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은 받으면 기쁜 거다. 하다못해 다이아반지라도 내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라면 얼마나 뿌듯한가.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서재를 열심히 꾸몄다고 알라딘에서 준 아차상이 그런 경우다.

아차상의 상품은 <아침형 인간>과 <한국의 부자들> 중 하나를 택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두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며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하는 <아침형 인간>이나
'자수성가한 알부자 100인의 돈버는 노하우'라는 부제를 가진 <한국의 부자들>은 내 기준에 의하면 좋은 책은 아니었다. 수만권, 혹은 수십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이긴 해도, 난 그런 책들이 내 정신수양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 의문스럽다.

돈버는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해도, 그대로 따라한다고 부자가 될까? 방 한구석에 팽개쳐 놓았던 <한국의 부자들>을 펴봤다. '부자들의 기상시간'이라는 그래프가 그려져있다. 알부자 100인들 중 21명이 4시 전후에 일어나고, 67명은 5-6시 사이에 일어난다. 6시 이후는 단 11명. 부지런함을 배우란다. 그래? 4시에 일어나면 부자가 된다고 해도, 난 그냥 많이 자고 가난하게 살련다.

98쪽엔 이런 말도 있다. "무자비함을 배워라" '인생 자체가 전쟁이'란다. 삶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이지, 그게 왜 전쟁인가? 책은 말한다. "착하기만 한 부자는 없다"고. 누가 그걸 모르나? 이런 걸 굳이 책으로 쓰다니, 나무가 아깝다.

<한국의 부자들>에서 내가 빠졌다고 이러는 건 물론 아니다 (강력히 항의한 결과 내가 103위였다며 다음 2권에는 꼭 포함시켜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가 앞으로만 달려나가려는 이때, 책은 우리에게 현재 사는 세상은 옳은 게 아니라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보자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지는 못한 채 거기 편승해 "더, 더 빨리 달려라"고 채찍질을 하는 게 어떻게 책일 수 있을까.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침형 인간> 역시 마찬가지일 듯 싶다. 동아일보의 서평이다. "한마디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책이다. 아침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공도 건강도 없다는 것" 역시 한숨이 나오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알라디너들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그러는 건 아닐게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세상에 대해 회의해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번 상품은 좀 뜬금없다. 알라디너들이 별로 읽지 않은 책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상품을 받고 "책 읽지 마. 돈이 최고야"라는 비아냥을 느꼈다면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방법이 있었다면 난 상품 수령을 거부했을 테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우리집 한구석에 흉물스럽게 놓여있다. 다음에 상품을 준다면 아예 안받을 권리도 줬으면 좋겠다. 그 책은 내게 쓸데없는 책이지만, 그렇게 버려지느니 그 책을 필요로하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게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주위 친구들에게 가지라고 했더니 다들 싫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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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받았습니다. <한국의 부자들>... 혹시나 남편이 읽고 크게 느낀바 있어 부자가 되면, 부자 마누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갖은 생색을 다 내며 선물로 줬지만...
책 알러지인 우리 남편...별로 고마워 하지도 않았고, 아마도 안 읽을 것 같습니다.

가을산 2004-02-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서점에 가보면 한숨만 납니다. '한국의 부자들'은 그래도 고상한 축에 드는 것 같습니다.
왠 경영, 처세술 책이 그리 많은지... 그리고 그런 책이 '팔리는' 현실이 참..
어제도 집근처의 중형(대형은 아니고, 점방도 아닌)서점에 갔는데, 20대 남자 두명이 책을 한아름 사가더군요. 무슨 책을 저리 많이 샀는지 잠시 구경했는데, 한 질 빼고는 죄다 처세, 경영, 경제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그 한질도 '지전'이라는 소설이었구요. 애휴~~

soulkitchen 2004-02-1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부자들 2>는 사뭇 다른 책이 되겠구만요. 기대만땅입니다. ^^

chaire 2004-02-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부자들 2권이 아마 나왔을걸요... 가서 마태우스 님 찾아봐야겠다~~~

쎈연필 2004-02-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받자마자 훑어보았더니 착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없다. 착하게 살지 마라... 뭐 이런 문구보고 인상 찌푸리곤 책을 덮었죠. 마태우스님 말씀마따나 너무나 흉물스러운 책이었습니다. 그래도 책받은 날 그 책이랑 딱 어울리는 친구가 있어, 줘버렸습니다. 저도 안 받고 싶었는데 말이죠. 전 알라딘과 했던 인터뷰에서도 경영, 처세 관련 책들을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말예요 허허 참...

_ 2004-02-1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마을 이벤트 하기전에 두 책을 욕하고(!) 있었는데, 부자관련 책이랑, 아침형인간 채이었는데, 어찌된 인연인지 택일 상품이 두권중 하나더라구요. ^^; 아침형 인간이 전혀 될 생각도 없을 뿐더러, 무조건 일찍 일어나는 세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요즘이라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아 책장을 펼쳐들지 못하고 있는데, 만약 서평을 써도 악평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가을산 2004-02-1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글올린 사람들 중에는 '한국의 부자들 10권'에도 들 사람이 하나도 없겠구만요. ^^

paviana 2004-02-1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가 불쌍하다에 박수 세번입니다...도대체 왜 그런책을 그많은 사람들이 사 보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베개로 쓰기에도 베개에게 미안할 따름인데...비슷한 생각을 가진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좋군요^^

마태우스 2004-02-1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의 말씀처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을 만난다는 게 참 좋습니다. 코멘트 남겨주신 가을산님, Bird나무님, 진우맘님, 라스꼴리니꽃님께 감사드립니다
soulkitchen님, 카이레님/윽, 2권이 벌써 나왔어요? 거짓말 한 게 들통나겠군요T.T

마태우스 2004-02-1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글쎄요,10권까지도 포함이 안될까요? 사실은 제가 매주 4천원씩 로또를 사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 전에는 포함이 될 것 같군요^^ 잘 거 다자고, 농땡이 피면서 로또만 열심히 사서 부자가 됐다, 이게 못자고 못쉬면서 된 부자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mannerist 2004-02-18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선생의 예리한 글 조금 붙입니다. "이런 류의 책은 한마디로 '현대판 주술'이다. 말하자면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잠시나마 허구적으로 실현하고, 현실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미신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실제로 도움을 받는 사람도있을 것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경우,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주술도 아주 가끔은 사람들을 돕는다고 ... 이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진리는 그 반대다. 실은 이 책을 사서 읽는 여러분들이 저자를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일부. 시칠리아의 암소 중에서...

가을산 2004-02-1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nerist님의 인용문처럼 어떤 '돈벌기'계통의 책에 대한 서평으로 '다른건 몰라도 이런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도 팔리는 책을 낸 저자는 돈을 벌었겠다'고 썼더니, 리뷰로 채택되지 않았답니다. --;; - 아, 이게 가장 첨으로 쓴 리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