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하는 기생충 중 ‘G’라는 기생충이 있다.

갯벌에 사는 갑각류, 현지 사람들 말로 ‘능갱이’라는 '게' 종류에 의해 전파되는데,

주로 새들이 먹어서 생활사가 유지된다.

새 안에서 기생충이 어른이 되고, 새똥을 통해 알이 나가서 다시 게한테 간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 기생충에 걸릴 수가 없을까?

능갱이를 날로 먹는 사람은 드물지만,

지역에 따라 김치를 담굴 때 이걸 넣기도 하니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내가 이 기생충을 연구한다고 하니까 과거 S대에서 일하던 분이

“G라는 기생충의 인체 감염례를 다섯 개쯤 갖고 있다”고 제보를 해왔다.

그분이 보내온 사진을 보니 과연 그랬다.

갑자기 흥분이 됐다.

사람 감염례가 있다면 중요한 기생충으로 취급되는 등 대접이 다르니까.
 이게 G란 기생충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G의 인체 감염례가 아직 논문으로 나가지 않은 것.

그렇다고 내가 그걸 논문으로 쓸 수 없는 게,

S대에서 일하던 분의 자료는 S대 업적으로 나가야지,

내가 그걸 가지고 논문을 쓰면 ‘훔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난 지도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그거 논문으로 쓰시면 안되냐?”고 물었다.

지도교수님은 “안그래도 쓰려고 했다”는 답변을 주셨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나도록 논문을 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바쁘시면 제가 대신 써드리겠습니다. 저자에 저는 포함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 단독 논문으로 나가셔도 좋으니 제발 논문만 제출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님은 여전히 논문을 쓸 마음을 먹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것이 그 논문에 대한 모든 자료와 표본을

S대에서 일하다 그만두신 그분이 가지고 있고,

지도교수님은 그게 대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도교수님은 그게 논문으로 나가는 걸 원하지 않으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추측을 해보면 이렇다.

G라는 기생충도 크게 보아 교수님께서 다루는 기생충에 포함이 되는데,

내가 감히 선생님의 영역을 건드리는 게 마땅치 않은 거다.

내가 선생님의 직속 제자이고 하니 선생님 분야를 이어받으면 좋아하실 수도 있을텐데,

우리 지도교수님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진 않은 듯하다.

G에 관한 논문을 쓸 때마다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계속 쓰지만,

심사위원들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인체 감염 얘기는 빼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분하고 억울하고 그랬는데,

어느날 갑자기 더 이상 지도교수에게 의존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직접 가서 G의 인체감염례를 찾는 거야!”

 

물론 이건 쉬운 게 아니다.

유행지역에 가서 주민들의 대변을 검사하고,

G의 알이 나온 사람의 대변을 받아다가 G의 어른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G가 좀 중요한 기생충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직접 찾는 수밖에.

그래서 작년 말 군산 앞바다에 있는 유부도라는 섬에 갔다.

거기 사람들이 김치를 담굴 때 능갱이를 넣어 먹는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

 

정유공장 근처에서 마을 주민의 소유인 배를 기다렸다.

그 배는 한번 건너가는데 5만원씩이나 받았는데,

한 3-4분간 배를 타고 가는데 어찌나 바람이 불던지, 춥고 무서웠다.

섬 주민들은 30명도 채 되지 않았으며,

“요즘은 새만금 때문에 해산물이 안잡”히며, “능갱이 넣은 김치도 옛말”이라고 했다.

과연 그 주민들의 대변에서 내가 원하던 기생충은 보이지 않았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고, 달리 할만한 게 없어 주구장창 책만 읽었다.

돌아올 때 다시 5만원을 내고 배를 탔으며,

육지에 내리고 나서 만세를 불렀다.

이제부터 다시 지도교수의 은총을 기다려야겠다. 

내가 탄 배 

 

무서워서 줄을 잡고 있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는... 

 

겨우 내렸다 

 

대변을 걷으러 다니는 장면 

 


누군가가 대변을 주면 이렇게 기뻐했다. 기생충과 변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0-01-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님 얼굴 뵙는 것같아요. 잘 지내시죠?^^ 그런데 갑자기 영화 살인의 추억 생각이 ~죄송해요.

stella.K 2010-01-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압권임다!ㅎㅎ

Mephistopheles 2010-01-1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페이퍼 제목만 보고 알라딘 유부남들의 닉을 가지고 소설을 하나 쓰셨나 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레알"이었군요.

루체오페르 2010-01-1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리를 향한 열정! 감탄합니다.

메르헨 2010-01-1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디서 뵌 듯 한...으음...^^

커피우유 2010-01-19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안타까우면서도 왜이렇게 웃긴지...마태우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10-01-1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내용인데 ㅋㅋ 글이 너무 재미있습니다.그런데 꼭 보면 윗사람은 은근히 아랫사람이 자기보다는 조금 뒤에서 따라오도록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더라구요.

비로그인 2010-01-1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정말 멋있으세요.

순오기 2010-01-1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님을 정말 제대로 봤네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노력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같은가 봅니다.^^

다락방 2010-01-1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우스님! 글도 좋지만 마지막 사진은 정말, 정말 좋습니다!!

무스탕 2010-01-1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증말 미치겠어요, 마태우스님!!!
쪼아~~~ d(>_<)b


2010-01-19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능갱이 2010-01-1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궁금해서 찾아보니 '능갱이'는 '칠게'이고, 칠게를 갈아서 칠게젓, 뻘게젓을 전라도에서 담가 먹는다니...찾아보시면 있지 않을까..싶은데요...

pjy 2010-01-1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웃긴데 슬프군요~다시 지도교수의 은총을 기다리는게 심정적으로 쉽지 않겠다고 짐작만 됩니다~

이네파벨 2010-01-1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과학자십니다! 감동 & 감탄 ^^
마지막 사진의 눈빛! 범상치 않네요.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의 눈빛이 저럴까? ^^

울보 2010-01-1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출연이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마태우스 2010-01-20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네 제가 떨어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강행했사와요^^
이네파벨님/호호 그땐 좀 그랬어요. 하도 변을 안주셔서, 어쩌다 주는 분이 있으면 고마워 죽겠더군요^^
pjy님/사실 좀 그래요. 치사하다, 이런 생각도 들구요. 제가 G란 기생충만 연구하는 게 아니란 사실이 다행이죠.
능갱이님/안그래도 전라도 쪽으로 다시 출장을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답니다. 조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삭님/아앗 제 지도교수는 그분이 아니옵니다. 님 서재에 방문드려서 말씀드리지요
무스탕님/고,고맙습니다 저도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다락방님/아 네 제가 사진빨로 먹고 산다니깐요 호호호.
순오기님/그, 그렇긴 한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치사하죠. 그래도 제자인데 말입니다
주드님/이익? 향숙이 같은 사진을 보고 멋있다고 하시면...그럼 전 늘 멋진 건가요 호호^^
blanca님/윗사람들이 욕심을 버리고 후배들을 이끌어 줘야 좋은 건데, 사실 우리 학문이 그렇게 메이져도 아니고, 존폐위기에 놓인 학문이라 더더욱 아쉽죠
커피우유님/네 감사합니다 님도 올해 좋은 일이 많았음 좋겠습니다
메르헨님/현상수배 전단지 아니면 공개수배 25시 아닌가요^^
루체오페르님/진리를 위한 것도 조금은 있지만, 제가 연구하는 게 대단한 걸로 포장되길 바라는 욕심이 더 크답니다^^
메피님/글고보니 '유부'도군요. 유부초밥도 없던데 왜 섬이름이 그런지 차암.
스텔라님/헤헤 제가 원래 표정이 좀 되거든요^^
하늘바람님/헤헤 향숙이 이쁘다,라고 말하는 거 같죠?^^ 오랜만에 뵙네요. 방가방가.


2010-01-20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1-2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렇게 설명하여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교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시고 직접 나서신 소신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있답니다.
이상! ^^

L.SHIN 2010-01-2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멋지네, 마태님.

마태우스 2010-01-2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님/잉...멋지긴요 그냥 제가 할 일 하는 건데요...
hnine님/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지고보면 저 한몸 잘되려고 하는 거라, 좀 쑥스럽습니다.
속삭님/어..G라는 기생충은 원충이 아니라 윤충입니다. 윤충 중에서도 흡충류에 속하죠. 글구 이니셜을 쓴 이유는 아주 유명한 분이 아니라 존함을 써도 남들이 모를까봐,라는 생각을 해서인데요, 제가 결례를 범한 걸까요? 글구 님 서재에 가겠다고 해놓고선 까먹었습니다죄송합니다

마립간 2010-01-2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 H 선생님의 성함은 밝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기생충에 관해서는 저의 무식함이... (검색이라도 해보고 댓글을 남길 걸.)

홍가 2010-02-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기 혹시 유부도 들어가는데 탔던 선박을 어떻게 구하셨는지요 ^^

마태우스 2010-02-1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가님/이장님이 배를 가진 마을 분한테 부탁을 했지요. 전 공짜인 줄 알았는데 왕복 10만원 내라더군요 ㅠㅠ
마립간님/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희귀기생충 2011-04-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군요 이제부턴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