
 

 

 

 

 

 

 

 

 

 

 

 

 

 

조그만 걸 보내주면 어마어마한 선물을 답례로 보내주는

보기드문 지인에게 내가 쓴 새 책을 보냈다.

아니나다를까, 그로부터 며칠 후 택배가 왔는데

여러가지 선물 중 하나가 스티로플 박스에 들어있는 굴이었다.

물론 난 굴을 좋아한다.

석사와 박사논문 주제가 굴에서 나온 기생충이기도 했고 (여러분, 양식굴엔 기생충 없습니다! 걱정마세요)

먹는 것도 아주 즐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그 많은 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거 일일이 껍질 다 까서 손질해야 하거든. 보관할 만한 장소도 없고 내일 해야 하는데,

너 출근하면 나 혼자 어떻게 해?"

고민하던 아내는 몇 군데 전화를 돌렸고,

아파트 사람과 전에 알던 피아노선생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 굴을 나눠줬다.


다음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이 얘기를 했다.

"글쎄 굴이 들어와서 어쩌고 저쩌고."

어머니는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셨다.

"아이고, 나 주면 좋았는데."

이럴 수가. 어머니가 굴을 좋아하시나?

어머니: 그럼, 나 굴 너무너무 좋아해. 나 줬으면 좋은데.

나: 그거, 껍질 다 까야 하는데요?

어머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내가 굴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갑자기 죄송했다. 아, 어머니가 굴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난 몰랐구나. 이런 불효자 자식 같으니.

하지만 집에 있는 굴을 보내드리기 어려운 것이

택배가 배달되는 이틀간 그 굴이 상할 수도 있어서였다.

그래서 난 인터넷에서 찾은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깐 굴 4인분(4만원)과 안깐 굴 10킬로 (2만원)를 주문했다.

굴이 다음날 온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소녀처럼 웃으셨다.

그리고 어젯밤, 본가 근처에서 일이 끝났기에 잠시 어머니 댁에 들렀다.

어머니는 매우 힘든 표정이었다.

나: 어머니, 굴 잘 드셨어요?

어머니: 말도 마라. 그것 때문에 아주 죽을 뻔했다.

나: 네???


사정은 이랬다.

굴 10킬로를 본 어머니는 그 개수에 충격을 받았고, 이걸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본가 근처에 사는 만만한 제수씨와 조금 멀리 사는 누나를 불렀다.

세시간 가까이 그들은 굴을 까고, 씻고, 양념했다.

어머니는 이 일을 자초하신 분이니 그렇다치고, 누나야 어머니 딸이니 또 그렇다 치지만,

제수씨는 굴을 까는 내내 날 원망했으리라.


여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내가 어머니 말씀에 너무 쉽게 넘어간 면도 있다.

1) TV에 해삼이 나왔을 때

엄마: 맛있겠다

나: 엄니, 해삼 좋아하세요?

엄마: 그럼, 나 해삼 너무너무너무 좋아해.

해삼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이 불효자 아들 같으니! (이 얘기는 공저 <엄마 사랑해요>에 실렸다)

--> 해삼 사드림.


2) 어디 가서 게장 먹었다는 얘기 하니까

엄마: 게장 먹었냐. 장하다. 그거 정말 맛있지.

나: (괜히 찔려서) 엄마도 좋아하세요, 게장?

엄마: 그럼, 나 게장 너무너무 좋아해.

아, 난 불효자구나. 게장 좋아하는 것도 몰랐다니. ---> 게장 보냄


전복, 더덕, 언양불고기 등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인간이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을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이런 면이 어머니를 건강하게 만들어줬고, 항암투병도 이겨낼 수 있게 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어머니가 뭘 좋아하신다는 말에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냥 맛있는 게 있을 때 보내드리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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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12-2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그러게요.^^
긍정적인 면이 오늘날 교수님을 만든 건 아닌가 싶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 북플마니아 서재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쓰신 ˝서민적 글쓰기˝를 읽고 시작한 알라딘 블로그 활동입니다.
사실 올해 기대 안 했는데 된 걸 보곤 갑자기 교수님 생각이 났어요.
참-감사한 분이다-이런 생각을 했어요.

올해 교수님 책 거의 다 샀어요.
˝서민적 독서˝ ˝서민 정치˝ b급 정치(?) 등등-이상하게 사 놓으면 읽질 않는 고질병 때문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네요.^^
내년에 슬슬 읽고 평을 남겨보겠습니다.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마태우스 2017-12-26 23:59   좋아요 1 | URL
와아...제 책을 다 사셨다니 이것 참 부끄럽습니다. 내년부턴 사지 마시고, 제 서재에 주소 남겨주세요. 제가 드릴게요. 근데 제 책 덕분에 알라딘 블로그를 시작하셨다니, 제가 으쓱해지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stella.K 2017-12-24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 같으면 엄마는 먹지도 않으면서 욕심만 많다고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정말 연로해지시면 잘 못 드실까 봐 걱정되더라구요.
그래도 아직은 잘 드셔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마태님도 어머니 드시겠다면 무조건 사 드리세요.
잘 드시고, 건강하시면 좋죠.^^

마태우스 2017-12-26 23:58   좋아요 1 | URL
네..어머니한테 받은 게 너무 많은지라 앞으로는 잘 하려고 합니다! 잘 드시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죠!

moonnight 2017-12-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고민이셔서 막 웃었네요^^;;;


하여간에.. 서민 교수님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태우스 2017-12-26 23:57   좋아요 0 | URL
넷 응원에 늘 감사드립니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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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이 아니라 정치보복이다.”
검찰의 칼끝이 점점 자신을 향해오던 2017년 11월, 강의를 위해 두바이로 출국하던 이명박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역시 이명박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테니스 애호가인 그가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며 서울시 최대의 면수를 자랑하던 중지도 테니스코트를 없앴을 때, 동호인들은 그래도 문화사업을 하는 게 어디냐며 서운함을 달랬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좌초됐고, 코트만 황무지로 변하고 만다. 그래도 이명박은 아쉬운 게 없었다. 자신은 남산테니스장에서 돈도 일체 안내는 ‘황제테니스’를 치면 됐으니까. 최근에는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기무사에서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4대강을 개발한답시고 녹조만 잔뜩 만들어 놓았다고? 상관없다. 모두가 그를 욕할 때, 자전거로 그 광경을 둘러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사내, 그게 바로 이명박이니까. 이랬던 그가 자기 재임 중 있었던 적폐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은 사이코패스다. ‘설마’ 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다 유영철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들과 비슷한 성정을 지녔지만, 머리가 좋아서 법을 어기지 않고, 법을 어겨도 잡히지 않는 이들을 비범죄형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채널A <거인의 어깨>에 나오는 정신과의사 한창수는 이런 비범죄형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매우 매력적이다.
2) 거짓말을 많이 한다.
3) 주변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데 선수다.
4) 자기과시가 심하다.
5) 다른 사람에게 상처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6) 다른 사람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7) 결코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창수의 얘기를 들으면서 강의를 듣던 패널 모두는 공통적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특히 4번 항목에서 그랬는데, 그때 한창수는 이렇게 얘기했다. “뭐만 물어보면 내가 다 해봤다는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로서 한창수는 이명박을 사이코패스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이하 추격기)는 끈질김 면에서 둘째라가면 서러울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을 취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한창수의 강의를 듣고도 ‘설마’ 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그가 왜 사이코패스인지 너무도 잘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19쪽에 나온 중국집 사례를 보자. 이명박 소유의 건물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이모씨는 장사가 잘 되자 가게를 더 크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원래 1층이던 건물을 2층으로 증축하고, 그로 인해 늘어나는 세금까지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다. 대신 이씨는 이명박에게 증축 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10년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약속해달라고 했다. 이명박은 이씨가 요구한 장기임대계약을 거절하는 대신, 2년씩 계속 연장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이명박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년이 지나자마자 기간이 만료됐다며 이씨를 쫓아냈다. 이씨가 나간 뒤 그 중국집을 인수한 이는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이었다. 증축에 6억을 쓴 이씨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결국 인도네시아로 도망갔다고 한다. 이 한 건에서 이명박은 2) 거짓말을 했고 5)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하지 않았으며, 7)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지 않았다. 물론 이 행동이 ‘실수’가 아니라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추격기’에는 이런 사례가 수없이 등장한다. 앞서 소개한 중국집은 정말 소박한 사건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사건들은 규모나 치밀성이 워낙 뛰어나,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중 백미는 다스에 관한 것으로, 이명박이 자신이 투자해서 날린 140억원을 받기 위해 국가기관까지 동원해 끝내 받아내고 만 사건이다. 이는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말을 유행시킬 만큼 화제가 됐는데, 여기에 대해 주진우는 이렇게 말한다. “140억 원을 받으면 BBK는 이명박 것이라는 게 확실해지는데, 다스가 이명박 소유인 것이 명확해지는데, 이명박은 개의치 않는다. 돈을 벌고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돈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사람이다.” (266쪽)

책 곳곳에 주기자가 발로 뛰며 정보를 얻어낸 흔적이 엿보이고, 여기 실린 것들 중 많은 수가 사실로 확인됐지만, 여전히 책에 실린 사건들의 진위에 회의적인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께 팩트에 근거한 사실을 하나 말씀드린다. 그가 2000년에 건강보험료를 매달 1만3천원씩 냈다는 것. 이건 그가 자신의 소득을 월 94만원으로 신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건강보험에는 직장보험과 지역보험이 있다. 직장보험은 가입자의 보수월액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반면, 지역보험은 가입자의 나이, 소득, 재산, 자동차 등을 따져서 보험료가 산출된다. 이미 수백억 자산가였던 그가 지역보험에 든다면 최고보험료 (110만원 추정)를 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를 세우고 자신이 그 회사의 근로자로 등록한 뒤 직장가입자가 된 것이다. 월급이 94만원이니 그는 여기에 해당되는 1만3천원만 내면 됐다. 머리가 좋아서 법을 어기지 않는 비범죄형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늘 그렇듯이 이명박은 이게 제도상 허점의 결과일 뿐이라고 변명한다. 물론 이런 편법을 쓴 이가 이명박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가 고위공직자를 넘어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는 건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사이코패스는 늘 조직을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한창수의 말처럼, 이명박 재임 5년간 우리나라는 저 밑으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명박의 후임으로 박근혜를 선택한다. 그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엄청난 것이었는데, 길거리에 나와 “이게 나라냐?”를 묻게 만든 것도 그 비용 중 하나지만, 이명박에 대한 단죄가 4년이나 늦어졌다는 건 치명적이다. 범죄의 증거가 많이 없어진데다, 이전 대통령이 물러났으면 됐지, 전전 대통령까지 조사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는 정서가 대두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명박이 ‘적폐청산이 아니라 정치보복’이라고 날을 세우는 것도 다 믿는 구석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그를 포기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자기 이익에만 몰두했던 희대의 사이코패스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이명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진우 기자 하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그의 처벌을 주장해야 한다. 사이코패스 앞에선 보수와 진보가 없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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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2017-12-2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자키 보았습니다. 멘탈이 강하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걱정되네요. 저는 유리멘탈이라... 거침없이 현재 생각하는 의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교수님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날이 추운데 건강 조심하시구요.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7-12-23 22:03   좋아요 0 | URL
어릴 때 구박 많이 받아서 그런지 멘탈이 정말 강하더라고요, 제가. 일 저질러놓고 너무 태평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래도 제가 문대통령의 건강한 지지자들에게까지 불쾌감을 준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최욱의 불금쇼가 업로드되는대로 사과문 올리려 합니다.

2017-12-23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7-12-23 22:0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힘 낼게요...!

pericles 2017-12-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교수님 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좀 한숨이 나오더군요...
가끔 정상적인 사람들의 반론도 있지만 대다수가 외모 지적질, 학문 비하 따위 인신공격이고...
보수정권때는 아무 말 안 하고 뭐했냐며 박빠로 모는 내용들...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당연히 이런 사람일 거라고 예단하는 단순한 이분법...
그동안 어떤 얘기들을 해오셨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아니, 제목만 봤거나 읽어보고도 풍자라는 걸 못 읽어내는 건지...

저런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사실 좀 듭니다...
암튼, 태평하시다니 다행입니다... ^^;;...

마태우스 2017-12-27 00:01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2000년대 초반 딴지일보에서 댓글싸움을 하면서 멘탈이 길러졌어요. 지금은 욕먹는 댓글을 찾아서 읽을 정도죠. 근데 박근혜 땐 찍소리도 못했다, 이런 말엔 좀 울컥하죠. 심지어 박빠로 몰릴 땐...ㅜㅜ 근데 뭐 어쩌겠어요. 그래야 저들의 멘탈이 평화로울 수 있는데. 그냥 그러라고 하죠 뭐.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난 못생겼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누군가가 나더러 잘생겼다고 하면 불끈 화가 난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 생각해서다.

 

이런 나도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강연을 한 곳은 강연자의 피겨를 만들어주는 독특한 관행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피겨를 보자마자 "이건 좀 아니지 않냐!"며 절규하고 말았다.

아무리봐도 이건 실제의 나보다 더 못생겼지 않은가!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전송했더니 아내가 이런다.

 

"ㅎㅎㅎㅎㅎ 나 실물사진인 줄 알았다"

 

 

그랬다. 나랑 같이 사는, 가끔씩 "넌 못생기지 않았어"라고 위로도 하는 아내는

내가 저 피겨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난 스스로 못생겼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실제론 저거보단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자신을 괜찮은 외모라고 생각한다던데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이 피겨를 가져가면서 이걸 어디다 쓰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지금 아내는 이 피겨를 내가 말 안들을 때 때리거나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밖에 있을 때 몸 어딘가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아내가 또 내 피겨를 때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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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12-02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실물이 낫다고 한마디만 좀....^^

재는재로 2017-12-02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판의120%싱크로율한 피규어네요 속이쓰리실듯 ㅋㅋ~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제가 그정도입니까.. 그럼 진짜 못생긴 거군요...ㅠㅠ

프레이야 2017-12-03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한밤에 한바탕 큰웃음 주시네요 ㅎㅎㅎㅎㅎ 절규하셨다니.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이거 보시면 정말 절규하게 됩니다 ㅜㅜ

transient-guest 2017-12-03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울 나이엔 매력이 더 중요하죠 지성미가 넘치는 서민 선생님은 충분이 잘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그럼 뭐합니까 피겨에 반영이 안되는데...ㅠㅠ

2017-12-03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2-03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왜 그리 생각하십니까?
분명 피규어가 더 잘 생기긴 했거든요.
실물이 더 잘 생겼다고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거울 효과인가? 그런 게 있다잖습니까?
나 보다 더 잘 생긴 배우의 얼굴을 냉장고문에 붙여놓고
난 저 사람처럼 잘 생긴 사람이 될 거야.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지 않습니까?
저 피규어를 사랑해 보세요. 마태님 거 잖아요.
분명히 마태님은 지금 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실 겁니다!

아,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좀...
분명 좋은 뜻인데. 왜 이렇게 됐지? 3=33=333

마태우스 2017-12-04 12:38   좋아요 0 | URL
피겨가 아니라 피규어군요 ㅜㅜ
근데 저 피규어를 아무리 봐도 사랑하게 되지 않아요 ㅠㅠ
무섭다니깐요...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된 해법을 주세요

stella.K 2017-12-04 13:5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죄송합니다.ㅠ
솔직히 그런 게 있긴하죠.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는 용납이 안 되는 거요.
저는 분명 저 피규어 잘 나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마태우스님은 그 자체로도 좋으니까
정 좋아할 수 없다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답이 됐나요?ㅋㅠ

마태우스 2017-12-07 03:58   좋아요 0 | URL
아 네...암튼 이런 저랑 친하게 지내주는 스텔라K님, 고맙습니다^^

2017-12-06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7-12-07 03:59   좋아요 0 | URL
오옷 정말 객관적인 평가! 그죠 몸매는 제가 좀...ㅠㅜ
 

장주원이 쓴 페북 글이 화제다.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선언문인데,
그 이유를 보면 그가 페미니즘에 대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 큰 오류는 페미니즘이 꽃길이라는 것.
페미니즘 편에 서면, 일단 인터넷을 장악한 남성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갑자기 수천의 안티를 거느리게 된 내 경우를 보면 그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인데,
돈이라도 벌면 만회가 되겠지만 내가 페미 편에 선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도 결코 아니다.
1) 어차피 내 강의의 대부분은 과학. 독서. 기생충이고, 페미 강의는 거의 없다.
올해 내가 한 페미 강의는 세 번인가 그렇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페미니즘 강의는 강사료가 다른 곳보다 훨씬 적다 (그나마 기부한다)
2)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인지도가 올랐으니 책이 더 팔리잖아?”
책을 사는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일텐데,
일단 남성들은 내 책을 그전보다 덜 산다. 
당장 내 책을 안사겠다고 선언한 사람만 여럿이며,
그렇다고 여성들이 내 책을 더 사주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페미를 주제로 한 최근 책은 인세를 안 받기로 합의했다.

욕만 먹고 돈은 벌지 못하는 게 꽃길이라면, 그 꽃은 도대체 어떤 꽃이어야 할까?


반면 페미니즘을 욕하는 건 돈이 된다.
워마드라는 꼴통과 싸우는 유아인은 빛아인으로 칭송되며 (난 유아인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군대가는 남성들을 불쌍하다고 한 전원책은 문제의 그 토론회 이후 예수 급이 돼서 남성들의 환호를 받는다.
위 페북 글을 쓴 장주원을 보자.
그의 소설이 많이 팔린 것도 아니기에, 날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잘 몰랐다.
그를 알던 사람도 그의 책을 읽어서라기보단
그가 2년 전 페북에 남긴 몰카를 옹호하는 듯한 글 때문이다.
“몰카나 유출영상에는 ‘사랑’이 있다”며 연출된 포르노는 보고 싶지 않기에
“내가 볼 수 있는 포르노는 몰카 혹은 유출영상 뿐“라고 한 것이다.
이랬던 분이 지금 반페미니즘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반페미야말로 꽃길을 걷는 일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페미니즘이 꽃길이면 보다 많은 남성들이 페미 편에 서거나 서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대전 지족고라는 곳에 다녀왔다.
물론 페미 강연이 아닌, 독서 강연이었는데,
그 옆 학교 학생이 올린 다음 글은 페미 편에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소주 사장을 부른 이 학교는 최소한 날 부른 옆 학교보다 등록금 낭비는 안했다는 내용인데,
지금의 고등학생에게 페미니즘 편에 서는 날 부르는 건
등록금 낭비다.
지족고 인근 학교에서 강연요청이 오면 가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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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이게 생각 보다 심각한가 봅니다.
페미고 반페미고 지간에 우리나라는 너무 파벌 싸움이
심한 것 같습니다.
서로 좀 불쌍히 여기고 화합하고 이러면 좋을텐데
그걸 가지고 또 낭만주의니 온정주의니 하며 시비거는 사람도 있겠죠.
그래가지고는 21세기가 가도 해결이 안 되는데 말입니다.

근데 마태님 같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싸워주는 사람이 있는데
무늬만 페미인 척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런 사람 보면 솔직히 빡이 돌고, 여자들 두번 울리는 거죠.

마태우스 2017-12-02 15:58   좋아요 0 | URL
고교생뿐 아니라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여혐이 유행하고 있죠. 작은 여혐의 불씨가 온 국토를 태울 기세더라고요. 페미와 반페미를 떠나서 인간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는 잘못된 건데, 그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지요. 그게 우려스럽습니다.

stella.K 2017-12-02 16:17   좋아요 0 | URL
우리 초등학교 때도 그런 거 좀 있지 않았나요?
물론 그땐 여혐이란 단어는 없었고
중학교 가면서 남여 학교로 분리가 되니까
좀 옅어졌을 테지만.

남혐, 여혐 나눠봤자 고립만 초래할 뿐인데 걱정이네요.
전 요즘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들>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물론 미국 사례이긴 하지만 성교육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나겠구나 싶기도 해요.
남자나 여자나 어렸을 때부터 성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는
사례를 조목조목 짚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기회되시면 한 번 읽어보시라고 감히 추천 드리고 싶네요.
그걸 기생충과 연결시켜 강의해 주셔도 좋을 것 같구요.ㅎ

마태우스 2017-12-02 20:47   좋아요 1 | URL
그래도 저희 때는 좋아하는 마음을 짖궃게 표현한 것이라는데, 지금은 그 차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스텔라k님과 저는 모든 문제는 책으로 해결한다, 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네요^^ 그런 책은 사실 저희가 아니라 초중고 선생님들이 읽어주셔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강의에 도움이 된다니, 기꺼이 읽겠습니다 *(근데 아직 님 선물하신 책도 다 못읽었어요 ㅠㅠ)

stella.K 2017-12-03 20:03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공부하신다면서 가리시면 안 됩니다.ㅎㅎ
저의 책은 그냥 감사의 뜻이니
천천히 읽으셔도 됩니다.
선물한 책이 숙제가 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마태우스 2017-12-04 12:3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가려가며 공부하면 안되죠. 알겠습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