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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2
R. F. 쿠앙 지음, 이재경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왕립번역원의 4인방은 러벌 교수와 함께 배를 타고 광둥으로 향한다. 로빈은 엄마를 두고 영국으로 떠나온 지, 10년 만이다. 다시는 광둥을 못 밟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그때는 빨리 왔다. 오랜 시간을 멀미와 싸우며 영국으로 갔던 기억과 달리 쾌속선을 타니 시간이 줄어 6주 안에 영국에서 광둥에 도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 시간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백인인 레티를 제외하고 로빈, 라미, 빅투아르는 모두 헤르메스 협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미 3년 동안 이복형 그리핀을 통해 헤르메스 협회와 연결되어 있던 로빈은 절친 라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만큼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비밀이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서로 모르게 협회와 각자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오히려 러벌 교수와 레티의 눈치를 더 살피게 되어서 서로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만약 헤르메스 협회와 연결된 것이 로빈 뿐 아니라 빅투아르와 라미였다는 사실을 러벌 교수와 바벨이 알았다면 아미 이들은 같이 배를 탈 수 없었을 것이다. 로빈은 그만큼 대단한 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함이 크다.

배가 중국 광둥에 도착하고, 로빈에게 대단한 임무가 주어진다. 영국의 자딘 매서슨 상회의 베일리스와 중국 광둥의 최고 권위자인 흠차대신과의 접견에서 로빈이 통역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귀츨라프 목사나 러벌 교수 등 통역을 오래 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로빈에게 이 일이 주어진 이유는,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베일리스와 흠차대신의 접견이 이루어진다. 베일리스는 깔보는 듯한 억양과 단어를 쓰며 중국이 압수한 영국의 아편을 돌려주고, 다시 제대로 된 거래를 하기를 독촉한다. 차마 베일리스의 말투와 단어 그대로 옮길 수 없었던 로빈은 진땀을 흘린다. 중국으로부터 이권을 빼앗기 위한 아편의 수출하면서 마치 아편을 가장 아전하고 품격 있는 제품으로 포장하는 베일리스의 말은 정말 어이없기만 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흠차대신은 그에 대해 강하게 아편 수출을 거부한다. 흠차대신과 단독으로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진 로빈. 한편으로 로빈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흠차대신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대화를 마친 후 갑자기 불길을 치솟는다. 영국 상선이 가지고 온 아편을 흠차대신이 태웠던 것이다. 이 일로 러벌 교수와 베일리스는 로빈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아편 수출은 계속되고, 이미 아편에 중독이 된 중국인들은 아편 거래를 막지 못한다. 흠차대신과의 일 때문에 급하게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배 안에서, 로빈은 로벌 교수가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진심을 알게 되는 로빈과 친구들은 결국 자신들이 꿈꾸었던 번역가가 아닌 영국에 맞서 고통받는 나라들을 구하기 위한 헤르메스 협회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기로 마음을 먹고 실행하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긴 작품이지만, 순식간에 빨려 들어서 읽게 된 바벨. 은 막대와 얽힌 판타지 요소가 비현실을 자극하지만, 그럼에도 환상 속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걸리는 내용이 너무 많다. 중국을 위해 휴고상 수상에서 제외했다는 이야기가 참 말도 안 된다 싶다. 그러기에 중국보다는 영국의 흑역사와 제3국에 끼친 피해가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깨어있는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념을 지켜내는 이들의 모습에 먹먹해졌다. 1권에 등장한 번역에 대한 수업 시간에 이야기했던 내용이 다시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단지 문장대 문장으로 단편적으로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의 이야기와 현실을 바라보며 편견 없이 있는 그래도 번역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번역의 의미라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