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로 일하는 내 지인이 3년간 5천만원을 모았단다. 이사를 가려고 돈을 박박 긁어봤더니 그 정도가 나왔다나. 그렇다고 평소에 돈을 안 쓰거나 그런 애도 아닌지라,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주말에도 과외하고 그랬어. 친구들한테는 썼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돈을 안 썼어.”

그의 다음 말이 날 부끄럽게 했다.

“넌 얼마나 모았니?

매달 버는 돈은 그 친구보다 많은데, 난 왜 이렇단 말인가. 조직관리한다고 밤낮 술만 먹고, “내가 쏜다!”는 말을 즐겼던 결과는 역시 허무함이었다.


그 후 난, 마음을 잡고 건실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예컨대 기차 대신 밀리더라도 퇴근버스를 탄다든지, 맛이 없어도 외식 대신 우리 병원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든지, 머리가 길어 얼굴을 덮어도 안깎고 버틴다든지.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 많이 쓴다는 옛말을 교훈삼아 만원짜리 한 장만 넣어두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쓰임새를 줄이는 건 역시나 어려웠다. 그렇게 한푼 두푼 아끼고 나면 난데없는 술자리가 생겼고, 아는 후배가 결혼을 했고, 지인의 부친상이 이어졌다.


오늘은 카드 결재일, 즉 상당수의 돈이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날. 그래서 난 각오를 더 다졌다.

‘교통비 빼고는 십원도 쓰지 말자!’

다행히 내겐 지난번에 실수로-한장 눌렀는데 두장이 나왔다-뽑아놓은 2500원짜리 식권이 있었으니, 점심값이 들 일도 없었다. 난 병원식당에 가서 유유히 식사를 했고, 배를 두드리며 그곳을 나왔......는데....


선생님 한분이 지갑을 뒤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입구에 서계신지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뭐하세요?”

“혹시 식권 있으면 한 장만 줘.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네.”

난 식권이 없다면서 3천원을 드렸다.

“나중에 갚을께!”

“아유, 별 말씀을!”

말이 그렇지, 3천원을 어떻게 받는가. 하지만 난 몇 발짝 걷기도 전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주머니에 500원짜리 있는데, 2천5백원 드릴 걸.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방으로 왔다. 그런데 학생 하나가 내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상의할 게 있다고.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점심은 먹었나요?”

학생은 안먹었다며, 슬픈 눈으로 날 본다.

“어쩌죠? 난 먹었는데.”라고 말을 했는데, 하고나서 보니 내가 좀 너무한다 싶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굶는 걸 못보는 내가 아니던가. 난 그 학생과 압구정 김밥에 갔고, 나는 칡냉면을, 학생은 치즈김밥을 시켜 줬다.

“한창 때인데 그거 먹고 되겠어요? 다른 것도 하나 시켜요.”

“전 많이 안먹어요.”

“괜찮아요. 이럴 때 많이 먹어야지. 자, 뭐 먹을래요?”

학생은 물만두를 골랐다.


난 부른 배를 움켜쥐고 칡냉면을 먹었다. 근데 학생은, 진짜 양이 작았다. 물만두를 손도 안댄다. 저거 어떡하냐, 내가 먹어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학생이 말한다.“물만두 싸주세요.”

정리하면 이렇다. 학생은 진짜 양이 적다. 그러니 물만두는 안시켜도 됐다. 물만두를 시켰다면 내 칡냉면은 시킬 필요가 없었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이 모든 게, 식사 타이밍을 잘못 맞춘 때문이다. 배고프다고 일찍 가지 말고 한 이십분만 있다 갔으면 그 선생에게 3천원을 안뺐겼을 것이고, 점심을 두 번 먹는 일도 없었을 거다. 역시나, 내가 돈을 아낀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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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6-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신에 '공덕을 쌓기'로 목표를 조정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돈 많이 모았다고 누가 나중에 '공덕비' 세워주나요?..

비자림 2006-06-2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난 몇 발짝 걷기도 전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주머니에 500원짜리 있는데, 2천5백원 드릴 걸. "
킥킥킥 마태우스님, 제발 그만 웃겨 주세요. ^^
근데, 돈 모으기는 어떤 목표가 세워져야 되는 것 같더라구요. 이를테면 5년 안에 내 집 장만한다, 2년 안에 차 산다 등등..

릴케 현상 2006-06-2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아무래도 품위유지비가 들것 같네요. 지인보다 불리한 입장^^

Mephistopheles 2006-06-2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부터는 변장을 하시고 학교를 돌아다니시는 건 어떨까요..??

울보 2006-06-2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돈을 모아야 하는데,,
그것이 잘안되요,,마태님 마음조금은 이해가 가요,,,

비로그인 2006-06-2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녀님을 애인으로 사귀시구요, 그 미녀님께 돈관리 해달라고 하세요 ^-^

깐따삐야 2006-06-2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반 아이들은 제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 홀홀쩝쩝 맛있게 먹으면서도 해사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샘~ 베트남 가서 남자 사오시려면 돈 아끼셔야죠~ 케케케~" 이런답니다. 돈 쓰고 상처 받고 뭐 그런 식이죠. 케케케~

하이드 2006-06-2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창은요? ㅋㅋ 그렇게 밥값 몇천원, 차비 몇천원 아끼고, 쏜다고 몇십만원 쓰면 무슨 소용이냐! 고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랬어요. -_-a

물만두 2006-06-2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체는 안쓰시니 장하십니다=3=3=3

건우와 연우 2006-06-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품위유지하시고 지금처럼 유쾌하게 사심이 나을듯...^^

짱구아빠 2006-06-2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물만두님 사체라니요....마태님께서 열심히 카드를 긁어주신 덕분에 요즘 저희 업계가 2000년대 초반의 위기를 딛고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chika 2006-06-26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과 작성자를 한꺼번에 읽느라 '돈태우기'로 봤다. 헉, 어떤 미친넘이 돈을 태워? 하고 다시 봤더니, 돈 모으기였군. ㅡㅡ;
(월급이 많지 않았던 나, 정말 별로 돈 쓰는 것도 없는데 십년동안 직장다니며 모은 돈을 긁어야 오천만원 나오까나~ 생각하니 왠지 기운없는 오후가 될 듯하네. 흑~ ㅠ.ㅠ)
- 근데 정말 예전엔 후배들 밥도 잘 사주고, 술값없다면 돈 들고 뛰어 나가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 ;;;;;

비로그인 2006-06-2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어머니가 그러셨다죠. `너는 자본에 대해 쓸 게 아니라 이제는 자본을 좀 모아보렴' 흐흐흐....웃으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웃깁니다.

해리포터7 2006-06-2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사를 하셨는데도 그 학생을 위해 같이 드셔주시는 마음씨 감동입니당.~

마태우스 2006-06-2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제가 제주도 가면 돈 들고 뛰어오실 거죠? 네,라고 대답해 주시어요!! ^^
짱구아빠님/진짜요즘 많이 긁었습니다 음하하핫하하...흐....흐흐흑.
건우님/그래요, 맘 편한 게 제일이죠 뭐^^
만두님/사채 한번 써봤어요. 정말 날도둑놈들이었죠...150만원 빌리고 갚은돈은 240만원인가 그랬을걸요.
하이드님/그니까 한푼 두푼 아껴서 님 오시면 곱창 쏘겠단 소리죠
깐따삐야님/애들이 진정한 유머가 뭔지를 모르는 듯하네요. 유머란 남에게 상처주는 게 아닌데....
고양이님/님도 미녀시잖아요!!
울보님/님이야 류가 있으시니, 돈 모으는 게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전 순전 유흥비로 쓰니 아낄 소지가 많이 있지요..
메피님/모자 쓰고 다녀도 다 아라보더이다.
자명한산책님/품위 유지비란 명목으로 나가는 돈..... 사실은 그게 다죠....
비자림님/그런 것 같아요. 저야 이미 저택이 있고 하니....그게 어렵더이다.
로쟈님/사실은 저도 그냥 해본 소리였어요. 전 돈 모으는 건 진작에 틀렸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답니다 ^^


마태우스 2006-06-2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부끄럽사옵니다...
주드님/오오 그 어머님, 참 멋진 말을 하셨네요....^^

모1 2006-06-2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행복하게..사시라고 밖에는..후후..

세실 2006-06-26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 우리 그냥 포기하고 살아요~~~
돈 모으려고 하면 그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06-06-2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피크닉]이란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요는 타이밍이다.'
마태우스님의 일처럼 돈에 관해서도,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것들이 다 타이밍으로 결정되는게 아닐까요. 그때 내가 거기에 없었다면, 그때 내가 널 만났다면...하면서 말이죠.
제게도 돈 모으는건 정말이지 너무나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공룡을 애인으로 두는것보다 더 힘든 일 같아요 ㅜㅡ

마태우스 2006-06-28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오, 그러니까 제가 알게모르게 생활 속에서 진리를 깨우친 거군요! 글구 제 생각엔 공룡을 애인으로 두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세실님/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는 계속 로또에 트라이하고 있습니다.
다우님/고맙습니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모1님/아유, 사실은 행복하게 살지요...^^ 과분하다고 생각하는걸요

실비 2006-07-0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마음먹으면 꼭 꼬이는날이있더라구요.. 그래도 잘하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