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싫어하고, 운전하는 시간을 버리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나는 지난 7년간 천안까지 차를 몰고 간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짐이 아주 많았던 초창기를 제외한다면 외부강사를 모실 때만 차를 운전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학기, 난 무려 다섯 번이나 차로 천안을 오갔다. 내가 처음 맡은 ‘논문작성법’ 과목에서 4분의 외부강사를 모셨고, 원래 모시던 지도교수를 위해 한번 운전을 했는데, 그게 모두 11월에 몰려 있었던 것. 그게 오늘로 끝이 났다.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내가 강의를 듣고 싶었던 분들을 모신 거였는데, 강의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매번 같은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그 덕분에 난 거기서 VIP가 되었다^^.


심작가님과 김규항님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오늘 오신 강사분께 천안 명물인 호두과자를 선물했다. 원조집에다 차를 세우고 잽싸게 사온 뒤 차를 출발시켰는데, 오미터도 못가서 경찰이 날 잡는다. 안전벨트를 안맸단다. 차를 출발시키면서 벨트를 당겼고, 경찰이 세웠을 때는 이미 맨 상태였기에 억울했다. 똑똑한 사람 같으면 아니라고 우겼겠지만, 천하의 바보인 나는 뭐가 그리 귀찮았는지 운전면허증을 줘버렸다. 열심히 뭔가를 적는 경찰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주위를 보니 경찰들이 다 출동해 안전벨트 안맨 차를 잡고 있었다. 7년 전 한번 안전벨트 때문에 걸린 뒤 벨트 매는 게 생활화된 터였는데 왜 이리도 재수가 없단 말인가. “월말이라 남은 딱지 써야 하나봐.”라는 강사 분의 말도 별 위안이 되지 못했다. 다른 일로 더 많은 돈을 쓸 수도 있지만, 벨트로 인한 딱지 3만원은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즐거워야 할 귀경길에 난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하면서 보냈다. 겉으로야 아닌 척 했지만-좀 비싼 호두과자를 사드린 셈 치죠 뭐-왜 우기지 않았는지, 난 왜 이리도 멍청한지 탄식을 했다.


내가 나를 위로한 말들이다.

-지난 목요일, 얼떨결에 출장 따라가서 회의비 받았잖아!

-어제 술병이 나서 집에만 누워있던 덕분에 돌잔치 안갔잖아! 그돈 굳은거지 뭐.

-이번주 금요일날 그 딱지 보여주면서 술값 못낸다고 버티면 되잖아.

그 생각이 난다. 100원을 잃어버려 우는 아이에게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100원을 주면서 그만 울라고 하자 아이가 한 말, “엉엉, 그거 안잃어버렸으면 200원이잖아요.”

내가 딱 그 심리다. “보세요. 맸잖아요?”라고 사납게 우겼다면 안낼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 어떤 위로도 날 달래지 못한다. 하긴, 언젠가 피자 먹다가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도 난 피자값을 다 지불했었다. 난 바보 쪼다 천치고, 얼간이이기도 하다.


탄식을 그만하고 논문작성법 강의가 종강한 소감을 말한다면, 학생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수라는 자리, 참 좋은 것같다. 강의를 빌미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으니까.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별로인 건 안타깝고 민망한 대목이다. 오늘 오신 강사분 역시 “왜 이렇게 지방방송이 많으냐”고 지적했고, 인내력이 강한 나도 이십분동안 계속 떠드는 두 학생에게 “출석 하셨으면 나가서 얘기하시면 어떨까요.”라는 쪽지를 전하기도 했다. 뭐 그리 할말들이 많을 걸까. 그러면서 강의실에 앉아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하여튼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이전 학생들과 어떻게 달라질지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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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11-2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聖人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地上天下의 큰바보 쪼다 천치 얼간이올씨다' 라고 말하겠어요. -니르바나 생각-

세실 2005-11-2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어차피 당장 돈 나갈꺼 아니니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딱지 날라와도 안내요. 나중에 차 팔때 한꺼번에 계산하죠 뭐~~
이렇게 두어번 한거 같은데...혹시 신랑이나 시어머니가 내신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와 유명한 분을 섭외한 좋은 강의였는데 안타깝네요. 학생들이 어른이 되면 후회하려나...

가시장미 2005-11-2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바보 쪼다 천치고, 얼간이이기도 하다. -> ㅠ_ㅠ 형!! 논문작성법 강의 나도 듣고 싶당! 어떻게 특강.. 안될까? 으흐흐흐

날개 2005-11-2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맸다고 우겼어도 경찰들이 딱지 끊어줬을 거예요...
실랑이 하느라 시간 버리지 않은걸 다행이라 생각하시는게.....^^
기분 풀리시라고 추천도!

커피우유 2005-11-2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추가! 돈은 아깝지만 그덕에 추천받는 잼있는 페이퍼 쓸거리 하나 생기셨자나요...^^ 아이템 구입비라고 생각하심 쓰린 속이 좀 달래지시려나...
4만원짜리 호두과자란 제목만 보고 무슨 무농약 호두나무에서 딴 최고급 과자 얘긴가 했어요 ㅋㅋ

바람돌이 2005-11-2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걸리면 딱지를 떼는건 기정 사실입니다. 경찰들 그 딱지 빨리 전부 나눠주고 퇴근해야거든요. ^^ 그냥 미안하다 그러고 한푼이라도 싼걸로 끊어달라 하는게 훨씬 잘 먹혀요. 가령 속도위반, 신호위반 6-7만원짜리 딱지를 안떼는건 불가능하지만 그걸 2-3만원짜리로 바꾸는건 의외로 쉽다는.... (참 가끔 마태님이 좋아하시는 미인분들이 울면서 애걸하면 안떼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저는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

깍두기 2005-11-2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전 이래서 마태님이 좋아요!

산사춘 2005-11-29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깍두기님이 좋아요! (뭔소리랴)

검둥개 2005-11-29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쪽지를 전하셨다고요. ^ .^ ㅎㅎㅎ

호랑녀 2005-11-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좋은 일 한 셈 치세요, 뭐.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무지 속상하시겠네요.

하늘바람 2005-11-2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 작성법 강의라 음 저도 강의 들어보고 싶네요

진주 2005-11-2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모님은 5000원 잃어버려,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가 밀어드렸는데,
마태님도 밀어드릴까요?

2005-11-2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11-2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글에 항상 제목에 맞는 책 이미지를 올리시는 건 오래전부터 알아왔지만 오늘은 저 책과 글 제목이 너무 잘 어울려 오히려 웃겨요. 크크크. 용서하시길...^^

marine 2005-11-2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의외의 돈이 나가면, 그냥 맛있는 거 사 먹었다고 생각해 버려요 어차피 먹고 나서 쓰는 돈은 흔적이 없으니까요

moonnight 2005-11-2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속상하시겠어요. 경찰도 암소리 않고 면허증을 내미는 마태우스님 땜에 허걱. 놀라고 미안했을 거 같기도 하구요. ^^; 그치만 너무 자학하진 마세요. 마태우스님이 바보라서 순순히 딱지를 떼인 게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 근데 학생들, 끝까지 떠들었단 말이죠. -_-+

마태우스 2005-11-2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이트님/아네요 전 바보예요.. 쪼다말미잘해삼오리너구리... 학생들은 끝까지 떠들었습니다....ㅠㅠ
나나님/그.렇.죠? 오래 마음에 담고 있으면 바보인 거겠지요?
스텔라님/간만에 어울리는 책이 있어서 저도 좋았습니다^
속삭이신 분/그렇게 하겠습니다. 공동으로 한번 해보죠^^
진주님/아네요. 진주님의 아름다운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늘바람님/내년을 기대해 주세요^^
호랑녀님/네...사실은 많이 속상합니다... 흑....호랑녀님이 옆에 계셨다면 어흥 하고 울어서 다 쫓아버릴텐데..
검둥개님/제가 한 소심 하잖아요^^
산사춘님/그러고보니 제겐 춘님이 있네요^^
깍두기님/제 마음 아시죠? 고마워요!
바람돌이님/호두과자집 앞에는 차들이 수시로 서기 때문에, 그곳을 택한 건 안전을 위한 거라기보다 보다 많은 딱지를 떼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님 말씀 들으니 위안이 됩니다.
커피우유님/앞으로 6주 연속 5천원을 타서 만회해야겠단 생각이... 추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어요
날개님/어머 날개님의 큰 날개가 있었다면 하늘로 날라가 버렸을텐데....^^
장미님/강의 끝난 후 뗑깡을 놓다니... ^^
세실님/제가 소심해서 안내고는 못배깁니다... 음, 님은 저보다 대담하시군요
니르바나님/아이고 님은 언제나 저를 좋게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정체를 밝히세요. 절 사모하는 여자분이시죠???^^

merryticket 2005-11-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도과자 먹고 싶어요..
그나저나 3만원이면 호도과자를 3박스나 더 샀을텐데,,,아까워요..

시비돌이 2005-11-29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호도과자가 문제를 호도하는 경향이 있군요. 그리고 마태우스님을 뵙고
싶어하는 인간이 또 나타났습니다. 마태님이 저보다 500배쯤은 유명한 듯
하군요. ㅜ.ㅜ 이번 주 금요일만 빼고 시간 한번 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마태우스 2005-11-30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비돌이님/호도과자 유머, 이번엔 웃겼습니다. 안웃으려고 허벅지 꼬집다가 결국 웃고 말았습니다. 글구 저를 보고 싶어하는 분이 또 있다니, 님이 저를 너무 신비스럽게 선전하신 건 아닌지요?^^
올리브님/3박스 더 산셈 치죠 뭐...홍콩으로도 하나 보내드리고 싶네요. 며칠쯤 걸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