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집사
배영준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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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사우디는 알겠는데, 집사가 고양이 집사에서 그 집사를 의미하는 것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같은 가상의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있다. 프랑스의 집사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피터. 수석 졸업자에게는 특혜가 하나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3곳 모두 쟁쟁했지만, 피터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집사를 선택한다. 그렇게 도착한 왕실에서 전직 집사인 압둘 집사를 만나게 된 피터. 30년간 왕실의 집사로 일한 압둘의 후임 자리를 위해 2년 전부터 공을 들였고, 특히 피터를 눈여겨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피터는 반살림 왕에 앞서 그레이스 왕비와 자밀라 공주를 만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레이스 왕비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있던 행사에 갑작스럽게 사우디 통역 자리가 펑크 났고, 긴급 투입되었던 인연으로 당시, 반살림왕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 23년 전이었다. 사실 자밀라 공주는 이미 프랑스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사우디 왕실의 하나뿐인 공주라는 사실은 집사가 된 후 알게 되었다. 같은 한국인이기에 서로 간의 통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레이스 왕비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왕비의 이야기에 앞서 살바토르 문디라는 그림이 5천억 넘는 가격에 개인에게 판매되었는데, 그 그림의 소유주가 사우디 왕실의 왕이라고 하는 사실을 듣게 된 피터. 사실 살바토르 문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인데, 제임스 쿡의 가문에서 관리를 했었다고 한다. 그 그림이 가진 기묘한 힘이 피터를 사우디 왕실로 이끌고 온 것이다.

23년 전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 왕비가 반살림왕과 결혼을 하게 된 것. 11년 전 서열 4위였던 반살림왕이 만장일치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 모두 살바토르 문디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살바토르 문디의 일기장에 그림에 대한 특별한 힘의 비밀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임스 쿡의 삼촌인 쿡 신부가 보관 중이지만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거부를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피터는 일기장을 가지고 오라는 명을 받고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게 된 자밀라 공주, 자밀라 공주의 경호원인 한국계 미국인 러블리 수와 함께 파리로 떠나게 된다.

러블리 수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가 전직 CIA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터. 그녀는 사망한 줄로 알았던 피터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이 아니라, 실종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랜만에 찾은 집사 학교에서 스테반 교수를 다시 만나게 된 피터. 쿡 신부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고 싶었지만, 시간만 흐르는 터라 결국 피터는 직접 쿡 신부를 찾아 생드니 대성당을 찾는다. 쿡 신부를 만난 피터에게 쿡 신부는 드디어 일기장의 주인을 만났다며, 일기장을 건네는데...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다빈치 코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생겨서 몇 가지를 알아봤는데, 프랑스는 아니지만 실제 집사 학교(네덜란드 버틀러 스쿨)가 있다는 사실과 책 속에 상당히 자주 언급되는 살바토르 문디라는 그림이 실제 2017년 5천억 가까이에 개인에게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실제 소유주가 사우디 왕자라고 한다.) 낯선 문화와 미술의 만남, 그리고 판타지와 추리적 요소까지 적절히 가미되어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2편도 구상 중이라고 하니, 빠른 시간 내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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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 공부 - 나의 말과 글이 특별해지는
신효원 지음 / 책장속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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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타인의 글을 읽다가 놀랄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어휘 때문이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이어도, 유독 특별하고 소위 고급스러워 보이는 어휘를 사용하는 글을 접할 때면 읽으면서도 놀랍고 부럽기도 하다. 물론 같은 뜻이라면 접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글도 좋긴 하겠지만, 뜻이 더 통하는(그 뜻에 가까운) 단어를 정확히 사용하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 더 좋지 않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 중에는 뜻을 알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사용을 잘 안 하는 어휘들이 곧잘 등장한다. 마치 사전처럼 주된 뜻 중 많이 사용하는 어휘 하나가 ㄱ에서 ㅎ까지 차례대로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마무리하다는 뜻을 지닌 어휘들은 "매조지다", "타결하다", 매듭짓다" "완결하다", "끝마무리하다", "마무르다"가 있는데, 각 단어의 뜻과 함께 실례인 문장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6개의 단어 모두 "마무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유의어지만, 실제 단어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바로 그 미묘한 차이를 통해 정확한 어휘를 선택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가령 "매조지다"라는 단어의 경우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어휘를 사용한 예시를 보자면, "9회 말 김 선수가 나와 경기를 매조졌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물론 경기를 "마무리하다"나 "끝냈다"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좋지만, 매조졌다는 단어를 사용하면 "끝냈다"라는 의미에 "제대로 단속해서 마무리했다"라는 의미가 더해지기에 소위 좀 더 분명하고 진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막상 등장하는 어휘들의 경우 낯선 단어와 기존에 알고 있는 단어의 퍼센트가 20: 80 정도 되는 것 같다. 위에 마무리하다에도 6개 중 4개는 의미를 정확히 알았고, 1개는 들으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고, 1개는 낯선 단어였다. 물론 같은 상황에서 알고 있는 4개의 단어를 정확히 사용할 수 있었을까? 글쎄... 아무래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만 사용할 경향이 더 있지 않았을까?

단어 역시 많이 사용해야 느는 것 같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단어들의 경우 손쉽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지만, 의미를 정확히 알 지 못하는 단어들의 경우는 쉽게 튀어나오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가끔 글을 쓰다 보면 머리에는 맴돌지만 막상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비슷한 단어를 검색창에 검색하거나, 풀어쓴 뜻을 검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단어를 찾게 되면, 앓던 이가 빠지는 것처럼 속 시원하지만, 반대의 경우 찝찝함을 금할 수 없다.

재즈나 코드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때, 유독 신기하고 특이한 코드를 연주하는 경우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같은 음악이라도 한층 깊이 있는 음악으로 기억에 남는데, 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단어 하나로도 대화가 윤택하고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었다. 당분간 곁에 두고 자주 읽어봐야겠다. 덕분에 그동안 빈곤했던 내 글의 어휘가 한결 풍부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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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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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라진 남편. 근데, 그가 내가 알던 사람과 다르다면...?

해나 홀은 유명한 선반공이자, 결혼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여성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기술을 토대로 그녀는 선반공이 되었고, 우연찮게 그녀가 만든 작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는 핫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단골 고객 중 하나인 벨 톰프슨의 남편인 아베트 톰프슨과 함께 그녀의 작업실을 찾아온 남자 오언 마이클스를 만나게 된 그녀는 첫눈에 그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당시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2년간의 연애 후 그녀는 오언과 결혼하게 된다. 오언에게는 16살 된 딸 베일리 마이클스가 있었다. 사실 베일리와의 관계는 어렵다. 노력 중이지만, 베일리의 태도에서는 왠지 못마땅함이 가득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를 통해 노란색 쪽지가 전해진다. 남편 오언이 보낸 쪽지라고 했다. 쪽지에 내용은 단 한 줄.

당신이 보호해 줘.

남편에게 전화를 걸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 딸인 베일리는 데리러 가던 중, 뉴스에서 남편 회사에 대한 소식을 접한다. 그가 근무하는 더 숍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대표인 아베트 톰프슨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베일리가 들고 나온 가방 안에서는 6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이 담겨있었다. 오언이 베일리에게 편지와 함께 남긴 돈이었다. 그날 이후 오언을 찾는 연방수사국의 수사관들이 해나를 찾아온다.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게 되는 해나. 수사관이라는 사람이 남긴 전화번호를 토대로 오스틴이라는 지역을 찾아낸 해나. 결혼 전 유달리 오스틴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했던 오언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어린 시절 베일리의 기억 또한 오스틴을 향하고 있다. 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해나는 베일리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오스틴으로 떠나게 되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해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페이지터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좋은 소설이다. 특히 해나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해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책을 읽게 된다. 부부의 이야기는 부부만이 안다고 하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부재는 아내에게 여러 가지 의미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책 속 해나는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차분했다. 나라면 글쎄...멘붕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자극적인 것이라고는 갑자기 연락한 줄 없이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진 남편 정도 일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긴장하며 읽을 만큼 흥미롭다. 과연 오언은 해나에게 무엇을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해나가 남편을 찾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베일을 벗는 그와 베일리의 존재가 드러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는 것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 기억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말을 통해 구성된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또 다른 형태로 연결된다. 부성애와 모성애. 두 사랑을 책을 통해 직접 목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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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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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아기는 자신의 삶이 시작될 거란 걸

알지 못했을 것이고,

할머니 역시 지금이 자신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란 걸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생사는 인간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는 법이었다.

반면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간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의지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게 인간의 삶이었다.

책 속에 담긴 전래동화가 한 편 있다. 선녀와 나무꾼. 선녀가 잃어버린 것은 날개옷인데, 책 속의 신의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천명대 의대 강해수는 응급실 의사다. 그에게는 언제부턴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심정지 환자에게 PCR(심폐소생술)을 하면 환자의 과거가 보인다. 문제는 환자의 과거를 보는 시간 동안 자신의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환자에 따라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에 해수는 의사를 그만둬야 하나를 깊이 고민한다.

한연화는 고아다. 엄마는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였다고 한다. 그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연화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남하도 앞바다의 크루즈를 타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아빠는 물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연화는 홀로 남겨졌다. 그날 남하도 앞바다 크루즈는 큰불이 나서 3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났다. 문제는, 연화의 가족은 그 배의 승선인원 명단에 없었고, 연화 역시 생존자지만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고 후 삼촌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된 연화는 19살 도망친다. 의대에 진학한 연화는 응급실에서 해수를 만난다.

중학교 졸업식날 아버지를 잃은 신재하는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천명대 의대로 온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재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자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연화와 오랜 인연이 있는 재하. 재하의 지인의 지인이라고 소개받은 해인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던 연화는 해인의 전시회 소식을 듣는다. 재하와 함께 가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병원 호출에 재하만 해인의 전시회를 찾고, 그곳에서 한 소년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그림에 끌린다. 해인과 재하는 첫 만남에 서로를 향한 호감을 느낀다. 해인이 준 그림을 가지고 가는 재하. 그렇게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어느 날 해수는 한 스님을 만난다. 스님은 그에게 신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저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의 물건을 돌려줘야 한다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긴다. 연화 역시 스님을 만난다. 엄마가 있는 곳을 돌아가야 한다고... 엄마와 같은 방법으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연화.

스님은 연화와 해수에게 방해자가 활동을 시작했으니 늦지 않게 행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과연 방해자는 누구일까?

해수가 보는 과거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하도 앞바다 크루즈 사고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해수가 과거를 볼 수 있다면, 연화는 미래를 볼 수 있다. 몇 달 후, 몇 주 후 일어날 일을 예지몽으로 꾼다. 문제는,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지인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끔찍하고 슬픈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참 질긴 인연이 등장한다. 연화와 해수. 해인과 재하.

한순간의 일탈로 끔찍한 사건을 만들어낸 해수. 오로지 아들만 살리기 위해 수백 명의 목숨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 아버지의 죄과를 알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해인. 중학교 졸업식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재하. 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자살을 선택한 선생님. 선녀인 엄마와 이무기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축복받아야 할 생일에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고 엄마의 반지까지 빼앗긴 연화.

악연이라면 악연이 책 속에 하나 둘 등장하며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모든 죄의 시작은 해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실수로 이 모든 사건들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신의 물건을 탐해서 생긴 저주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실수로 수백 명의 사람을 바다에 생매장했다는 사실 또한 저주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편, 주인공 대부분이 의사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며 해수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인종, 종교, 국정, 정당 당파,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해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근데 해수처럼 환자의 과거를 알게 되면 어떨까? 내가 살리려는 사람이 연쇄살인마라면,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킨 사람이라면, 아이를 무참히 성폭행한 성폭행범이라면... 그래도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키며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오로지 환자만을 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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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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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피하는 분야가 있다면 단연 시다. 시는 글 중에서 가장 간결하지만, 가장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단순하게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산문보다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마치 묵은 숙제를 해결하듯이 한 해의 한 권 이상의 시집을 읽고 있다는 것과 시 뒤에 붙은 "역사"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시의 역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 속에는 모든 시의 역사라기보다는 (영미권 혹은 서양)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었다고 볼 법하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시(인)도 등장하긴 하지만, 책의 상당수는 영국과 미국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인류에 등장한(기록으로 현존하는) 첫 시는 과연 무엇일까? 기원전 20세기 경에 등장한 길가메시 서사 시라고 한다.(다행히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어봤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사실과 함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시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등장하는데, 실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세계사를 통해 익히 들었던 터라 신화와 연관된 서사시는 흥미를 자아냈다.

그 밖에도 방대한 내용만큼이나 종교적 색채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과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나 존 밀턴의 실낙원이나 되찾은 낙원 등의 시도 만날 수 있다.

시의 역사를 보면 14세기 이후의 다양한 사조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시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띄는 시기(17세기)를 넘어서면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상징주의 등의 사조가 등장한다. 특이점이라면 여성 시인들의 활약기도 책 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류시인들 역시 자신만의 색채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와 시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존 밀턴처럼 종교적 색채를 띤 시인의 다음 시기에 등장한 시인들은 정 반대적인(성적 욕망과 성적 희열에 집중하는) 색채를 가진 시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번역가의 말처럼, 시는 타 언어로 번역하기 참 힘든 장르인 것 같다. 모국어로 쓰인 시조차 이해가 어려운데, 타 문화와 시 속의 분위기 등을 우리 말로 옮기는 게 과연 얼마나 힘들까? 사실 우리나라의 많은 주옥같은 시들이 외국어로 번역이 힘든 것 또한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의 역사를 통해 시의 변화와 방향성을 맛볼 수 있었고, 시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나이기에, 이 책이 아니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보지 않을법한 시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인간사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시의 주제는 죽음과 사랑이 대부분인 걸 보면 말이다. 시 중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시어 속에 숨겨서, 혹은 대놓고 희로애락을 드러내며 쓰인 시도 있다. 시 안에는 시인의 삶과 생각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역시 어찌 보면 자신만의 관점에서 시를 평가하기도 한다.

시가 낯설고 어렵다면, 우선 시의 개관이라 할 수 있는 시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사조와 시를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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