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머리를 짧게 잘랐다면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건 단지 이발값을 아끼기 위함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머리를 자를 때마다 “빡빡 깎지 마라”고 경고를 하셨고, 난 그 경고를 번번이 어겼다.
이번에 머리를 자르기 직전 내 머리는 “끝내줘요”였다. 작은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머리. 기차 의자에 기대 잠이라도 자고 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머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게 느껴지곤 했었다. 자르고 나니 다른 사람들은 안보는데, 교수와 학생들이 보면서 웃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때 난 정말 못생긴 아이였다. 그때 난 콤플렉스에 빠져 거울도 안보고 사진도 안찍고 그랬다. 그러다 중학교를 갔고, 머리를 빡빡 밀었다. 그때 알았다. 내 두상이 좀 괜찮은 편인 걸. 난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더 나았다. 지금 내가 뻑하면 스포츠로 자르는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 3 때부터 머리가 자율화되었지만 난 여전히 머리가 짧았다. 고3 때, 시험을 망친 다음날에는 아예 스님처럼 머리를 잘랐다. 그게 짧은 머리와 단단히 결심이 연결된 유일한 예였다.
xx신문에 우리 학교에 대해 글을 써주기로 했다. 사진도 필요하다기에 다른 분의 도움으로 사진을 찍었고, 그 김에 올린다. 5월 9일날 번개 때 날 보고 놀라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