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 세상에, 제가 일주일간 글을 안썼네요. 쓸 건 많은데 시간이 넘 없네요. 흑. 물만두님 이벤트 페퍼도 써야 하는데... 19만8천까진 좀 남았으니 이해해 주세요, 네? 이건 제 스스로에게 15분을 주고 쓴 페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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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
컴퓨터를 하던 엄마가 우렁찬 목소리로 날 부른다.
엄마가 비밀번호를 까먹으셨단다.
“xxxx 넣었는데 왜 안돼?”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비밀번호는 바뀌었고
난 그걸 알려 드렸다.
“자, 됐지요? 원래대로 해드렸어요.”
그때 난 봤다.
읽은 편지함을 가득 메운 메일들을.
그 메일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고
보낸 이의 이름은 ‘Ever Green'이었다.
에버 그린. 늘 푸른?
난 그가 남자라고 단정지었다.
엄마 친구분 중에는 그렇게 세련된 아이디를 쓰실 분이 없었으니까.
드디어 엄마가 연애를 하시는 걸까?
나한테 내 인생이 있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엄마 인생이 있으며
미성년자도 아닌 엄마가 누구와 이메일을 주고받든지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건, 얼마 되지도 않는 우리집 재산에서 비롯된 불안이었다.
그 남자가 재산을 노리고 우리 엄마에게 접근한 건 아닐까?
안그래도 귀가 얇고 남을 잘 믿는,
그래서 자식들한테도 늘 당하기만 한 우리 엄마가 아닌가.
태어나서 한번도 남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한 적 없었지만
그 불안감은 나로 하여금 금기를 깨도록 만들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뒤-여기서 사건이라 함은 엄마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일을 말한다
난 엄마의 메일함으로 몰래 들어갔다.
이럴 수가.
메일은 모두 지워져 있었고
그 뒤에 온 한 개만 달랑 남아 있다.
무릎은 좀 어떠시냐, 자신은 친구 때문에 하루 종일 운전만 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빈다...
엄마는 과연 어떤 답장을 보냈을까 해서
보낸 편지함으로 들어가봤다.
보낸 편지함 역시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엄마가 이리도 치밀할 줄이야^^
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어서 최근에 보낸 한 개는 내가 읽을 수 있었다.
그 편지를 통해 난 그 남자의 이름이 경식씨(가명)란 걸 알았는데
다음 글귀가 눈에 띄었다.
“메일은 받는 즉시 바로 지우세요.”
오잉? 정말 사귀는 건가? 사건은 점차 흥미로워졌다.
그 뒤 엄마를 만날 때마다 짓는 내 미소엔
“난 다 알지롱”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지만 여전히 불안했던 난
어제 새벽, 다시 한 번 엄마의 메일함에 들어갔다.
“경식씨”란 제목이 달려 있는 그 메일을 보면서
난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엄마의 소녀같은 면을 발견했다.
“메일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참 반가웠어요.
...친구도 너무하다. 운전을 그렇게 시키다니.”
오옷, 엄마가 이런 귀여운 글을 쓰다니!
그래, 내겐 엄마지만 다른 남자한테는 이성일 수 있구나.
일분에 100타를 치시는 엄마가 독수리 타법으로 끙끙대며 쓰던 게
바로 이것들이었다.
메일을 보니 엄마가 경식씨한테 편지를 읽자마자 지우라고 한 건
경식씨가 가족들한테 들켜서 혼이 났기 때문이었고
“착하디 착한 경식씨 쫓겨나면 어떡해요”란 엄마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경식씨가 좋은 분이란 건 그분의 두 번째 메일을 읽어보니 알 수 있었다.
엄마도 나름의 판단력이 있고
내가 어렸을 때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인데
난 왜 쓸데없는 걱정을 했을까?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계신 경식씨는
지금 다른 나라에 사는 듯했다.
엄마는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고 표현했던데
그 나라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하다.
앞으로 난, 다신 엄마의 메일함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사실은 날 위한 거였지만-
엄마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다니,
난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