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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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피하는 분야가 있다면 단연 시다. 시는 글 중에서 가장 간결하지만, 가장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단순하게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산문보다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마치 묵은 숙제를 해결하듯이 한 해의 한 권 이상의 시집을 읽고 있다는 것과 시 뒤에 붙은 "역사"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시의 역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 속에는 모든 시의 역사라기보다는 (영미권 혹은 서양)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었다고 볼 법하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시(인)도 등장하긴 하지만, 책의 상당수는 영국과 미국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인류에 등장한(기록으로 현존하는) 첫 시는 과연 무엇일까? 기원전 20세기 경에 등장한 길가메시 서사 시라고 한다.(다행히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어봤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사실과 함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시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등장하는데, 실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세계사를 통해 익히 들었던 터라 신화와 연관된 서사시는 흥미를 자아냈다.

그 밖에도 방대한 내용만큼이나 종교적 색채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과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나 존 밀턴의 실낙원이나 되찾은 낙원 등의 시도 만날 수 있다.

시의 역사를 보면 14세기 이후의 다양한 사조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시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띄는 시기(17세기)를 넘어서면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상징주의 등의 사조가 등장한다. 특이점이라면 여성 시인들의 활약기도 책 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류시인들 역시 자신만의 색채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와 시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존 밀턴처럼 종교적 색채를 띤 시인의 다음 시기에 등장한 시인들은 정 반대적인(성적 욕망과 성적 희열에 집중하는) 색채를 가진 시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번역가의 말처럼, 시는 타 언어로 번역하기 참 힘든 장르인 것 같다. 모국어로 쓰인 시조차 이해가 어려운데, 타 문화와 시 속의 분위기 등을 우리 말로 옮기는 게 과연 얼마나 힘들까? 사실 우리나라의 많은 주옥같은 시들이 외국어로 번역이 힘든 것 또한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의 역사를 통해 시의 변화와 방향성을 맛볼 수 있었고, 시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나이기에, 이 책이 아니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보지 않을법한 시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인간사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시의 주제는 죽음과 사랑이 대부분인 걸 보면 말이다. 시 중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시어 속에 숨겨서, 혹은 대놓고 희로애락을 드러내며 쓰인 시도 있다. 시 안에는 시인의 삶과 생각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역시 어찌 보면 자신만의 관점에서 시를 평가하기도 한다.

시가 낯설고 어렵다면, 우선 시의 개관이라 할 수 있는 시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사조와 시를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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