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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평점 :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아기는 자신의 삶이 시작될 거란 걸
알지 못했을 것이고,
할머니 역시 지금이 자신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란 걸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생사는 인간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는 법이었다.
반면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간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의지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게 인간의 삶이었다.
책 속에 담긴 전래동화가 한 편 있다. 선녀와 나무꾼. 선녀가 잃어버린 것은 날개옷인데, 책 속의 신의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천명대 의대 강해수는 응급실 의사다. 그에게는 언제부턴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심정지 환자에게 PCR(심폐소생술)을 하면 환자의 과거가 보인다. 문제는 환자의 과거를 보는 시간 동안 자신의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환자에 따라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에 해수는 의사를 그만둬야 하나를 깊이 고민한다.
한연화는 고아다. 엄마는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였다고 한다. 그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연화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남하도 앞바다의 크루즈를 타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아빠는 물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연화는 홀로 남겨졌다. 그날 남하도 앞바다 크루즈는 큰불이 나서 3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났다. 문제는, 연화의 가족은 그 배의 승선인원 명단에 없었고, 연화 역시 생존자지만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고 후 삼촌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된 연화는 19살 도망친다. 의대에 진학한 연화는 응급실에서 해수를 만난다.
중학교 졸업식날 아버지를 잃은 신재하는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천명대 의대로 온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재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자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연화와 오랜 인연이 있는 재하. 재하의 지인의 지인이라고 소개받은 해인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던 연화는 해인의 전시회 소식을 듣는다. 재하와 함께 가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병원 호출에 재하만 해인의 전시회를 찾고, 그곳에서 한 소년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그림에 끌린다. 해인과 재하는 첫 만남에 서로를 향한 호감을 느낀다. 해인이 준 그림을 가지고 가는 재하. 그렇게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어느 날 해수는 한 스님을 만난다. 스님은 그에게 신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저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의 물건을 돌려줘야 한다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긴다. 연화 역시 스님을 만난다. 엄마가 있는 곳을 돌아가야 한다고... 엄마와 같은 방법으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연화.
스님은 연화와 해수에게 방해자가 활동을 시작했으니 늦지 않게 행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과연 방해자는 누구일까?
해수가 보는 과거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하도 앞바다 크루즈 사고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해수가 과거를 볼 수 있다면, 연화는 미래를 볼 수 있다. 몇 달 후, 몇 주 후 일어날 일을 예지몽으로 꾼다. 문제는,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지인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끔찍하고 슬픈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참 질긴 인연이 등장한다. 연화와 해수. 해인과 재하.
한순간의 일탈로 끔찍한 사건을 만들어낸 해수. 오로지 아들만 살리기 위해 수백 명의 목숨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 아버지의 죄과를 알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해인. 중학교 졸업식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재하. 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자살을 선택한 선생님. 선녀인 엄마와 이무기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축복받아야 할 생일에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고 엄마의 반지까지 빼앗긴 연화.
악연이라면 악연이 책 속에 하나 둘 등장하며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모든 죄의 시작은 해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실수로 이 모든 사건들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신의 물건을 탐해서 생긴 저주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실수로 수백 명의 사람을 바다에 생매장했다는 사실 또한 저주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편, 주인공 대부분이 의사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며 해수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인종, 종교, 국정, 정당 당파,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해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근데 해수처럼 환자의 과거를 알게 되면 어떨까? 내가 살리려는 사람이 연쇄살인마라면,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킨 사람이라면, 아이를 무참히 성폭행한 성폭행범이라면... 그래도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키며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오로지 환자만을 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