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근대 국가를 규정할 새로운 군주의 탄생 클래식 아고라 6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종법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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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모든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일견 비르투로 보이는 일을 행하는 것이 자기 파멸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기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P.123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초면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군주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읽은 지 오래지 않았음에도 키워드 몇 개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는 것과 꾸준히 읽고 있는 클래식 아고라 시리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책은 토스카나어 판본을 번역한 것인데, 저자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를 전공한 학자다. 그런 그가 왜 군주론을 번역하게 된 것일까? 그람시를 연구하다 보니 이탈리아 역사와 정치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탈리아 정치사상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까지 연결이 된 것이다. 우연이라면 특이한 우연일 수 있겠지만, 덕분에 원전의 의미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군주론을 두 번째 읽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의 체계가 잡히는 것 같다. 처음에 읽을 때는 왜 이리 TMI가 많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마키아벨리가 선생님이었다면(그는 의외로 저명한 학자나 정치가가 아닌 공무원 출신이다.), 아마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꼼꼼히 설명해 주는 것으로 인기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군주론 하면 떠올리는 선입견 중 하나가 난폭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물론 실제로는 안 그렇지만) 하면 친절하고, 따뜻하고, 소위 덕을 펼치는 성군을 떠올리는데, 군주론 속 지도자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 역시 그랬다. 근데, 이번에 읽다 보니 군주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 물론 군주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고, 따스하고 자비로운 사람이면 좋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오히려 따스한 내면만 강조하다가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어떨까? 차라리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유부단하지 않기에 국민을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여기는 군주는 결국 권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악덕을 행하는 군주가 제대로 된 군주다. 인색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군주는 어떤가? 이 역시 앞의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펑펑 낭비하여 민생을 망치는 군주보다는 인색한 군주가 낫다. 어떤 면에서 자국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군주는 신의가 없다는 평가는 받을지언정, 자신의 국민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단편적인 몇몇 단어들만 보자면 군주론 속의 군주는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리더는 겉모습만 그럴 듯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최고로 치는 군주는 적당한 융통성을 지니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아는 실리를 추구할 줄 아는 군주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군주론 뒷부분에는 해설이 담겨있는데, 마키아벨리의 삶과 그가 군주론을 헌정한 메디치 가문 등 배경지식을 먼저 알고 책을 읽으면 좀 더 깊이 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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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즐기는 숨은 그림 찾기 - 숨은 그림 찾기, 다른 그림 찾기, 미로 찾기, 점 잇기
베이직콘텐츠랩 지음 / 베이직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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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터울이 있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놀이를 하는 게 쉽지 않다. 큰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면 작은 아이가 따라오기 힘들어하고, 작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면 큰아이는 시시해한다. 우연히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둘 다 너무 재미있어했다.(물론 큰 아이에 비해 작은 아이가 월등히 늦긴 했지만 그럼에도 큰아이가 기다려줬고 작은 아이는 그런 언니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았다.) 그날 이후로 한 번씩 시간을 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한다.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는 작은 아이는 전보다 좀 더 빠르게 숨은 그림을 찾을 수 있고, 큰 아이는 그런 동생을 보면서 놀란다. 덕분에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읽히는 책은 단연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참 작은 것에 흥미를 느끼지만, 그만큼 빨리 싫증도 느끼는 것 같다. 책 한 권으로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 한 권에 숨은 그림 찾기를 비롯하여 줄긋기, 미로 찾기, 다른 그림 찾기까지 할 수 있다. 물론 그냥 빨리 찾는 것에만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여러 장면을 마주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가 다양하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가령 동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몇 달 전 사촌 동생 가족과 함께 갔던 동물원을 떠올리고,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친구들과 했던 놀이나 배웠던 부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도 한다. 아이와 공감대를 가지고 말을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은데, 함께 숨은 그림찾기나 다양한 놀이를 하다보면 공통의 관심사나 마주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그런 면에서도 만족스럽다.

 

 또 하나는 줄긋기를 통해 큰 아이는 숫자 공부를 하고, 작은 아이는 언니가 그린 그림을 맞추고 끼적이며 색칠을 한다. 놀이 안에도 나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분업(?)이 되는 현장을 마주하기도 했다. 사실 워킹맘인지라 집안일할 시간을 벌기 위해 매체를 종종 이용하다 보니 핸드폰이나 티브이에 노출이 많이 되는데, 그런 면에서 걱정이 많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시간을 정해놓고 숨은 그림 찾기나 다른 그림 찾기, 미로 찾기를 미션으로 제시해 보는 것은 어떨까? 키즈카페를 가는 것도 좋지만, 장마철 비 오는 날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 좋은 놀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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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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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다가 인간의 창조에 대한 내용을 보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내려온다. 신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각가지 동물을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든 인간.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동물들을 만드는 데 재료를 전부 사용하게 되어서,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로 만들어진다. 그렇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발로 우뚝 서는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어미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일한 존재다. 자기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1년여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양육을 해야 겨우 제 발로 한 걸을 뗄 수 있다. 물론 자력으로 생존을 하기까지는 또한 십수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인간을 다각도로 관찰하며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을 풀어낸다. 시작은 다른 종에 비해 연약한 하드웨어를 가진 인간이 그에 대적할 만한 능력으로 가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얼마 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협력의 유전자에 대한 내용이 등장해서 더 반가웠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불리함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바로 서로 협력하고 돕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에 비해 양육과 독립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특히 아이를 낳고 먹이는 엄마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상당한 체력과 음식을 요구받는다. 그때 엄마와 아기를 돕는 가족들의 손길 때문에 아기도, 엄마도 스스로의 힘으로 공급받지 못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다. 또한 그로 인해 엄마는 또 출산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인간 종은 협력의 사회 안에서 부족함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이어진 계보와 각종 바이러스에 의해 옮겨지는 병, 유전을 통해 전해지는 왕가의 혈우병을 비롯하여 괴혈병 등에 대한 이야기도 코딩 오류라는 제목으로 담겨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여럿 있지만 하나만 꼽자면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인지 편향에 대한 부분인데, 예로 콜럼버스가 등장한다. 그가 찾은 신대륙을 끝까지 아시아라고 믿었던 그는 아시아 언어를 구사하는 통역사들의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발달한 문명을 지녔다는 사람들이 나체로 돌아다녀도, 후추와 각종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없음에도 끝까지 자신은 아시아를 찾았다고 믿었다. 사실 우리도 그러지 않은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다른 여러 아닌 이유가 드러남에도 끝까지 고수하는 것.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나쁘게 말하면 똥고집이라 할 수 있다. 인지 편향뿐 아니라 현재 편향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때론 눈앞에 편리함을 위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 앞에 놓인 기후 위기가 그중 하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인간에 관한 내용이 접목되어 있다. 생물학 뿐 아니라 역사학, 질병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에 대해 논한다. 덕분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를 마주할 수 있다. 다양한 예와 좀 더 흥미롭고 읽기 쉽게 서술되어 있는 문체 덕분에 한결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인간이 선택한 것들은 때론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흥미롭고 신선한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생각할 여지도 많이 던져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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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나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 쇼펜하우어의 인생에 대한 조언(1851) 라이즈 포 라이프 2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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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희망을 통찰로 바꾸는 것에 만족해한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쇼펜하우어. 물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요즘 들어 그의 이름이 담긴 책들이 속속 눈에 띈다. 왜일까? 왜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왜 그의 철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우선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Counsles and Maxims"의 원문을 옮긴 책이다. 역자는 쇼펜하우어 붐이 반갑기는 하지만, 시중에 자주 보이는 책들의 상당수는 저자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개인이 해석했기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쇼펜하우어 철학의 원액 그대로를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부러 각주도 싣지 않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받았던 느낌을 적어보자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장밋빛 미래나, 애써 긍정적인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은 고통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행복은 얻기 무척 어려운 것이기에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깝게 보인다.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 현실은 고통이고 행복은 멀리 있으니 굳이 그것을 찾아 헤매기 보다 그저 현실을 인정하라고 주문한다. 그렇기에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바다.

현재 만이 진실이자 실재이고, 실제적인 시간이며,

오로지 현재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있다.

더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유롭기를 주문한다. 고독을 즐겨라.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또 고통이 시작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젊은 시절에는 실수도 잦고, 생각도 짧지만 많은 경험을 통해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되면 진정한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공자가 떠올랐다. 공자 역시 불혹(40세), 지천명(50세), 이순(60세) 등 나이 들어감에 따른 원숙을 이야기했는데 쇼펜하우어 역시 나이 듦이 주는 긍정적인 삶을 언급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왜 요즘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각광을 받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팍팍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런 현대인에게 쇼펜하우어는 왜 굳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전부라 생각하고 사는 삶. 욜로를 추구하고, 가심비를 찾는 현대인에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위로 아닌 위로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현재 만이 진실이자 실재이고, 실제적인 시간이며,

오로지 현재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있다.

탁월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희망을 통찰로 바꾸는 것에 만족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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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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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나....!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간다. 우선 다행이라는 것과, 그동안의 시간 동안 혼자 마음고생을 한 캐시가 너무 안타깝기도 했고, 배신감.... 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캐시는 남편 매튜에게 전화를 한다. 매튜가 편두통이 심해 누워있다는 말에 캐시는 지름길인 블랙워터 길 숲을 통과해서 가겠다고 하지만, 매튜는 위험한 숲길로 운전하는 것을 만류한다. 하지만 비바람까지 일자 캐시는 조금이라도 집에 빨리 도착하고자 블랙워터로 들어선다. 집 가까이 왔을 때 반대편에 서 있는 자동차를 마주한다. 좁을 갓길에 비딱하게 서있는데다, 어두운 길에서 비상등조차 켜지 않고 서 있는 운전자를 째려보는 캐시. 차 안에는 여자가 타고 있었다. 혹시 고장이 난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비도 많이 오고 귀찮기도 해서 캐시는 그냥 그 자리를 지나친다.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고 캐시는 경악한다. 자신이 지난밤 지나온 블랙워터에서 한 여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캐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서 있는 그 차로 다가가서 여자의 상태를 확인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친구 수지의 40번째 생일파티가 열리기로 한 날. 절친인 레이첼 바레토로 부터 피해자가 제인 월터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제인은 수지와 레이첼과 핀츨레이커스라는 회사에 같이 근무하는 동료였다. 문제는, 제인이 얼마 전 사귄 캐시의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레이첼 회사 파티에 초대된 캐시는 우연히 제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번호를 주고받은 둘은 얼마 후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 오랜만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캐시는 제인과의 다음 만남을 기다렸는데, 제인이 피해자라니... 캐시의 죄책감은 더욱 커져간다.

한편, 제인은 얼마 전부터 자신의 기억력이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철과 함께 수지의 생일선물로 사기로 했던 물건은 물론, 매튜의 출장 이야기도 까먹는다. 앤디와 한나 부부와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한 약속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제인의 엄마는 젊은 나이에 치매 판정을 받고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제인 역시 그런 엄마를 봤기에, 혹시 유전적으로 자신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그런 와중에 제인 사건의 장소에서 캐시의 집이 5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 얼마 전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는 것 등은 캐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고, 닫은 창문이 열려있는 것 등 석연치 않은 불안함 속에 매튜마저 며칠 일정으로 출장을 가자 캐시는 극로도 불안해져서 결국 호텔로 향한다. 그날은 레이철과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는데, 그조차도 깜박했다는 사실에 캐시는 더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매튜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보안 업체와 계약을 하고 설치하기로 한 날 집을 비웠다는 사실을 듣고 경악한다. 분명 남편과 상의하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말이다. 문제는 계약서에 캐시의 필체와 동일한 사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 점점 불안을 느끼는 캐시는 약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간다. 그러던 중, 캐시의 집 창고에서 제인이 살해되었던 칼과 동일한 칼이 발견되는데...

집안 내력도 있고, 벌어지는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캐시를 보고 솔직히 모든 상황들이 의심스러웠다. 블랙워터 길에서 벌어진 제인 사건조차 과연 캐시의 기억이 제대로 된 것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거기다가 제인이 살해되기 전, 캐시가 그 길을 지났다는 사실을 범인을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상황이 캐시의 눈을 통해 여러 정황들을 통해 보이면서 의심을 넘어 불안감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마지막을 앞두고 팽팽하게 당겨졌던 서사가 확 풀려나간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물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큰 반전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 또한 책을 읽으며 캐시와 동일한 감정을 품었던 독자들에게 캐시만큼이나 큰 상처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캐시가 제인의 차로 다가갔다면 이야기를 달라졌을까? 물론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배신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지만,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설령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또 벌어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가족과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스라이팅의 무서움이,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이 한 사람을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지 읽고 나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브레이크 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리커버 작품으로, 제목만 브레이크 다운에서 블랙 워터 레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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