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라는 낙인 - 조주은의 여성, 노동,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 민연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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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페미니스트들을 굉장히 싫어하더라고요. 전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이해가 잘 안갔어요.”

난 숨을 죽였다. 그 다음에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 싶어서.

“근데, 그 말이 맞더라고요. 무슨무슨 페미니즘 책을 나중에 읽었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어요.”

여성학 강의시간에 한 학생이 발표 시간에 한 말이다. 그가 언급한 책을 전에 읽었었는데, 난 그게 그렇게 엉터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렇긴 해도,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 일각의 거부감을 고려한다면, 페미니즘 관련 책자는 좀 더 설득력이 있고 신중하게 쓰여져야겠구나,는 생각을 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은 정말 유익한 책이었다. 내가 유익하다고 말하는 건 모르던 사실을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평소 잘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게 됐는데, 어머니들이 동원된 학교급식의 문제점이 그 하나인데, 학교급식은 국가와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여성인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는 걸 이 책이 아니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깨달음은 여성에 대한 진보진영의 무심함이었는데, 다음 문장들에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내 주변의 이른바 386 운동권과 결혼한 여성들의 삶은 너무 바쁘다. 가족 생계 책임지랴, 자녀 양육하랴...(189쪽)”

386 남성들은 왜 유난히 피임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식할까?...남성 활동가들이 사회 운동하느라고 분주하고, 밤늦은 술자리를 가질 때, 그와 성관계를 맺은 여성 활동가들은 다음 생리 때까지 적어도 한달 동안 피가 마르는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195쪽)”

단체의 대표와 사귀던 어느 여성 활동가는 결혼 전에 세 번의 낙태를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계급, 평화, 통일처럼  진보진영이 몰두하는 주제들에 대한 논의만큼 비중있게 성 담론(콘돔 사용법만이라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197쪽)”




옥의 티를 끄집어내자면, 읽다가 이런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밥을 처먹기만 하는 남성이 있는 가정에서 여성들의 휴식은 불가능하다(59쪽).”

가정이 휴식의 공간이란 건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 하지만 이 당연하고도 좋은 말이 ‘처’란 글자가 붙음으로 인해 독자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페미니스트가 ‘낙인’이라면, 많은 남성들이 그 단어에서 과격함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면, 단어 선택 하나에도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의 대의에 동감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말이다.




* 참고로 난 아는 분한테서 이 책을 받았는데, 고맙게도 저자가 직접 내게 사인과 더불어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다. 저자 분은 물론이고 그 아는 분한테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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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8-05-2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것이 우뇌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좌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특히 남성) 페미니스트가 과연 페미니스트인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지식인의 두 얼굴>을 읽어보셨는지요?
한가지 더 어머니의 본연의 책임은 무엇인가?

비로그인 2008-05-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자가 들어가면 안되는데, 이러면서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지 않을까요?

라이 2008-05-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 실제로 육아노동, 가사노동 하면서, 사회생활하면서 남편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마주하게 되면 처먹는다는것 아니라 더 심한 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타도의 대상은 아니지만, 가정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부장은 가장 강력한 가부장적 기제입니다. 운동권이 기득권층 얘기할 때 욕 섞어 쓸 수 있듯, '처먹는'거 따위는 욕도 아니라고 봅니다.
2. 발표 학생 얘기 말인데, 아직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에 대해서 깨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부잣집에서 곱게자란 아이가 386세대들의 투쟁에 대한 서적을 읽었을 때의 반응과 비교해 보면 될까요?
3. ㅎㅎ 무자식이 상팔자. 그래도 자식없는 가정에서는 이제는 남녀평등이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쩌면 '아이 없는 가정'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100cm쯤 좋아진 것입니다. 서민님 화링.

최상의발명품 2008-05-31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처음 왔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저도 여성학 강의를 들은 일이 있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 남성분들 중에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조건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종종 들러 글 읽고 가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최상의발명품 2008-05-31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세계명작에 관한 생각이 저랑 너무도 비슷하셔서요^^ 저는 오래전부터 지루해 보여서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앵무새 죽이기'를 근래에 봤는데 참 좋았답니다. 전혀 지루한 문체가 아니라 참 유머러스한 문체로 쓰여진 명작이더라고요. 책을 관통하는 주제도 좋았지만, 작가의 유머러스함이 정말 좋았습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언젠간 리뷰도 볼 수 있으면 참 좋겠구요. ^^ 수많은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며칠동안 나눠 읽을 생각에 기쁘네요.

천민 2008-05-3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익명도 되는군요^^

하나씩..

“내 주변의 이른바 386 운동권과 결혼한 여성들의 삶은 너무 바쁘다. 가족 생계 책임지랴, 자녀 양육하랴...(189쪽)”

-386이든 486이든,운동권과 결혼했건 아니건,남성이건 여성이건간에 '삶'이란게 먹고 살자면 다들 바쁩니다. 너 나 없이.
생계의 문제란 그런거고 없이 사는 사람들한텐 더욱이나 그렇죠.
자녀 양육이라면,
우선적으로 '남성'보단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유아원문제,육아휴직문제,급식문제,학비문제, 나아가서 비정규직 문제 기타등등)

물론 책의 의도가 성적 대립에 주안을 두고 씌여진거니 할수없지만
이런식의 진술은 감정적 대립말곤 아무것도 얻을게 없다고 생각 됩니다.
더구나 일정부분 설득이 필요한 문제라면.

“386 남성들은 왜 유난히 피임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식할까?...남성 활동가들이 사회 운동하느라고 분주하고, 밤늦은 술자리를 가질 때, 그와 성관계를 맺은 여성 활동가들은 다음 생리 때까지 적어도 한달 동안 피가 마르는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195쪽)”

-386이고 486이고간에,대한민국 남성들은 대채로 피임에 대해 무지한 편입니다.(무지라기보단 무관심이겠지만)
대한민국 여성들만큼 말이죠.
'여성 활동가'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남성의 무지한 피임상식을 비난하기보단
같이 잔 '남성 활동가'에게 콘돔을 착용하게 하든가,스스로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든가,
이도저도 싫다면 하지 말든가, 아니면 그냥 피를 말리든가.
선택지는 여러가집니다.

스스로 성인이면서 피임에 대한 아무런 합의 없이 어영부영 대책없는 관계후에 피를 말리니 어쩌니 남탓하는거,꼴불견입니다.

“한 단체의 대표와 사귀던 어느 여성 활동가는 결혼 전에 세 번의 낙태를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계급, 평화, 통일처럼 진보진영이 몰두하는 주제들에 대한 논의만큼 비중있게 성 담론(콘돔 사용법만이라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197쪽)”

ㅡ'한 단체의 대표'란 말은 '거대담론'에 매몰된 '한 단체의 대표'씩이나 되는 남성조차 피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단 말일테고...(그 대표님이 하나의 '권위'로 인정되는지 혹은 남성 일반의 대표성을 가지는지 모르겠지만)그런데 대체 그 '대표님'은 콘돔 사용법도 몰라서 사용 안하신 걸까요?
그건 아닌것 같고,아마 대충 토론하고 대충 얘기하다가 남성이 싫다니까 대충 관계하고 '피'를 말린 상황인거 같은데,
씌우든지,드시든지, 아니면 하질 말든지.
강간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낙태'를 세번씩이나 하시면서...이거 영 아니지 않나요.




픽팍 2008-06-0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발간한느 페미니스트관련 잡지를 보다가 흠;; 좀 무서웠다는 사실 남자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걸 예리하게 지적하는 걸 보고 좀 무섭기도 했다는 ㅋ
하지만 역시 과격한 표현은 저처럼 소심한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더라구여.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ㅋ
오랜만에 마태우스 님 글 읽으니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네염 ㅋ

독재타도 2008-06-0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땅의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http://img2.dcinside.com/data14/gallery/2008/06/01/dci_movie/977839938_3d656b8e_c_2008-06-0128EC9DBC29EC98A4ECA084060008-CADTV11-1.swf

http://img2.dcinside.com/data14/gallery/2008/06/01/browneyedgirls/3717016147_58b60def_EC8B9CEBB09CEC8389EAB8B0EC95BC.swf

마태우스 2008-06-0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재타도님/말씀 잘 알겠습니다...
팍팍님/저도 님 댓글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듯... ^^ 사람들 싸움하는 거 보면 대개 말 꼬투리를 문제삼잖아요...
천민님/제가 이 책의 저자는 아니지만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인지라 님 말씀에 답변을 해봅니다.
-386이든 486이든 삶은 다 어렵다;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건, 386 출신들이 일정한 직업없이 운동에만 전념했기에 그네들을 여성들이 다 부양했다는 거죠. 전 그렇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왕이면 결혼을 하지 말 것이며, 애도 안낳는 게 낫다는 하종강 선생님의 사모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애를 낳았으면 좀 책임지는 면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걸 지적한 겁니다.
-피임과 낙태 문제에 대해서: 여자가 피임을 하는 방법은 두가지겠지요. 콘돔을 씌우거나 아니면 약을 먹거나. 하지만 남자가 언제쯤 욕구가 동할지 모르고, 호르몬제는 여성의 생체리듬을 파괴하므로 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콘돔을 가지고 다녀야 할텐데, 울나라에서 여성이 콘돔을 권하는 게 가능은 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십니까? 진보연하는 남성분들 역시 그런 데는 민감해서, 여성의 핸드백에서 콘돔이 나오면 걸레 취급합디다. 뭐, 한사람의 경우니 전체로 확대할 수는 없지만, 남자라는 종이 어디 가겠어요. 스스로 성인이라 해도 피임 문제는 남자의 동의 없이 어렵다는 걸 잘 아시는 분이니, 이해해 주실 걸로 믿습니다. 꾸벅.

최상의 발명품님/저도 반갑습니다 글구 저 앵무새 죽이기, 추천은 많이 받았지만 안읽어봤습니다. 앵무새가 죽는 게 슬퍼서 그랬는데^^ 님이 추천해주신김에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이님/오랜만에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그래도 저런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이 페미니즘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표현은 좀 신중해야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글구 저만 해도 아이를 안갖는 삶을 실천하는 데 여러 제약이 있더군요. 주위에서 어찌나 괴롭히는지, 저야 괜찮지만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주드님/안녕하셨어요?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하는데요, 그래도 반대파들은 본질은 안보고 말투 가지고 꼬투리를 잡잖아요...
마립간님/지식인의 두얼굴은 저같은 사람이 딱 읽어야 할 책인 것 같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글구 어머니 본연의 책임에 대해 물으셨는데요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최상의발명품 2008-06-03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태우스님 ^^ 저도 처음엔 앵무새가 죽는다는 게 너무 잔인하고 슬퍼서 절대 안 보려고 했거든요. 근데 유머가 글 전반에 녹아 있어서 내내 거의 웃으면서 봤답니다. 그리고 진짜 앵무새가 죽는 건 아니고 상징적 의미인데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더라구요. 생각나실 때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바쁘신가 봐요. 리뷰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주 2008-06-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 책을 전해주신 그 '아는 분'한테 저도 고마워지려고 하네요^^;
글고..처먹는다의 '처'는 강세접두사로써 그집 남편의 힘찬(!)숟갈질을
표현하려했던 거라고 우기면 책보는 남자들 눈에 덜 껄끄럽지 않을까요 ㅋㅋ
여전히 바쁜 와중에도 책 열심히 읽으시며 사시는군요^^


마태우스 2008-06-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 발명품님/아...앵무새가 진짜로 죽긴 죽는군요. 전 사실 잘 모르고 한 말이었어요ㅠㅠ 꼭 보겠습니다. 글구 님이 리뷰 기다리신다니, 시험문제 내던 거 잠시 멈추고 리뷰 쓰렵니다
진주님/어머낫 진주님 안녕하세요. 호호, 님처럼 이해심이 많다면야 굳이 페미니즘 같은 게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요즘 책 많이 못읽어요 하는 건 없어도 자꾸만 졸려서 기차에서 잠만 잔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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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담고 있는 동아리에 학생의 경지를 넘어선, 고도의 문학성을 지닌 여학생이 있었다. ‘여학생’이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문학성 때문에 난 그녀에게 접근했고, 문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작금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이 있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눈을 빛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더라... 아 씨, 기억이 안나네. 그 있잖아요, 새, 새....”

3분 정도 테이블에 있는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쳤다.

“맞다, 샐린저! 그 사람이 지은 <호밀밭의 파수꾼>이요!”




집에 돌아간 나는 혹시나 우리집에 그 책이 있나 싶어 여동생의 방을 몰래 뒤졌는데, 있긴 있었지만 무척이나 조악한 해적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그 책을 아무런 감흥 없이 읽었다. 만 16세 소년이 퇴학을 당한 뒤 극도의 외로움에 시달리는 내용이 왜 그녀의 인생을 풍요롭게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문학소녀가 좋다고 한 책이라면 뭔가 있겠지 싶어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적립금이 남아 살 책을 고르다 민음사에서 나온 동명의 책을 집어들었다. 해적판을 읽어서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사긴 샀지만 그 책을 집어들기까지는 또 몇 년의 세월이 지나야 했다. 가정이 안정되고 나서 슬슬 탈선이 생각난다는 시기인 결혼 4개월차, 드디어 난 제대로 된 번역본의 <호밀밭>을 읽었다. 해적판과 비슷하게 주인공인 콜필드가 아무한테나 들이대는 걸로 일관된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외로움에 마음이 짠한 적도 있지만, 시종일관 “얘는 왜 이렇게 살까?”란 생각이 더 자주 들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을 엉터리라고 얘기하면서 자신은 더 엉터리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돈도 없어서 여동생의 용돈까지 빌리는 놈이 왜 수녀한테는 10달러나 기부를 하고, 한심하다고 얘기하는 여자들 술값은 왜 내주는가? 수녀 뿐 아니라 택시 아저씨나 호텔 경비한테까지 같이 술을 마시자고 얘기하는 대책없는 콜필드, 나 역시 외로운 시기를 몇 년 쯤 겪었는지라 그런 행동이 공감이 안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이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 구절을 보라.

어지러운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탔다.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택시를 잡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239-240쪽).”

빈번하게 나오는 접속사, 그리고 잘 이어지지 않는 단문의 연속들. 이거 완전히 초등학생이 쓴 일기다. 세계명작을 분류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샐린저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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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 2008-05-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이렇게 명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가 생기지만 막상 읽게되지 않아서 늘 해야할 숙제같은 기분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깊은 책 중의 하나로 꼽는 책 중의 하나라 읽어야할 것 같은 압박감은 많이 느꼈지만 그렇다고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16살 아이의 지리한 독백을 들어줄 자신이 없어서 계속 뒤로 밀어왔는데 마태우스님의 서평을 보니 안 읽기를 잘한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다른 책으로 맘편히 넘어갈랍니다. ^^

마늘빵 2008-05-2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저랑은 감상이 많이 다른데요. ^^ 저는 이거 괜찮았는데. 책은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감상은 가지각색이겠죠.

마립간 2008-05-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데미안이 떠오르네요.

심술 2008-05-28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나서 '왜 명작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했어요. 사람에 따라 명작이 될 수도 지겨울 수도 있는 그런 작품이예요.

다락방 2008-05-2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우스님. 저도 이 책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또 다시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여기저기 막 밑줄도 그었거든요.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p.228)

이렇게 말하는 홀든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는 홀든이요.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나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pp.229~230)


저는 샐린저에게 반해버려서 [아홉가지 이야기]도 [프래니와 주이]도 읽고 말았는걸요. 아프락사스님 말씀대로 감상은 가지각색이죠. 고전이라고 꼭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구요. 게다가 저는 이 작품이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분들을 종종 보았어요. :)

심술 2008-05-2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고도의 문학성을 지녔던 여성분 어떻게 되셨어요? 혹시 작가가 되셨나요?

무해한모리군 2008-05-2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때가 있는거 같아요.. 물론 전 아직 동화책을 좋아해서 종종 읽지만, 어떤책은 아 내가 열세살에 이책을 읽었다면 좀 다른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가오를 잔뜩 잡던 십대시절에 제게 이 책은 참 좋았습니다.. ^^

마태우스 2008-05-2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진모리님/아, 그렇군요. 책은 시기가 중요하네요... 나이가 들어버려 이 책의 진수를 이해 못하는가봐요 흑흑. 저 어릴 땐 맨날 야구만 보면서 책을 멀리했어요...
심술님/음, 그 여성분은 지금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지요. 작가랑은 좀 거리가 멀죠?^^
정아무개님/어머나 어디서 많이 본 아이디... 언제 돌아오셨나요? 정말 반갑습니다. 님도 감동받은 걸 보면, 문학성이 뛰어난 분들은 이 책의 진수를 알아보는 듯합니다
다락방님/오오 역시 문학성이 뛰어난 다락방님...!! 인용하신 문구 중 위의 것은 저도 좋다고 보는데요, 아래 것은 별반 감동받지 않았는데요, 왜냐면 그게 평소에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동생의 추궁에 즉흥적으로 지어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하여간 댓글 감사드려요 꾸벅.
그리고 심술님/님과 저는 읽어야 할 타이밍에 이 책을 읽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립간님/아...저 데미안도 안읽었는데.. 좀 젊은 알라디너 분이 제게 보내주셔서 읽어야지 하다가 몇년이 갔네요.
아프님/안녕하셨어요. 이 책을 매개로 님과 이렇게 대화를 하게 되네요. 제가 좀 어려울 때 다시 읽어보면 그땐 다른 느낌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갑자기.
카프리님/어어...저는 다른 분들 댓글 보면서 제가 뭘 잘못했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님은 제 글에서 위안을 받고 가는군요 ^^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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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에서 했던 <느낌표>에서 책을 마음껏 고를 기회를 얻은 사람이 마구잡이로 책을 쓸어담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 기회를 잡은 사람이 부럽긴 했지만, 그렇게 선택한 책들 중 과연 몇권이나 읽을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고르고 또 골라도 안읽는 책이 나오는 판국인데 말이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도 그렇지만, '책을 선물할테니 고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전에 사놓은 책을 언제 다 읽느냐는 생각으로 살고 있고, 좋아하는 저자의 책은 그때그때 사왔으니까. 선물을 한다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고를 수는 없고. 할 수 없이 인터넷서점의 신간란을 뒤적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읽고 싶은 책들이 그새 많이도 나왔다는 걸 깨닫는다. 김중혁의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이하 악기)은,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왔다.


김중혁이라는 이름을 난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전작 <펭귄 뉴스>(이하 펭귄)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기'를 읽고 나니 '펭귄'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일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전작에 대한 리뷰를 훑어봤더니, 의외로 좋지 않은 평이 더 많은 듯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펭귄'을 봤다면 작가에게 실망했을 것이고, 한번의 실망은 <악기>를 읽지 않는 것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따져보면 '펭귄'을 안읽은 건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재미'와 더불어 '뭔가를 남게 하는 힘'이 있을 때 난 그 책을 훌륭하다고 하는데, 내게 있어서 <악기>는 훌륭했다. 음악을 소재로 해서 그런지 신선하기도 했고, 책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에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다지 음악과 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재미있었으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층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 리뷰의 댓글을 보니 저자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는데, 그가 마이너리티의 이야기를 이렇듯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이 마이너의 삶을 살아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리뷰를 마치려고 점검을 하다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요즘 내가 쓰는 리뷰에는 '싶기도 하다' '같다' '...라고 생각을 해본다'같은 구절이 많다는 거다. 리뷰를 쓰던 초창기엔 비교적 자신만만하게 다른 사람의 책을 폄하했었는데, 이렇듯 문장 하나하나에도 조심스러워진 건 역시 나이를 먹은 탓이 아닐까 싶다 (또 싶다!).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이 오류가 많은 사람임을 알게 되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는 것. 그러니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결론이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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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6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너리티에 속한 사람들 얘기라니까 당기는데요.^^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 한 것 같아요.'라고 방송이나 글에 나오는 걸 보면...이건 아니다 싶어요. 초등 3학년인가 2학년에 내 생각을 말할 땐 '~같아요.'라고 쓰면 안된다고 가르치는데도 말이죠.^^

마태우스 2008-05-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같아요,라고 쓰지 말라고 많이들 그러던데, 이상하게 그게 더 심화되는 듯. 방송도 영향이 있겠지요 아마.
 
경제학 콘서트 2 - 우리 동네 집값의 비밀에서 사무실 정치학의 논리까지, 불확실한 현실에 대처하는 경제학의 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2
팀 하포드 지음, 이진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 콘서트> 1권을 읽은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2권을 고르지 않았을까 싶다.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이 없다는 통설이 있지만, 영화와 달리 책의 영역에서는 훨씬 뛰어난 속편이 많이 있으니 말이다. 더 뛰어나다고까지 말하는 건 오버겠지만,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의 글쓰기 능력은 2편에서도 변함이 없다. 1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우리 생활 속에 잠재한 경제학의 원리를 쉽고 재미있는 언어로 풀어주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은 것 같은 뿌듯함이 몰려온다.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았는데, 그건 감옥의 존재가 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는 거였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감옥이 있지만, 감옥은 오히려 범죄자들의 인맥을 만들어 줌으로써 더 많은 범죄를 양산한다는 게 내 시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범죄자들은.....수감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다. 따라서 감옥은 범죄를 줄여준"단다. 썩 개운치 않은 결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책에 나온 얘기를 하나만 더 해보자면, 도시에 사는 남자는 미녀와 결혼할 확률이 더 높단다. 왜? 도시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으니까. 우리나라도 보면 시골에는 남자가 많고, 감옥에 있는 사람 중엔 남자가 압도적이니, 도시 사람들 중엔 여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숫자의 불균형이 남자로 하여금 자신의 조건보다 더 좋은 여자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고, 그 대표적인 예가 직장이 천안임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출퇴근을 하면서 서울서 버틴 나다.


정재승 씨가 <과학 콘서트>를 저술한 이래 '콘서트'란 책은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한 양식이 되고 있는데, 그 책들의 성공비결은 우리의 삶과 전문지식을 연결시켰고, 책에서 선정한 주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었다는 데도 있지만, 저자가 쉽고도 재미있게 글을 썼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이런 류의 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한마디만 더. 그 수많은 '콘서트' 중 <경제학 콘서트>는 단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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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양 2008-05-26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에 안주무시고 뭐하셔요? ㅎㅎ

마태우스 2008-05-26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모과양님 안녕하세요? 내일, 아니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좀 전에 끝냈는데 잠이 안오네요. 밤 새우려고 작정하고 낮에 좀 잤더니만... 이렇게 된 거, 밀린 리뷰나 쓰려고요. 아니 근데 모과양님은 이 밤에 뭐하시나요???^^

2008-05-2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5-2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고마워요 ㅁㄱ님!!!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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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놓고 말들이 많다. 둘만 낳아 잘기르자는 표어를 들으며 자라온 난 이런 급격한 변화가 몹시 헷갈리지만, 주위를 보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예컨대 엊그제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내가 연락책을 담당했다. 내가 들은 답변이다.

"오늘 우리 아들이 6시까지 시험보거든. 집에 데려다주고 밥 먹이고 나갈게."

"난 애가 셋이잖아. 집사람한테 모두 맡기면 미안해서 못갈 것 같다"

모임에 나온 사람이라고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니, 그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좋은 대학에 붙이느냐였다. 우리 나이면 애들 나이가 기껏해야 중학생이지만, 요즘의 입시전쟁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무자식을 필생의 신념으로 굳힌 우리 부부는 불안한 시기엔 손만 잡고 자고, 태몽 비슷한 걸 꾸면 각방을 쓰는 등 철저히 조심을 한다. 그런 내게 누군가가 선물해준 <다섯째 아이>는 정말이지 공감이 팍팍 가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부부는 막연하게도 아이를 많이 갖자는 생각을 했고, 그걸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태어난 다섯째 아이가 무시무시한 아이로 자란다는 게 이 책의 골자인데, 이해가 안가는 건 다섯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그네들 둘은 충분히 힘들었다는 거였다. 보채기만 하는 아이들 넷을 둘이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네들이 아이들로 인해 행복감을 느꼈다고 해도 끊임없이 애를 봐줘야 했던 친정어머니나 어쩔 수 없이 계속 돈을 대줘야 했던 시아버지의 희생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해봐야지 않을까? 책을 선물해준 사람의 의도가 "넷만 낳아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무자식을 신념으로 택하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아이가 없으면 불편한 건 주위 사람들로부터 애 낳으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한다는 거다. "나이가 들면 어떡할래?"는 흔히 들먹여지는 이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허리가 휘는 우리 어머니를 보면, 그리고 혼자 쓸쓸히 늙어 가시는 할머니를 보면 자식의 존재가 노년의 심심함을 잊게 해주는 건 아닌 듯하다. "널 닮은 애가 있으면 좋지 않냐"는 말 역시 내가 자라온, 별반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유년기를 그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할 듯한데,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도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건, 그런 얘기를 시시때때로 듣는 게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개 두 마리와 더불어 사는 지금의 삶을 존중해 줄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라는 것, 그리고 미래가 어찌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난 참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여의도공원에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가서 아내가 한 말, "여보,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게 내가 꿈꾸던 삶이었어."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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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도 멋진 삶인거 같아요. 손만 잡고 자도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이 영화처럼 떠오르는대요.^^

마태우스 2008-05-2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휴...님 덕분에 무플을 막았네요 호호. 저희의 뜻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05-31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