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우아한 멋이 있잖아.”

정운영 씨에 대해 내 지인이 한 말이다. 바로 그렇다.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S모 씨의 글처럼 요즘은 아무나 쓰는 게 신문칼럼이라지만, 정운영 선생의 칼럼엔 다른 글에선 찾아볼 수 없는 품위와 격조가 있었다. 스포츠신문 대신 한겨레신문을 읽기 시작한 서른살 때, 난 그분의 칼럼을 읽으면서 교양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곤 했다. 연재한 칼럼을 모은 책은 시의성이 떨어져 싱거운 설렁탕이 되기 십상이지만, 해박함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선생의 칼럼집은 맛난 샥스핀이었고, 싱싱한 생선회였고, <무등산>의 꽃등심이었다. <피사의 전망대>를 비롯해서 시중에 나온 선생의 칼럼집을 몽땅 읽은 건 당연한 수순.


경제학자였지만 선생의 붓끝은 정치와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종횡했고, 재미난 에피소드로 칼럼을 시작하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쳐, 따라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안봐도 그의 칼럼은 꼭 챙겨 읽었던지라 이 책에 나온 글들은 대부분 한번쯤 읽었던 거지만, 그의 글엔 다시 읽어도 그 맛이 떨어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 첫 번째 단락은 그가 읽은 책의 감상문을 모은 것인데, 이렇게 멋드러진 서평은 처음 읽는 것 같다. 내일부터 내가 갑자기 서평을 잘쓴다면 그건 정운영 선생의 스타일을 따라해서 그런 거라고 미리 말씀드린다.


선생은 탁월한 사회자이기도 했다.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던 2000년 즈음, 목요일마다 방송되는 <정운영의 100분 토론>은 내가 빼놓지 않고 본 유일한 프로였다. 기억나는 장면 하나. 선수협 파동 때 KBO 측 인사로 나온 이상일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선수협 자신은 노조가 아니라고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꼭 노좁니다. 버스를 탈취하고 주요인사를 납치하고 감금했고...”

사회를 보던 정운영 선생은 기가 막힌지 이렇게 묻는다.

“노조가 그런 일 하는 단체입니까?”


표지에 쓰인 ‘마지막 칼럼집’이란 글귀가 아쉬워 책날개에 적힌 선생의 이력을 들여다본다. “194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44년생이면 이제 겨우 62세, 평균수명이 70을 훨씬 넘는 시대인지라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그는 소문난 독서가였다고 하는데, 글과 말에서 보였던 그의 해박함과 격조는 상당부분 그 덕일 터, “취미에는 우열이 없으며 야동 역시 독서만큼 좋은 취미”라고 역설하긴 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야동도 좋은 취미이긴 하다. 하지만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독서를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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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12-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영의 100분 토론. 그런 프로가 언제 다시 방영될 수 있을런지.
좋은 리뷰 잘 보고 가요~^^

비로그인 2006-12-0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난 샥스핀이었고, 싱싱한 생선회였고, <무등산>의 꽃등심....그렇게 맛깔나나요?
한번 읽어볼게요.

프레이야 2006-12-0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선물로 받았어요.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멋스러운 사람, 멋스러운 글쓰기... 마태님의 리뷰도 앞으로 더 기대되어요. 정운영선생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글쓰기요~~ ^-^

로쟈 2006-12-0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밥은 오른손으로 먹는다, 일까요? 중앙일보에 몸담았던 정운영 선생에 대한 일부 비판들이 문득 떠오르는군요...

비로그인 2006-12-09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영선생은 언행은 물론 풍모에도 격조가 있으셨지요..


야클 2006-12-0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물어봤는데 야동이 좋은 취미라고 우기는 건 우리밖에 없나봐요.

그리고 참, 지난번에 구워주신 야동은 정말 실망이예요. -_-+   


가을산 2006-12-0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장! 또 리뷰 읽고 보관함에 넣었어요! 마태님 미워~~~ ㅡ,ㅡ

H 2006-12-0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니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짱꿀라 2006-12-0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잘 읽고 갑니다. 너무 리뷰를 잘 쓰셔서 감사합니다. 정운영 선생님을 그전부터 존경해 온지라 그분의 글을 즐겨읽곤 했는데 별세를 하셔서 그분의 글을 이제는 읽지 못한다는게 한편으로는 아쉽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정말 훌륭한 리뷰 읽고 갑니다.

마노아 2006-12-0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시는 분들마다 격찬이에요. 저도 꼭 읽고 싶어요^^

paviana 2006-12-0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등산의 꽃등심이라니...흑흑흑 먹고 싶어지잖아요...
아까운 분들은 너무 빨리 가세요...저도 이책 정말 잘 읽었어요.

moonnight 2006-12-0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볼래요. 그 분의 글을 생전에 몰랐던 제가 참 부끄럽고 안타깝네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

마법천자문 2006-12-0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 동영상 보는 것도 물론 좋은 취미지만, 축구 동영상 보는 게 낫다고 봅니다. 축구가 훨씬 재밌습니다. 축동을 보면서 책을 읽으면 저처럼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하핫.(뭐, 어차피 내 실체를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락방 2006-12-09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또 보관함에 넣어야 하잖아욧.
후훗 :)

춤추는인생. 2006-12-0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영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 토요일였어요.. 그날 오후에 제방으로 들어오던 저녁노을이 참 슬펐어요. 그날은 최종영 대법원장의 퇴임식 다음날이기도 했는데.
그날의 쓸쓸함을 전 잊을수가 없네요.. 돌아가시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분이라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6-12-10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야클님의 속삭임이 훤히 보이는.. 아무래도 저 초능력 생겼나봐요^^ 그나저나 왜 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걸까요? -_-

외로운 발바닥 2006-12-1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영 님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분의 글을 읽고 싶어지네요.
노조에 관한 언급과 야동에 관한 언급...정말 날카롭습니다.

하얀찐빵 2006-12-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취미 독서라..하하하..전 아직도 제 취미가 "독서"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잘 믿질 않아요....제가 우아하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이 책도 이 겨울 가기전 꼭 읽어봐야 겠어요. 늘 감사^^

마태우스 2006-12-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찐빵님/저야말로 감사드리죠^^ 찐빵님 이미지 우아하기만 한걸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죠
외로운발바닥님/그분이 물러난 뒤 100분 토론을 잘 안보게 되더군요. 제가 역시 좋아하는 분이 다음 사회자였는데 말이죠...해박함이 묻어나는 그런 사회였죠.
콸츠님/우아함은 자신이 느끼는 게 아니라 제3자가 느끼는 거라서 그렇습니다. 님은 제가 아는 젤 우아한 분이십니다
춤추는인생님/아, 님도 이분 좋아하셨군요. 행복한 분이셨군요 정운영 선생님은.
다락방님/저랑 취향이 틀리면 어쩌나 약간 걱정됨^^
체셔강아지님/비슷한 이름을 가진 고양이님이 계셨는데...^^ 그죠, 동영상은 야구보다 축구가 훨 재밌지요 언제함 축동 구워줘보세요^^
달밤님/전 달밤님이 절 미워하시는 게 안타깝습니다^^
파비님/무등산 꽃등심은 로또 되기전엔 못갑니다... 좀 비싸야죠...
마노아님/이분의 다른 칼럼집도 다 멋지답니다^^
산타님/호호, 훌륭한 리뷰라뇨. 부끄럽습니다. 님도 이분 좋아하시는군요^^
에고이스트님/와 님이 댓글 남겨주시니 영광인걸요. 서재 초창기 저 높은 곳에 계셨던....^^
가을산님/흑, 저는 가을산님도 좋아하고 그 때문에 B군까지 좋아하는데...
야클님/야동 보시는 눈이 보통이 아니시군요. 죄송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야동을 구워드리겠습니다
한사님/그 격조라는 걸 갖는 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겠지요^^
로쟈님/뭐, 저도 정운영 선생의 모든 점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예컨대 언론개혁입법에 관한 글은 관점이 다르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훨 많은 분이라서요...
배혜경님/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가 정운영 선생의 리뷰를 흉내내는 게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페이퍼식 리뷰로 밀고나갈 생각...^^
승연님/틀렸습니다. "한번 먹어볼께요"로 하셨어야죠^^ 무등산 가실 때 맘 단단히 먹고 가세요. 겁나 비싸요..
비연님/사회 그분만큼 잘보는 분이 없던데... 좋은 댓글 감사드려요



2006-12-12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