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7월 19일(월)
마신 양: 소주--> 맥주
신임교수 면접을 하게 되었다. 자기 소개를 하고, 영어와 한글로 강의를 시연한다. 나 때는 한글로만 했는데 요즘은 영어까지 해야되나보다. 내가 여기를 그만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미녀에 약해 공정성을 의심받는 내가 무슨 면접이냐고 하겠지만, 내가 만난 세명 모두 경쟁률이 1대 1이라 별 걱정은 없었다. "할말 있어요?"라는 학장의 채근을 받을 때마다 "주량은 얼마나..."같은 말을 해 사람들을 어이없게 한 걸 제외한다면 무난한 면접이었던 것 같다.
면접 전에 학장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담소라고 하지만 주제는 어두웠다. 간에 암이 생겨 미국에 가서 간을 이식받은 교수 얘기를 비롯해서, 학장 당신이 교통사고를 내서 죽을 뻔한 일-타이탄 트럭과 부딪혔단다-을 비롯해, 아는 사람이 위암, 간암 등으로 죽은 일 등을 얘기하셨다. 그러면서 학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나이 40이 넘으면 한달에 한번씩은 주변 정리를 해야 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난 일년마다 하느님과 계약을 해가며 삶을 연장하고 있다고"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무한한 줄 안다. 죽을 것에 대비해 이따금씩 주변 정리를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학장: 서선생은 몇 년생이야?
나: xx년 생입니다.
학장: 그럼 아직 40 안됐네? 당분간은 그냥 살아도 되겠어.
학장님이 그말을 했을 때, 난 친구 은찬이를 생각했다. 은찬이는 어제 죽었다. 주변 정리가 필요없는 나이에.
은찬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들었을 때, 난 미녀 둘과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은찬이가 방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서울대병원입니다]
이 메시지를 확인한 이후, 난 마시려던 소주잔을 한동안 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주에 내가 본 모습이 은찬이와 만난 마지막이었다. "또 올께"라고 말은 했지만,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우리 둘다 알았을게다. 우리가 모은 장학금을 대표가 들고 찾아간 게 지난 목요일, 그때도 은찬이는 매우 힘들어했었단다. 그리고 어제 죽었다. 미녀 부인과 아이들을 두고서.
내 친구가 죽은 건 물론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뭐가 뭔지도 모를 젊은 시절의 죽음에 비해, 지금사 경험하는 죽음은 더더욱 가슴 저리다. 내가 쓴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해줬고, 날 교회로 인도하려고 노력했으며, 나만 보면 술좀 그만 마시라고 해줬던 은찬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어차피 우리도 시기만 다를 뿐 그의 뒤를 잇겠지만, 그가 지금 세상에 남겨둔 공백은 너무나 큰 듯하다.
오늘 난 영안실에 간다. 부친상에 가야 할 나이에 친구의 영정 앞에서 절을 한다는 게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그의 잘생긴 사진 앞에서 난 어떤 말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