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때, 학교 현관에 있는 큰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난 내가 참으로 못생겼음을 깨달았다. 외모로 인해 수난받은 일은 꽤 많은데, 길을 가다가 동네 깡패들에게 붙잡혀 “넌 정말 희한하게 생겼구나”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고교 때, 고릴라를 닮은 우리 반 애는 “난 너처럼 못생긴 애는 정말 처음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부도 못했고 외모도 안 되고 말주변도 없던 탓에, 초등학교 때 내가 했던 사랑은 죄다 짝사랑이었다. 4학년 때 내 짝이었던 여자애를 짝사랑했었고, 6학년 때는 내 앞에 있는 여자애에게 호감을 느낀 나머지 할머니가 일본서 보내준 고급 연필을 선물하는 등 작업을 걸기도 했다. 물론 그때 내가 좋아했던 애는 우리 반 남자들 대부분이 좋아했던 L이었지만, 내 처지에 그녀를 넘본다는 건 당치도 않았다. L한테 정성껏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전해 주려고 일찍 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L의 책상 서랍에 카드를 넣으려다 수북이 꽂혀 있는 카드에 놀랐었다. 돌이켜보면 3학년 때는 또 다른 L을 좋아했었고, 4학년 때는 작고 귀여운, 다시 말해 내 스타일인 K를 짝사랑했다. 그녀와 나눴던 짧은 대화를 난 지금도 기억한다.
K: 이것도 몰라? 정말 미치겠다.
나: 미치면 내가 약 먹여 줄게.
유난히 숫기가 없었던 난 말을 붙여볼 용기를 내는 대신 먼발치에서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내 짝사랑의 대부분을 끝마쳤다.
중학교에 갔을 때, 난 눈물이 날 뻔 한 걸 겨우 참아냈다. 주위엔 온통 남자들 천지였고, 거칠어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견뎌내나 싶었다. 내 또래 애들이 다 그랬듯 난 학교 선생님들 중 젊은 여성에게 내 사랑을 투사할 수밖에 없었다. 중2 때 내가 국어를 유난히 잘했던 건 진씨 성을 가진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혀 미인이 아닌 그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삼아 머릿속으로 연애 소설을 쓰며 지냈었다.
[“미스 진, 우리 오늘 제과점에 가서 빵이나 먹지 않을래요?”
“오우, 미스터 마. 좋은 생각이어요.”
우린 제과점에 마주앉았다.
“손이 참 곱군요.”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나이도 한참 많은 선생을 대상으로 이런 소설이나 쓰며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 당시 난 여학생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행여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면 놀랄까봐 고개를 푹 숙였고, 가까이 지나가는 대신 멀찌감치 피해 다녔다. 정작 그녀 쪽에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건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여서, 같은 독서실을 다니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약간의 화제가 되었었다. 그곳에 몇 번 갔던 내 여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들이 큰오빠 왜 그러냐고 좀 물어보래. 어딘가 이상한 거 같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내가 좀 오버를 한 면도 있다. 난 여학생이 계단 밑에 서 있으면 아예 내려가질 못했고, 똑바로 쳐다보는 건 고사하고 반경 3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자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독서실 남자방에 난 얇은 틈에 눈을 갖다대면 여자방이 보였는데, 틈이 나는대로 그쪽을 들여다보곤 했다. 보이는 거라봤자 한 여자애의 등짝뿐이었지만, 그 시절엔 등짝만 봐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요컨대 난 여자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걸 즐겨 했으며, 그런 생활을 하다가, 즉 아무런 섬씽도 만들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여자들과 6년간 격리된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합쳐지게 된 대학 시절, 난 소개팅 장소에서도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땅만 보다가 몇 마디 못한 채 헤어지곤 했다. 동급생들의 미모가 그리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그 중에도 예쁘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제법 있었고 그네들이 다른 남자와 얘기라도 하면 부러움에 사로잡혔다. 수업 시간엔 몰래몰래 그녀들을 훔쳐봤고, 가끔은 옆에 앉은 친구한테 이렇게 말했다.
“야, 저기 앉아 있는 S 말야, 예쁘지 않니?”
그럼 그 친구는 한숨을 쉬며 이랬다.
“예쁘긴 뭐가 예뻐?”
S는 예과 때 내 고등학교 동창과 커플이 되었고, 의대 뿐 아니라 다른 단과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J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사춘기 때 그랬듯이 난 대학 때도 먼발치에서 미녀들을 바라보는 걸 낙으로 삼았지만, 정작 미녀들이 눈 앞에 나타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이 뚫렸다. 여자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던 나였는데, 천둥이 우르릉쾅쾅 치던 날 갑자기 말이 술술 나오는 걸 깨닫고 기절할 듯이 놀랐다. 한참 말하다 시계를 보니 무려 세시간이 지나 있었다. 앞에 있는 여자는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다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너무 오랫동안 여자와 말도 못하고 살아온 난 그날 이후 다시 태어났다. 오직 미모만 밝히는 냉혹한 남자로. 미녀를 좋아하는 마태우스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