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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영성의 만남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승의 스승, 멘토의 멘토에게 길을 묻다 ㅣ 믿음의 글들 300
이어령.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자식을 낳으면 신자로 만들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한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성당에 끌려가 미사를 봤는데,
그때 빌었던 소원은 “제발 성당에 안가게 해주세요”였다.
그 소원은, 엄마보다 달리기를 잘하게 된 초등학교 4학년 때 비로소 이루어졌다.
대학에 막 들어가서 개신교 동아리였던 선배에게 끌려가 마음에 없던 기도를 한 적이 있었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 동아리에서 빠져나왔다)
대학 때 만났던 친구들이 성당파여서 몇 번 끌려간 적도 있지만,
결국 난 그런 유혹을 다 뿌리치고 무교로 살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시시때때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긴 하지만,
종교기관을 통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다.
특히 우리나라 대형교회들의 행태를 보면서,
무교로 남은 내 선택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스텔라 K님으로부터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선물받았을 때 좀 당황했다.
아니 나처럼 종교라면 학을 떼는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다니!
하지만 난 스텔라K님을 좋아하고 또 신뢰하는지라 짬이 날 때마다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내 예상과 달리 종교가 아닌, 삶에 대한 책이었다.
이재철 목사님과 뒤늦게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님의 대담집인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
가족이 생산단위에서 소비단위로 변하면서 가정이 붕괴됐다는 얘기 (31쪽),
부모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같이 늙어가야 한다는 대목 (44쪽)엔 깊이 공감했고,
영화와 결혼의 발달사가 반대라는 대목은 읽다가 웃음이 나와 어머니한테 얘기해드렸다.
안읽을 분들을 위해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 무성영화--->흑백-->컬러---> 3D
결혼: 입체적---> 컬러---> 흑백---> 무성영화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 때 결핍은 보충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에
모자라는 부분은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을 버리는 장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과잉이 되었을 때 속수무책이 된다는 대목에 역시 격한 공감. (139쪽)
이렇게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삶을 관조한 분들이 삶에 대해 나누는 얘기들이라 그런 것이리라.
나도 나이들면 이렇게 삶을 관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혼자 웃었다 (말이 되냐)
딱 하나, 공감 안되는 구절을 옮겨본다.
“그렇게 된통 (박정희를 칼럼으로) 때렸는데 내가 잡혀가지즌 않았거든요. 때문에 그들을 독재자라고만 몰아세우는 사람들은 반은 거짓말이다 이거지요.” (200쪽, 이어령의 말씀)
뒤에 설명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이해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물론 이 구절이 책의 위대함을 훼손시키진 않는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종교를 믿을 것 같진 않다.
이 책의 의도도 독자를 종교인으로 만들려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은 덕에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그리고 스텔라K님은 나의 좋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