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독일 프로이센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5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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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프리드리히는 이 전투의 회상록을 썼는데

"몰비츠는 나의 학교였다. 내 과오에 대한 철저한 고찰이 후에 도움이 됐다"라고 토로했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미카타가하라에서 다케다 신겐이 이끄는 군에 참패한 직후

화공을 불러 초췌한 몰골을 가감 없이 그리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경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있었기에,

정치라는 난해한 키잡이를 오랫동안 능숙하게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명화로 읽는 역사 시리즈의 대망의 마지막 왕조는 바로 독일 프로이센 왕조다. 프로이센 하면 익숙한데, 사실 이 왕조는 타 국과 달리 한 가문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렇기에 왕가의 성을 붙여도 되지만, 워낙 낯선 이름 덕에 저자는 프로이센이라는 왕조 명을 대신 붙였다고 한다. 왕가의 성은 호엔촐레른가다. (역시 낯설다.) 독일 남서부 슈바벤지방의 호족이었던 호엔촐레른가는 호엔촐레른산 정상에 성을 세우며 가명을 바꾼다. 과거 독일은 300개나 되는 중소 주권국가(연방)였는데, 19세기에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고 그 통합을 이룬 왕가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프로이센 왕조 호엔촐레른가다.

이번에도 상당히 비슷한 이름의 왕이 많기 때문에, 왕 이름 옆에 별명이 담겨있었다. 가령 초대 왕인 프리드리히 1세의 경우 구부러진 프리츠라는 별명으로, 가장 유명한 3대 프리드리히 2세의 경우 대왕이라는 별명으로, 5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부정사왕으로 유명하다. 5권의 시리즈 중 3권(영국, 러시아, 독일)을 읽었는데 이번 편의 인물들이 가장 무난하게 느껴졌다. 친척과의 혼인으로 왕가의 후손 자체가 없어서 왕조가 끊길 가봐 전전긍긍하지도 않았고(물론 프리드리히 대왕의 경우는 성적 취향 때문에 후손이 없어 동생이 이어가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타 국의 왕조에서 보인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벌이는 각종 계략들이 난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각 왕들의 특징도 무난해서 눈에 확 띄는 바가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자면 대왕으로 불리는 3대 왕 프리드리히 대왕과 총리인 비스마르크가 더 유명했던 빌헬름 1세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독일의 왕 중에 가장 존경을 받는 왕을 꼽자면 단연 프리드리히 대왕일 것이다. 다양한 인구 포용책으로 왕국을 든든하게 세우는 것뿐 아니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반면, 여러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국가를 튼튼하게 이룩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남성을 좋아했던 성적 취향 덕분에 정략결혼을 한 왕비를 본 척 만척했던지라 평생 쇼윈도 부부로 살았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덕분에 자손이 없었다. 그런 왕의 성적 취향을 알았던 터라 왕조는 일찌감치 그의 후계자로 동생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내정된다. 그런 프리드리히 대왕의 정치 모토는 "군주는 국가 제일의 심부름꾼이다."였다. 현대의 위정자들 역시 꼭 필요한 신조가 아닐까 싶다.

왕이 아님에도 한 장을 할애한 인물은 빌헬름 1세 때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다. 왕과 함께 독일통일을 이룬 총리이자 타국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보했기에 철의 재상으로도 불린다. 당연히 둘이서 이룩한 큰 결과 때문에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는 사이가 참 좋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의외로 둘은 참 반대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그럼에도 독일을 통일할 수 있었다니! 역시 마음이 맞는 것보다 능력 있는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눈이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프리드리히 1세부터 이어진 프로이센 왕가는 제2 제국의 빌헬름 2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총 9명의 왕을 통해 마주한 독일 왕가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리더의 자질과 판단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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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0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엔촐레른 가문이 되게 오래된
집안인 줄 알았는데 꼴랑 9대
정도 밖에 안되었나 보네요 ^^
아, 가명을 바꾸었나요 -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랑 그
렇게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제국의 통일이라는 공통의 목표
를 위해 매진했다는 점이 인상
적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보수 꼴통이긴
했어도, 노동자 농민들을 달래
기 위해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