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글을 전에 썼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쓴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건너편에 앉은 두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그들을 주목한 이유는 내가 앉은 각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둘의 행태가 심히 괴이해서였다. 내가 앉아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둘은 휴대폰을 귀에다 대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어딘데..."라는 한 사람의 말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는 다른 사람의 말이 중첩된다. 도대체 저 둘은 왜 만난 것일까.

그 사람이 정도가 좀 심하다 뿐이지, 이런 일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술집 같은 곳에 둘이 마주앉아 있는데, 한 사람이 오래도록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당해봐서 아는데, 둘이 있다가 한명이 전화를 하면 남은 사람은 졸지에 바보가 된다. 딱이 할 일도 없고, 책을 꺼내서 보기도 그렇고 (사실 난 그렇게 한다),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거나 아니면 울리지 않는 자신의 휴대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짧은 통화야 이해할 수 있지만, 5분, 10분간을 계속 통화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시간이 상대방에게는 몇시간으로 느껴질 만큼 지루하다.

로또에 당첨되어 수십억을 받은 사람이 또다시 로또를 사는 것도 나쁜 행위지만, 남은 한명을 버려두고 휴대폰을 받는 사람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은 휴대폰 예의가 발달해서 전화를 받으면 "지금 통화 가능해?"라는 질문이 꼭 나오기 마련이다. 둘이 있다면, 그리고 통화가 길어질 것 같으면, "지금은 좀 곤란해"라고 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2-1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절대공감! 차라리 나가서 받으면 그래도 나은데, 마주앉아 상대방은 통화하고...그앞에서 괜히 멋적어서 술잔 들었다놨다...괜히 문자도 보내보고...책 읽는건 생각도 못했는데, 어색할꺼 같지만 괜찮은 방법이네요. ㅎㅎ 중요한 통화면 어쩔수 없지만, '나중에 계속 통화하자'고 일단 짧게 끊는게, 상대방을 위한 배려고 예의일거 같네요. ^^

쎈연필 2004-02-1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은 글입니다. 의외로, 상당히 교양있는 사람들도 휴대폰 예절에 있어서는 무개념하더라구요. 대인관계를 잇는 필수품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전 말은 안하지만 이후로는 그런 사람들과 둘이 만나는 게 싫어지더군요.

_ 2004-02-1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저도 많이 겪었던 일이지만, 한창 대화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보통 '지금 통화하기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서스럼없이 전화를 받는일이 많은데, 그게 또 짧으면 모르지만, 한없이 길어지다 보면, 마태우스님 말씀처럼 남은 사람 졸지에 바보로 만드는 격이지요. 물론, 그 전에 하던 대화의 맥이 탁 풀리는건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더군다나 저처럼 폰이 없는(!) 경우는 아예 올 전화 조차 없기에, 그냥 멀뚱멀뚱 먼산만 바라 본답니다.

예전의 휴대폰 광고 문구가 생각나는군요.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 =_=;;

Arch 2004-02-1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나두 없는데.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일상적인 휴대폰 사용 말고 과시용으로 전화통화를 크게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전에 에코의 글에서 그러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빚에 좇기거나 연체된 카드빚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 그러더라구요. 자기딴에는 자기가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올 정도로 인기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는 통박인데 진짜로 인기가 많아서 관리가 필요할 정도이고, 그만한 지위라면 비서보고 전화를 받게한다나 뭐래나. 전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앞에서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도 별 쓸데없는 소리로- 둘 사이에 공간을 저 사람은 저렇게도 메꾸는구나싶은. 암튼 마태우스님의 단상은 한참 물오른 생선회처럼 펄펄 살아숨쉬는 듯 싶어요.

마태우스 2004-02-1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개속토끼님/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물오른 생선회'라는 대목에서 눈이 번쩍.... 그러고보니 회가 먹고 싶군요.
Bird나무님/작년에 전화기를 잃어버리고 2주간 폰 없이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좀 불편해하더군요. 그래서 느꼈죠. 아, 휴대폰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갖고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요.

마태우스 2004-02-1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 님의 사슴뿔 말입니다, 자세히 보니 풀이 자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아, 제가 너무 님의 마스코트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 같네요. 죄송.
라스꼴리니꽃님/저도 정말 싫더라구요! 제 친구 하나는 저랑 차타고 어디 가는 내내 전화만 하더군요. 그런 게 나쁘다는 걸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요.

비로그인 2004-02-1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풀이 자라는 것 같은게 아니라 풀인데요!! 이젠 더이상 마태우스 님 집에서 인기좋은 '노경'이 아니라, '행운목'이랍니다~ 조그만 아이콘으로 얼핏 보면 역시 뿔같죠?? ^^

마태우스 2004-02-1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오오, 정말 풀이군요!!!
 

 

 

 

 

 

부츠를 신은 여성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건 내가 부츠를 신은 여성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부츠를 신은 여자가 이뻐 보인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라 내 친구 하나도 부츠를 신은 여자만 보면 눈을 뗄 줄 모른다. 우리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여성들이 부츠를 많이 신는 것이겠지. 부츠를 신으면 왜 이뻐 보이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상상의 힘에서 비롯된다. 여성에게 있어 다리는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상징의 일부다. 옷을 다 벗은 것보다 일부만 가린 게 더 야하게 느껴지듯, 다리의 일부를 가리면 상상을 하게 되니 더 멋져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내 생각은 대부분 틀리는지라, 아는 여자에게 부츠를 신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이다. "치마 입었을 때, 추우니까 신는거죠. 부츠가 뭐 별건가요. 긴 신발로 생각하면 되죠" 음, 그렇구나. 이뻐 보이려고 신는 건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내가 전화를 건 다른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추워서 신는 건 맞아요. 하지만 부츠는 날씬하고 다리가 긴 여자가 신어야 이쁘죠. 그래서 제가 부츠를 못신잖아요"
그러니까 부츠를 신은 여자가 예뻐 보이는 게 아니라, 예쁜 여자가 부츠를 신는다. 그러니까 부츠도 아무나 신을 수 없는 하나의 권력기제인 것일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 2004-02-1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츠에 대한 환상은 남자건 여자건 다를 바가 없는 듯 합니다. 친구 하나는 부츠가 너무나 신고 싶어서 고가의 부츠를 장만하였는데 그 부츠에 어울리는 스커트 내지 정장류의 바지 입기를 꺼려서 결국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고 구경만 한다지요. 예쁜 여자가 부츠를 신는다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한가로운 여자가 부츠를 신는 게 아닐지. 종일 바쁘게 뛰거나 걷는 여자들 절대 부츠는 사절이죠. 그리고 부츠의 이면은 참혹한 고통의 인내라는 것 아세요? 그 죽을 맛을 참고 사는 여자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마태우스 2004-02-1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헤헤, 제가 좀 환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부츠가 '고통의 인내'일 수도 있군요. '한가로운 여자가 부츠를 신는'다는 말씀도 님의 글을 읽고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코멘트 감사드려요.

옴므 2011-05-2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츠를 다리긴여자만 신는단 말은 첨듣네요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진짜 귀엽긴 해요.ㅋㅋㅋ 저랑 취향 같으시네요.ㅋㅋ
 

 

 

 

 

 

출산과 동시에 버려지는 탯줄을 어떻게 한번 써먹어볼 수 없을까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탯줄 안에 제대혈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안에는 피를 만들 수 있는 조혈세포가 들어있다. <레인메이커>라는 책에서 보듯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환자가 골수이식을 받지못해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 자신의 제대혈로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백혈병에 대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그 사람은 탯줄을 보관하는 회사를 만들었고, 그게 바로 <메디포스트>다.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2001년 3월 사업을 시작한 이래, 골수 관련 환자들에게 제대혈을 성공적으로 기증한 사례가 수십례 있었고, 그 중 2례는 자신의 제대혈을 받은 경우였다. 상황이 이렇다면,  출생하는 아이의 제대혈을 그 회사에 맡기는 것이 좋은 걸까?

잘은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백혈병에 걸릴 확률은 지극히 낮다. 모르긴 해도 1% 이하일 것이다. 그런 희박한 확률을 위해 150만원의 보관비용을 낸다는 게 그리 효율적인 투자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물론 백혈병이라는 게 일단 걸리고 나면 이만저만 고생하는 게 아니니 그정도 돈은 투자해야 하지 않는가 싶겠지만, 아직까지는 제대혈보다 골수이식이 더 확실한 치료방법이고, 정 필요하다면 위의 사례처럼 다른 사람의 제대혈을 쓰면 되지 않을까?

사실 난 그 회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대혈을 보관하도록 하는 것이 어머니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돈을 로비에 사용하는 그 회사와 이런저런 관계로 얽힌 의사로부터 "그런 것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대혈을 저장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것은 어머니로서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우리 애가 혹시라도...'하는 그 마음을 메디포스트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게 그 회사가 떼돈을 버는 이유다. 난 그게 싫다. '하는 게 좋은데...'라는, 의사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보관비용을 제공자에게 물릴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제대혈을 산 후 원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 정말 제대혈이 효과가 있다면 이렇게 되어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메디포스트는 15년간 보관해주는 댓가로 150만원을 요구한다. 아이디어는 기발하고 떼돈은 벌었지만, 그리고 내가 그 회사 주식의 15%를 가지고 있지만, 난 메디포스트가 싫다.

* 주식 얘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뻥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aviana 2004-02-1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다가 문제는 15년후에는 제대혈을 거의 사용할 수 가 없다고 합니다..백혈병이 혹 걸리더라도 15살이전에 걸려야 제대로 그 효능을 볼 수 있다는 군요..뭐 어머니들의 만사불여튼튼하고픈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니까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요..또 누가 자기아이가 언제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자기돈을 150만원이나 들였는데, 제공해 달라고 하면 주겠어요.결국 자기 자식에게만 줄려고 보관하다가 폐기처분하게 되는거지요..결론은 국가가 나서서 보관하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하는데, 어느세월에 그게 되겠어요..어 제가 괜히 님의 서재에서 비분강개하고 있군요.죄송^^ 근데 어제는 금주하셨나요?

비로그인 2004-02-1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지옥의 5연전이라고 들은거 같은데요~ ^^ 제대혈이 그런거였군요. 그렇게 보관하고, 그렇게 제공되는 건지는 몰랐네요. 만약을 대비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되네요. 저두 만약에 의사가, '그럴때를 대비해...'라고 넌지시 얘기하면 혹할거 같거든요.

2004-02-18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2-1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호오...15년 후에는 쓸 수도 없단 말이죠. 같이 비분강개해 주셔서 감사^^
앤티크님/술일기를 좀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저 안죽었구요, 술도 아주 많이 마셨습니다.
복돌이님/방명록을 참조하세요!!하여간 굉장히 반갑습니다.
 

 

 

 

 

 

몇년 전, 소위 386 출신 인사들이 5.18 전날 광주에서 술판을 벌인 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임수경이 전모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촉발된 이 사건은 많은 언론들의 비난을 받았다. 언론들은 사설로 그들의 도덕성을 질타했고, 넓게 보아 5공에 부역한 언론인인 전여옥은 큼지막한 칼럼으로 그들을 비아냥댔다. 그건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돌팔매를 던지는 데 동참했고,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386 의원들에게는 '5.18 전야 술파동'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그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좀 황당했다. 우리 언론들이 5.18 항쟁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고 숭상한단 말인가? 보수언론의 대표인 조선일보는 아직도 5.18을 '폭도들이 간첩의 사주를 받고 일으킨 난동' 쯤으로 생각하는 듯하고, 그들의 자매지인 <월간조선>은 여전히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쓴다. 네티즌은 다를까? 조선일보 독자마당에 오르는 글들을 보면 '광주사태는 빨갱이들이 일으킨 참극'이란 표현이 버젓이 등장한다. 모든 이들이 그에 동조하는 건 아니겠지만, 5월 17일날이 광주항쟁 전날이니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술같은 건 마시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광주항쟁은 광주 사람들만의 외로운 투쟁이었고, 광주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승격된 이후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광주항쟁 전날 술을 마셨다는 보수언론의 공격은 광주를 숭고히 여긴다는 증거가 아니라, 의회에 갓 진입한 개혁적인 386 의원-물론 실제로 개혁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는 거다-들의 도덕성을 실추시키기 위해 광주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이승연이 소위 '위안부 누드'를 찍어 궁지에 몰렸다. 오늘 신문을 보니 연예계를 그만두니 어쩌니 하는 말도 나오고 있단다. 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을 신인도 아닌데 왜 그리 생각없는 짓거리를 했는지 솔직히 안타깝다. 이승연의 누드에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 중 한가지가 평소 그녀가 정신대 할머니둘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다가, 때마침 몰아닥친 누드 열풍에 편승해 돈을 좀 만져보고자 하는 상업적 목적에서 위안부들을 이용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정신대 할머니들은 이승연의 행위에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며, 그건 이승연이 백번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내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러면 이승연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은 평소에 정신대 할머니들을 얼마나 생각했는가 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신대? 그거 지나간 역사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난 여러번 봤고, 심지어 "짜증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재판을 하는 등 계속 투쟁 중이라는 사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할머니들을 돕자며 모금운동을 벌일 때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보였을까? 그 할머니들이 과연 어떻게 사는지에 관해 우리는 알고 있는가?

변영주 감독이 정신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몇편 찍은 적이 있다. 그게 바로 <낮은 목소리> 시리즈다. 하지만 관객은 물론 우리 언론들은 그 영화에 대해 무심했고, 그 영화는 제대로 상영되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승연을 욕하는 걸까. 원래 연예인들은 돈되는 일이라면 다 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목청을 높여가며 이승연을 욕하는 사람들은 그 사건을 빌미로 잘나가는 이승연을 매장시키려는 음험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드 파문을 통해 정신대 할머니의 존재를 다시 한번 부각시킨 것, 그것이 이번 사건의 긍정적인 면이리라.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정신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신다. 젊은 시절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다가 광복 이후엔 '환향녀'라는 손가락질 속에서 어렵게 목숨을 부지해온 분들이다.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뜨셨고, 남은 분들도 살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이제라도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친일인명사전 발간비용을 모금하는 데 보인 열성의 일부만 그분들에게 관심을 돌렸으면 좋겠다. 그분들을 돕는 것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니까 말이다.

피에스: 나 역시 그분들의 삶에 무관심했다. 이승연 누드는 내게 그 사실을 반성하게 만들어줬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_ 2004-02-1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글에 적었지만서도, 이번에 엄청난 여론으로 위안부 논쟁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며,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저조차 평상시에 얼마나 위안부에 관심을 가졌었는가란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평상시에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고, 이번의 사태역시 나몰라라 하는 것도 적당치 않은 행동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마태우스님 말씀처럼 이 사건의 긍정적인 면(?)인 잊혀져 가던 위안부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겠죠. 사실 보면, 그 동안 오히려 무관심 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잊고 살었던 문제이기에 갑자기 드러난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이 부끄러운 나머지 더더욱 열을 올리며 그녀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들의 과오를(저를 포함하여) 모두 그녀에게 물리려고 그러는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갈대 2004-02-1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연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은 본문의 글과 어긋나는 느낌입니다. 명백한 잘못을 앞에 두고 '우리도 평소에 잘한 것 없으니 너무 비판말자'라는 주장처럼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은 비판이고 반성은 반성, 확실히 구분해야겠지요.

마태우스 2004-02-1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자신들의 과오를 모두 그녀에게 물리려고 그러는 건 아닌지'란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갈대님/말씀을 듣고보니 제목이 좀 그러네요. '이승연, 그리고 반성' 쯤으로 했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상품은 받으면 기쁜 거다. 하다못해 다이아반지라도 내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라면 얼마나 뿌듯한가.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서재를 열심히 꾸몄다고 알라딘에서 준 아차상이 그런 경우다.

아차상의 상품은 <아침형 인간>과 <한국의 부자들> 중 하나를 택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두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며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하는 <아침형 인간>이나
'자수성가한 알부자 100인의 돈버는 노하우'라는 부제를 가진 <한국의 부자들>은 내 기준에 의하면 좋은 책은 아니었다. 수만권, 혹은 수십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이긴 해도, 난 그런 책들이 내 정신수양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 의문스럽다.

돈버는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해도, 그대로 따라한다고 부자가 될까? 방 한구석에 팽개쳐 놓았던 <한국의 부자들>을 펴봤다. '부자들의 기상시간'이라는 그래프가 그려져있다. 알부자 100인들 중 21명이 4시 전후에 일어나고, 67명은 5-6시 사이에 일어난다. 6시 이후는 단 11명. 부지런함을 배우란다. 그래? 4시에 일어나면 부자가 된다고 해도, 난 그냥 많이 자고 가난하게 살련다.

98쪽엔 이런 말도 있다. "무자비함을 배워라" '인생 자체가 전쟁이'란다. 삶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이지, 그게 왜 전쟁인가? 책은 말한다. "착하기만 한 부자는 없다"고. 누가 그걸 모르나? 이런 걸 굳이 책으로 쓰다니, 나무가 아깝다.

<한국의 부자들>에서 내가 빠졌다고 이러는 건 물론 아니다 (강력히 항의한 결과 내가 103위였다며 다음 2권에는 꼭 포함시켜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가 앞으로만 달려나가려는 이때, 책은 우리에게 현재 사는 세상은 옳은 게 아니라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보자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지는 못한 채 거기 편승해 "더, 더 빨리 달려라"고 채찍질을 하는 게 어떻게 책일 수 있을까.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침형 인간> 역시 마찬가지일 듯 싶다. 동아일보의 서평이다. "한마디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책이다. 아침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공도 건강도 없다는 것" 역시 한숨이 나오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알라디너들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그러는 건 아닐게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세상에 대해 회의해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번 상품은 좀 뜬금없다. 알라디너들이 별로 읽지 않은 책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상품을 받고 "책 읽지 마. 돈이 최고야"라는 비아냥을 느꼈다면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방법이 있었다면 난 상품 수령을 거부했을 테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우리집 한구석에 흉물스럽게 놓여있다. 다음에 상품을 준다면 아예 안받을 권리도 줬으면 좋겠다. 그 책은 내게 쓸데없는 책이지만, 그렇게 버려지느니 그 책을 필요로하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게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주위 친구들에게 가지라고 했더니 다들 싫단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4-02-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받았습니다. <한국의 부자들>... 혹시나 남편이 읽고 크게 느낀바 있어 부자가 되면, 부자 마누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갖은 생색을 다 내며 선물로 줬지만...
책 알러지인 우리 남편...별로 고마워 하지도 않았고, 아마도 안 읽을 것 같습니다.

가을산 2004-02-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서점에 가보면 한숨만 납니다. '한국의 부자들'은 그래도 고상한 축에 드는 것 같습니다.
왠 경영, 처세술 책이 그리 많은지... 그리고 그런 책이 '팔리는' 현실이 참..
어제도 집근처의 중형(대형은 아니고, 점방도 아닌)서점에 갔는데, 20대 남자 두명이 책을 한아름 사가더군요. 무슨 책을 저리 많이 샀는지 잠시 구경했는데, 한 질 빼고는 죄다 처세, 경영, 경제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그 한질도 '지전'이라는 소설이었구요. 애휴~~

soulkitchen 2004-02-1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부자들 2>는 사뭇 다른 책이 되겠구만요. 기대만땅입니다. ^^

chaire 2004-02-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부자들 2권이 아마 나왔을걸요... 가서 마태우스 님 찾아봐야겠다~~~

쎈연필 2004-02-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받자마자 훑어보았더니 착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없다. 착하게 살지 마라... 뭐 이런 문구보고 인상 찌푸리곤 책을 덮었죠. 마태우스님 말씀마따나 너무나 흉물스러운 책이었습니다. 그래도 책받은 날 그 책이랑 딱 어울리는 친구가 있어, 줘버렸습니다. 저도 안 받고 싶었는데 말이죠. 전 알라딘과 했던 인터뷰에서도 경영, 처세 관련 책들을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말예요 허허 참...

_ 2004-02-1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마을 이벤트 하기전에 두 책을 욕하고(!) 있었는데, 부자관련 책이랑, 아침형인간 채이었는데, 어찌된 인연인지 택일 상품이 두권중 하나더라구요. ^^; 아침형 인간이 전혀 될 생각도 없을 뿐더러, 무조건 일찍 일어나는 세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요즘이라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아 책장을 펼쳐들지 못하고 있는데, 만약 서평을 써도 악평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가을산 2004-02-1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글올린 사람들 중에는 '한국의 부자들 10권'에도 들 사람이 하나도 없겠구만요. ^^

paviana 2004-02-1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가 불쌍하다에 박수 세번입니다...도대체 왜 그런책을 그많은 사람들이 사 보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베개로 쓰기에도 베개에게 미안할 따름인데...비슷한 생각을 가진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좋군요^^

마태우스 2004-02-1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의 말씀처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을 만난다는 게 참 좋습니다. 코멘트 남겨주신 가을산님, Bird나무님, 진우맘님, 라스꼴리니꽃님께 감사드립니다
soulkitchen님, 카이레님/윽, 2권이 벌써 나왔어요? 거짓말 한 게 들통나겠군요T.T

마태우스 2004-02-1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글쎄요,10권까지도 포함이 안될까요? 사실은 제가 매주 4천원씩 로또를 사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 전에는 포함이 될 것 같군요^^ 잘 거 다자고, 농땡이 피면서 로또만 열심히 사서 부자가 됐다, 이게 못자고 못쉬면서 된 부자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mannerist 2004-02-18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선생의 예리한 글 조금 붙입니다. "이런 류의 책은 한마디로 '현대판 주술'이다. 말하자면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잠시나마 허구적으로 실현하고, 현실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미신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실제로 도움을 받는 사람도있을 것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경우,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주술도 아주 가끔은 사람들을 돕는다고 ... 이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진리는 그 반대다. 실은 이 책을 사서 읽는 여러분들이 저자를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일부. 시칠리아의 암소 중에서...

가을산 2004-02-1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nerist님의 인용문처럼 어떤 '돈벌기'계통의 책에 대한 서평으로 '다른건 몰라도 이런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도 팔리는 책을 낸 저자는 돈을 벌었겠다'고 썼더니, 리뷰로 채택되지 않았답니다. --;; - 아, 이게 가장 첨으로 쓴 리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