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나랑 공보의를 같이 한 친구가 딴지일보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너무 까는 거 아닌가요? 저도 MB에 반대하지만, 선생님의 안위가 걱정이 돼서 전화드립니다.”
글을 불온하게(?) 쓰면 잡혀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듯 그런 시대는 다시금 도래했고,
언론뿐 아니라 집회. 결사의 자유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내게 더 큰 위협이 되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돈이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쓰다간 연구비가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겐 공포였다.
당장 내 아래 있는 연구원 선생님 월급은 어떻게 준단 말인가?
이건 괜한 걱정이 아니어서
올해 초 중앙대 교수 몇 분은 연구비 평가에서 1위를 하고도 연구비를 받지 못했고,
광우병의 위험을 주장한 교수 한분은 그 후부터 연구비를 일체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에서 나 같은 존재야 그리 신경을 안쓰겠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데 있어서 MB의 존재는 내게 상당한 위협이었다.
내가 성향과는 달리 글을 착하게 쓴 건 그런 이유였다.
올해 3월, 난 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 신청서를 제출했다.
최근 3년간의 업적이 출중한데다 연구계획도 훌륭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을 했다.
혹시 그게 떨어질까봐 난 또 다른 계획서를 써서 같이 제출했다.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경쟁률이 2대 1 쯤 되니,
그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4월 말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을 해보니 결과는 둘 다 꽝이었다.
연구원 선생님한테는 “됐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분간은 내 돈으로 연구를 하고 월급도 드려야 할 것 같다.
내가 떨어졌다는 소식에 경향신문 구독자인 학장님은 “4대강 반대하니까 떨어지지”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연구비 심사에서 탈락을 한 건 연구계획서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거다.
어쩌면 나 때문에 승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S대 S교수가 내 연구계획서의 심사위원이었던 게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한테 점수를 잘 줬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지금은 연구비 탈락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고,
“내가 언제부터 연구비 가지고 연구했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연구비 심사에서 탈락을 하고나니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이제는 누구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글을 써제길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4대강 반대를 할 때 “대변검사로 기생충 연구를 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추상적이고도 솜방망이같은 반대를 하는 대신
“대변을 걷어다 얼굴에 쳐박아주고 싶다” 같은 말을 쓸 수 있게 된 것.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는 자유인이 된 지금, 벌써부터 손이 근질근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