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초면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군주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읽은 지 오래지 않았음에도 키워드 몇 개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는 것과 꾸준히 읽고 있는 클래식 아고라 시리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책은 토스카나어 판본을 번역한 것인데, 저자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를 전공한 학자다. 그런 그가 왜 군주론을 번역하게 된 것일까? 그람시를 연구하다 보니 이탈리아 역사와 정치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탈리아 정치사상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까지 연결이 된 것이다. 우연이라면 특이한 우연일 수 있겠지만, 덕분에 원전의 의미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군주론을 두 번째 읽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의 체계가 잡히는 것 같다. 처음에 읽을 때는 왜 이리 TMI가 많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마키아벨리가 선생님이었다면(그는 의외로 저명한 학자나 정치가가 아닌 공무원 출신이다.), 아마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꼼꼼히 설명해 주는 것으로 인기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군주론 하면 떠올리는 선입견 중 하나가 난폭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물론 실제로는 안 그렇지만) 하면 친절하고, 따뜻하고, 소위 덕을 펼치는 성군을 떠올리는데, 군주론 속 지도자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 역시 그랬다. 근데, 이번에 읽다 보니 군주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 물론 군주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고, 따스하고 자비로운 사람이면 좋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오히려 따스한 내면만 강조하다가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어떨까? 차라리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유부단하지 않기에 국민을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여기는 군주는 결국 권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악덕을 행하는 군주가 제대로 된 군주다. 인색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군주는 어떤가? 이 역시 앞의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펑펑 낭비하여 민생을 망치는 군주보다는 인색한 군주가 낫다. 어떤 면에서 자국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군주는 신의가 없다는 평가는 받을지언정, 자신의 국민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단편적인 몇몇 단어들만 보자면 군주론 속의 군주는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리더는 겉모습만 그럴 듯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최고로 치는 군주는 적당한 융통성을 지니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아는 실리를 추구할 줄 아는 군주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군주론 뒷부분에는 해설이 담겨있는데, 마키아벨리의 삶과 그가 군주론을 헌정한 메디치 가문 등 배경지식을 먼저 알고 책을 읽으면 좀 더 깊이 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